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과연 최선인가?
[서평]『불평등 민주주의』(래리 바텔스/ 21세기북스)
    2012년 09월 22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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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최선인가?

과연 이 문제에 관해 자신과 반대 입장에 선 상대방을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아득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지겹도록 논쟁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 아닌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큰 원인 중 하나는 ‘민주’가 갖는 의미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의 변종은 일일이 열거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완벽한 대척 점에 서 있는 파시즘이 느슨한 민주주의로 포장되는 일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사실 우리는 사이비 민주주의를 찾아 굳이 그렇게 멀리 찾아가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서울에서 차로 두어 시간만 달리면 닿는 바로 그 너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짧게 잡아도 100년을 넘는다. 미국의 초기 민주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은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인류의 숙명이며 “민주국가에서 다수에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까지 적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래리 바텔스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불평등 민주주의’라 칭하며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가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면, 가난한 이들은 정치인들에게 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가들에 의해 평등주의 입법으로 귀결되며, 결국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에 의해 추세적으로 완화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기 전, 미국 정치학자들이 묘사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이론과 실제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이 바텔스의 결론이다. 국가 정책은 특정 사안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견해보다는 정당의 이데올로기적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심지어 대중은 스스로의 견해와 배치되는 정책을 지지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가 지난 대선 유세에 활용했다는 에피소드로 잘 알려진 이 책은, 너무나 일관되게 당파적이다. 이로 인한 역효과를 우려했는지, 바텔스는 서론에서부터 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당이 집권해야 대다수의 국민에게 더 이득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분명히 결론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공화당이 집권할 때는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는 반면, 민주당이 집권할 때는 그렇지 않다. 공화당이 집권할 때는 부유층 감세 정책으로 일반 대중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지만, 민주당이 집권할 때는 그렇지 않다. 공화당은 물가상승률 억제에 집중하지만, 민주당은 실업률을 줄이고 경제가 성장하게 하는 데 집중한다. 선과 악의 대비가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하다.

이렇게 다수의 대중이 원하는 바와 배치되는 데도, 혹은 그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1인 1표제가 적용되는 민주주의 하에서 공화당이 민주당과 대등하게, 혹은 그 이상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텔스는 이것이 대중의 우매함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가 지적하는 몇 가지 요소 중 가장 의외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부유층의 소득증가율에 일반 대중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일 것이다. 상위 5%의 부자들이 거의 대부분의 부담을 떠안는 정책적인 감세 조치를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현실이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또 바텔스는 별다른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져있는 정치적 통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백인 노동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면서 공화당의 집권이 가능해졌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반박해낸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아마 이런 질문들이 떠오를지 모른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이들, 특히 노인층이 맹목적으로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통설은 과연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투표를 하지 않아 보수 정치인들이 득세한다’는 주장은?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대한민국의 상황이 미국과 같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모방하긴 했으나 양원제 대신 단원제를 택했고, 지방분권적 성격이 현저히 약하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의미의 양당제가 자리잡았다고 보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지구 반대쪽 나라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혀 내려가는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의 많은 내용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로 대입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텔스는 누구나 의문을 가져 봄직한, 그러나 섣불리 확신하기는 어려운 논쟁적인 명제의 비밀을 한 겹씩 벗겨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의 밑바탕에 탄탄한 논리와 근거가 깔려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을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미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그리고 그것이 다시 경제적 불평등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구조화된 통계 분석과 사례 연구를 통해 납득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그래프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로 인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 책의 약점을 보완해준다. 해당 단원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래프는 50페이지에 달하는 주석을 뺀 본문만 해도 400페이지가 넘는, 결코 얇은 편이 아닌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바텔스 스스로가 정치-경제적 요소의 상호 영향을 체계적으로 측정하려고 노력한 ‘선구자적인’ 시도였다고 자평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측면에서는 분명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 저작이 아닌가 싶다. 유독 문과 학생들의 수학 기피증과 이과 학생들의 교양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는 대한민국에도 통섭적 사고와 교육 제도가 자리잡아, 탁월한 전문가적 식견과 냉철한 분석력이 결합되는 이러한 종류의 시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에 의하면 2011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8.06점으로 167개 국가 중 22위다. 국민들의 정치 참여 수준이 평균에 비해 꽤 높다. 그러나 기업들이 연일 실적 최고치 경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는 한 달에 957,220원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 그 자체, 혹은 그러한 현상의 심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주장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명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묵인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바텔스의 일갈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물론 그건 각자가 직접 읽어보고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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