"제발 이 책을 읽어 주세요!"
[서평]『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체르노빌 : 금지구역』
    2012년 10월 02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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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난 다음에야 ‘원자력 발전소’와 ‘사고’라는 단어가 나란히 붙은 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수도 있으며, 친구와 주고받는 심심풀이 카톡 대화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자’ 뒤에 ‘폭탄’ 말고 ‘발전소’가 붙었는데 그 위력은 ‘폭탄’의 2백 배에 가까웠다. 원자력  발전소가 뭐야, 싸게 청정에너지 만들어내는 것 아냐? 수능 사회탐구 영역 ‘한국지리’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반도에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데 가격 대비 생산성을 따지면 원자력 발전 만 한 것이 없다고 배운다.

“그러니까 지도에 울진, 월성, 고리, 영광 표시하고(중요합니다!) 위치 잘 봐둬. 지금은 양으로 따지면 화력하고 수력 다음 세 번째 규모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 기억하고. 그리고 ‘발전소 가동률 원(자력)-화(력)-수(력)’는 확실하게 외워 둬라. 원자력 발전소가 수는 적지만 일단 만들어놓은 발전소는 다 돌린다는 거야. 그리고 교재 설명 보면 폐기물 처리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둥 하는 얘기는 다들 읽어보기만 하면, 아 상식적으로 아는 거지? 넘어간다. 다음 페이지…….”

참으로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더불어 생산성과 경쟁력 최우선의 가치관이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빙산의 일각만큼의 사람이라도 문득 놀란 얼굴로 돌아볼 수 있었을까? 바로 이웃 나라, 각종 안전사고에 누구보다 꼼꼼하게 대비하고 있다던 나라에서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무엇을? 1986년 소비에트연방의 체르노빌에서 일어났던 재앙을. 그리고 떠돌던 후쿠시마의 소문들ㅡ기억하기로, ‘후쿠시마의 영웅들’은 모두에게 인상 깊었다. 더불어 일본 정부의 사실 은폐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들도ㅡ, 비로소 봇물처럼 쏟아지던 ‘위험한 너무나 위험한’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의 현 주소에 대한 고발들.

 

1997년 처음 발간되었던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새잎)가 2011년 6월에야(혹은 2011년 6월 ‘바로’) 번역되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소개된 것 역시 이러한 ‘위기 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십 년에 걸친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4백여 쪽으로 옮긴 이 책에는 저자 프로필 이외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실려 있지 않다. 흰 바탕에 촘촘히 박힌 검은 글씨가 절망적으로 이어질 뿐이다. 목소리들은 분노에 차 있기도 하고, 절망 한가운데 잠겨 있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의지의 목소리도 존재하며 여전히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를 피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모두의 목소리에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거대한 재앙을 마주했을 때의, 그 불가해함에 대한 공포과 당혹감이 들어 있다.

공포……. 사실, 이 글을 위와 같이 빤히 예상되는 순서( ‘체르노빌을 다룬 책에 관한 글이니까, 얼마 전 있었던 후쿠시마 사고를 이야기하며 주의를 환기하고, 그 사고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 다음 책 내용과 연결해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자’와 같은)로 쓰는 일만은 피하고자 했었다.

내가 참담한 마음으로 이 책들에 대한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 명에게라도 더 이 책들을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사고가 일어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어 버리는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 파괴의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제목과 글의 첫머리에 구체적인 책의 내용을 옮기되 처절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고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제목들을 훑던 눈길이 그 충격적인 자극성 때문에 화면에 드러나 있는 만큼의 텍스트라도 읽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공포, 내가 느꼈던 절망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왜 더 이상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면 안 되는지, 왜 바로 지금부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에너지 의존율을 낮추어 나가 마침내 원자력 발전이 없는 지구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고 나아가 그들이 탈핵을 위한 행동에 함께 나서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통스럽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썼다가 다 지웠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어느 날 ‘방사성 폐기물이 되어’ 돌아오고,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 몸이 안쪽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거나 얼굴이 완전히 변형되어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데, 그 고통을 일종의 미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선정적이지 않은 묘사의 문제는 『체르노빌 : 금지구역』(프란시스코 산체스 글, 나타차 부스토스 그림, 김희진 옮김/현암사)을 읽으며 의문을 가졌던 것이기도 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가 가감 없이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인 배열을 통해 체르노빌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지켜본 생존자들의 고통을 강력하게 전달했지만, 『체르노빌 : 금지구역』은 처음부터 선정성을 배제하려 노력했음을 밝힌다. 이 모든 것을 ‘망각으로부터 구해내고 싶’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반(反)-선정적인 그래픽 노블은 3대에 걸친 가상의 가족을 내세우고 담백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화면을 선사한다. 함축된 이미지 속의 내용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이는 내가 두 권의 책을 함께 다루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형식과 간결한 내용 때문에 『체르노빌 : 금지구역』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생소한 사람이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면, 보다 많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 방향에서 사고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들은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를 읽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고에 대한 자세한 묘사에서 나올 선정성, 그리고 망각에서 구해 내려는 노력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서는 나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나름의 정리를 내릴 수 있었다. 처음 『체르노빌 : 금지구역』을 읽고 나서 나 자신의 이해가 부족하고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검색해 위키피디아를 읽었으며,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사고 직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기자의 얼굴을 보았고 그의 영상 속에서 『체르노빌 : 금지구역』속 장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혹 『체르노빌 : 금지구역』의 저자는 사고에 대해 깊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찾고 기억하도록 하려는 것인지. 만일 의도가 그러하다면 적어도 내게서는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내 글 속에 『체르노빌 : 금지구역』과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수준의 정보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부디 직접 읽어 달라. 1986년 소비에트 연방 안에서 출생률이 가장 높았고 평균연령이 20대 중후반이었던 젊은 도시 프리피야티가,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4월 26일 새벽 이후로 바뀌어버렸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처참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 자신 역시 죽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질환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 힘들겠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을 그들의 자리에 놓아 보라. 그리고 위험 속에서 낡아 가는 이 땅 위의 21개의 원자력 발전소와 저개발국가에 지어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에 대해 생각해 달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구 위에서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핵무기를 없애는 일에 당신의 힘을 보태어 달라. 다시는 체르노빌의 고통이, 후쿠시마/히로시마/나가사키의 고통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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