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을 먹고사는 경제 시스템 해부
    [책소개]『전쟁의 경제학』(비제이 메타 /개마고원)
        2012년 09월 29일 09: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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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로 한바탕 감정 대립을 한 데 이어, 센가쿠열도 문제가 격화되면서 중국과 일본은 물리적 충돌까지 빚고 있다. 9월 16일 리언 패테나 미국 국방장관이 “폭력과 충돌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무력 분쟁 가능성까지 시사할 정도다.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세 나라 사이에서 군비경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개발과 복지에 필요한 예산이 줄어들 것은 물론이다.

    이런 분쟁에서 이익을 얻으며, 이를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 오래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한 ‘군산복합체’가 그들이다. 군산복합체와 한몸이 되어 자신들의 전략적·경제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서구 국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조장하고 이용한다. 그럴수록 개발도상국은 전쟁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고 세계 경제는 추락하게 된다.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상위 5가지 품목은?

    중국은 무역으로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정작 쓸 곳이 없었다. 그 돈은 그대로 미국 국채에 투자됐다. 중국이 국채를 언제나 매입해줬기에 미국은 0퍼센트에 가까운 저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이 사상초유의 저금리가 미국 자본시장을 붕괴시킨 거품을 만들었다.

    중국의 경제규모와 국방예산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매년 1000억 달러 정도의 미국 무기를 수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지 않고 매년 100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구매했다면, 적자는 줄고 국채 금리가 자연스럽게 올라 거품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군사적·전략적 라이벌로 생각하는 미국은 중국에 무기를 비롯한 하이테크 제품을 수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상위 5개 품목은 우습게도 고철, 오일시드, 곡물, 합성수지, 합성고무다.

    선진국들의 경제는 군산복산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주수출품은 ‘이중용도 품목(군사 및 민간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제품, 소프트웨어, 기술)’과 고부가가치·하이테크 무기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는 그런 물품들을 수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생긴 무역불균형이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선진국 경제가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좌우되면서 전체 경제 시스템이 수렁에 빠진 것이다.

    인권선진국 프랑스가 독재자 카다피를 지지한 까닭은?

    2011년 아랍권에서 독재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그런데 그 독재정권들이 시위대와 반정부군을 억압할 때 사용한 무기는 주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무기였다. 일례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프랑스산 미라지 전투기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폭격하기까지 했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려고 UN이 시도하자 프랑스는 자국 전투기가 미 공군의 전투기에 격추당하는 광경이 벌어질까 봐 이를 반대했다.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혈안이 된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불량국가’와도 기쁘게 거래한다. 책에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저지르고 있는 추잡한 행태가 역력히 소개되고 있다.

    * 독재자 지원: 영국의 전 수상 토니 블레어는 2007년 카다피와 만나 무기 계약을 맺으며 카다피 직속 근위대를 훈련시켜주겠다고 약조했다.(110쪽)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프랑스군 6만 명을 주둔시킨 다음 독재자를 도우러 출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다.(114쪽) 영국은 석유회사 BP가 리비아 유전개발권을 획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카다피가 지시한 팬암기 폭발사건의 범인을 석방해줬다.(110쪽)

    * 군비경쟁 조장: 미국은 인도와 치열한 군사적 대결을 벌이고 있는 파키스탄에 F-16을 판 다음 군사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인도에 최신 무기를 팔려고 로비를 했다. 적대국의 군비경쟁을 부추겨 이득을 얻는 것이다(60~63쪽)

    *공직자 매수와 뇌물: 방위산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현지 에이전트에게 낙찰액의 20%를 커미션으로 준다. 가난한 나라의 공직자는 쉽게 매수당한다. 미국 상무부에 접수되는 부정부패 고발과 진정의 절반 가까이가 무기거래와 관련이 있다.(68쪽)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무기계약을 맺으며 국방상인 술탄 왕자에게 10년간 총 10억 파운드를 주기로 약속했다.(112쪽)

    *조세피난처 운영: 서국 각국은 은밀한 거래를 위해서 여러 조세피난처를 운영한다. 모나코 공국은 프랑스 전용 조세피난처이고, 안도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공동의 조세피난처이다. 또 벨기에를 비롯한 여러 나라는 룩셈부르크를, 독일은 리히텐슈타인을, 이탈리아는 산마리노를 조세피난처로 이용하고 있다. 영국은 채널제도의 건지섬·저지섬은 물론 아일랜드해의 맨섬에다 조세피난처를 운영하고 있다. (116쪽)

    서구 선진국이 무기를 판매하면서 얻는 것은 단순한 판매수익만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이 가난한 나라의 독재정권에 무기를 제공해주면서 천연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얻는다.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은 리비아의 유전에서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얻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최대 원유 수입국이면서, 미국 무기의 중요한 고객이다.

    선진국들은 저개발 국가에서 천연자원을 사간다. 그 나라의 독재정권은 그 돈으로 값비싼 무기를 사서 이웃 국가들과 겨루거나 국민들을 억압한다. 선진국들은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안정적으로 자원을 가져갈 수 있지만 그 나라의 경제 발전은 그 뿌리부터 짓밟힌다. 이렇게 무기판매와 억압을 통해 유지되는 폭력적인 교역관계가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부유한 선진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적 우위를 지키는 데 집착하고 따라잡기 전략을 추구하는 나라는 가차 없이 응징한다. 또 군산복합체는 꼭두각시 지도자에게 무기와 자금을 쥐어주고 그들의 재산을 몰래 숨겨준다. 가난한 나라에 사치품과 무기를 판매하고 가난한 농민과 탄광노동자가 수확하고 채굴한 원자재와 무기를 바꿔간다. 당연히 적대 세력을 악마로 묘사한다. 이런 미래에서는 탐욕스러운 1퍼센트가 부와 무기를 동원해가며 기초 자원을 쟁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해진다.(275쪽)

    평화경제 모델을 찾아서

    여론은 군대를 찬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도로 건설은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들어도 최신 전투기 구입은 그런 비난을 듣지 않는다. 일반 대중이나 언론이나 군에 대한 예산 지원은 관대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웃 나라와 사이가 나빠지면 국방에 더욱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지금 한국과 일본, 중국도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이것이 군산복합체의 이득이 됨은 물론이다. 그리고 발전과 복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당연지사다.

    저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군산복합 경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이러면 군비경쟁이 더 가속화될 것이고, 테러도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또한 막대한 세금이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다른 대안은 군산복합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방위산업체가 신재생에너지 부문으로 비중을 옮긴다면 그 기술을 수출해 무역균형을 맞출 수 있다. 석유 의존도도 줄어들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줄어들 것이다. 중동의 독재국가를 지원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군산복합 경제에서 서구 국가들은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경쟁자의 출현으로 바라보고 극히 경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단적인 예이며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에서는 번영과 발전이 확산될수록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 『전쟁의 경제학』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는 경제 모델을 만들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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