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의 폭력적 결과 다룬 영화들②
    [영화잡론] 민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
    By 문석
        2012년 09월 12일 10:49 오전

    Print Friendly

    대부분의 민영화가 그렇듯, 수도 민영화의 역사는 이에 대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특히 물은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보니 이에 대한 투쟁은 더욱 격렬하다.

    인도 케랄라 지방에서 벌어진 투쟁도 그 하나다. 이곳에 자리한 코카콜라 공장은 하루에 150만 리터의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지하수가 빠져나가다 보니 물이 줄어서 이 지역 농작물의 상태는 극심히 나빠졌고 우물은 오염됐다.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는 주민들이 코카콜라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자 환경운동가이자 진보적 지식인인 반다나 시바가 합류했다. 이들은 코카콜라 공장 앞에서 격렬하게 투쟁했고 마침내 2005년 공장 폐쇄를 이끌었다.

    수도 민영화에 항의하는 민중들의 투쟁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물 투쟁이다. 1999년 볼리비아 정부는 코차밤바의 수도를 민영화한다고 발표했다. 코차밤바에서 진행된 민영화는 가혹하고도 악랄한 수준이었다. 농촌지역에 대한 물 공급 의무가 폐지됐고 우물을 파는 것도 금지됐다. 이미 파여있는 우물이나 샘을 사용할 때도 수수료를 내야 했다. 심지어 빗물을 모으는 통을 놓아도 민영기업인 아과스 델 투나리에 의해 제재받았다.

    주민들은 강력한 저항으로 맞받아쳤다. 거리로 나온 주민들은 코차밤바로 들어오는 모든 진입로를 봉쇄한 채 시위를 벌였고 총파업이 뒤따랐다.

    이들과 협상하던 시 정부가 계속 말을 바꿔가며 아과스 델 투나리의 이익을 대변하자 시위는 내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격렬해졌다. 얼마 뒤 주민들은 이 회사 뒤에 미국의 세계적 엔지니어링 기업 벡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2000년 4월 코차밤바의 투쟁은 ‘물 전쟁’으로 발전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와중에도 8만명의 시위대는 삶을 위해 거센 투쟁을 펼쳤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볼리비아 대사관과 벡텔사 앞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시위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벡텔의 경영진은 코차밤바에서 도망치듯 철수했다. 시 당국도 물 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넘겨받았다. 물 전쟁의 리더 오스카 올리베이라는 <플로우>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 민영화는 죽음과 삶의 문제다.”

    <이븐 더 레인>(2010, También la lluvia, 감독 이시아 볼레인)은 이 코차밤바의 물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 제작자 코스타(루이스 토사르)와 감독 세바스찬(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500여년 전 콜럼버스 무리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행한 무자비한 행위와 원주민이던 타이노 족의 저항에 관한 영화를 찍기 위해 코차밤바에 도착한다.

    영화에 출연할 현지인을 상대로 오디션을 보던 이들은 반골 기질 가득한 원주민 남자 다니엘(후안 카를로스 아두비리)을 만나게 된다. 그의 반항적인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코스타와 달리 세바스찬은 그를 타이노족 지도자 하투에이 역할에 기용하기로 한다. 문제는 이곳에서 물 전쟁이 한창이었다는 것. 게다가 다니엘은 이 투쟁의 리더이기까지 하다.

    <이븐 더 레인>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정복과 코차밤바에 수도 민영화를 묘하게 겹쳐 놓는다. 콜럼버스에 대한 하투에이와 타이노족의 투쟁을 촬영하는 상황은 다국적 기업 벡텔을 상대로 한 다니엘과 코차밤바 주민들의 투쟁과 동시에 진행된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탈당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처지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코스타와 다니엘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코스타는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된 다니엘을 편법으로 빼내주기도 하고(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든 진행시켜야 하는 제작자다) 다니엘의 아들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떠드는 감독 세바스찬이 주민들의 문제는 아랑곳 않고 영화에만 집착하는 데 비해 현실주의자인 코스타는 오히려 이들의 고통에 마음을 열게 된다.

    주민들의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영화 또한 절정으로 치닫는다. 주민들이 도시 진출입 통로를 차단하자 영화 촬영팀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촬영을 계속 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주인공인 다니엘이 시위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니엘의 아들이 시위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코스타는 패닉에 빠진다. 제작자로서 영화를 구할 것인가, 친구가 된 다니엘의 아들을 구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선 코스타는 결국 다니엘 아들을 택하고 결국 영화 촬영은 무산된다.

    <이븐 더 레인>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제 3세계에 대한 서구 자본의 수탈을 폭로하고 그 역사적 근원을 탐구하는 진지한 영화다.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는 과잉이 거슬리긴 하지만, ‘가해자’ 스페인 출신 여성 감독의 자기반성과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높이 사줄만하다. 배우 출신으로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이시아 볼레인 감독은 이 영화를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에게 헌정했다.

    이외에도 기간산업의 민영화를 비판하는 영화는 많다. 의료산업의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그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식코>가 있다. 한국 의료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다큐 <하얀정글> 또한 민영화에 관한 내용(이를테면 영리병원 허용 문제)이 일부 담겨있다.

    전력의 민영화를 다루는 영화로는 지난번 ‘금융자본을 다룬 영화들’에서 소개한 <엔론-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2005)<기업의 숨겨진 진실>(The Corporation, 2003)이 있다.

    특히 <엔론…>에는 200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사태가 왜 일어나게 됐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엔론 직원들이 온갖 암호를 써가면서 전력대란을 부추기거나(그들은 일부러 발전설비를 고장내거나 고장났다고 보고하도록 해 전기요금을 인상시켰다), 전력대란으로 할머니가 고생하겠다고 조롱하는 전화 통화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민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격인 그리스 경제위기를 다루는 영화 한편을 소개하려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카타스트로이카>(Catastroika, 2012, 감독 아리스 차치스테파노우, 카테리나 키티디)다. ‘카타스트로이카’란 ‘catastrophe’(재앙)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구 소련 시절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창한 개혁·개방 노선)의 합성어다. 엉망진창이 돼버린 러시아의 자본주의 ‘개혁’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갈수록 꼬이는 그리스의 ‘개혁’, 즉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을 지칭한다.

    이 영화에 따르면 최근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115%에서 160%까지 상승했다. 젊은 노동자의 절반이 실업자 신세고 자살율은 20% 증가했다. 노숙자는 아테네에서만 2만명이 넘는다. 그러는 와중 대대적인 민영화 조치로 은행가들과 군사정부 시절의 지지자들은 요직을 찾았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의 내레이션으로 정리된다. “그리스는 완전히 팔렸다.”

    <카타스트로이카>는 그리스의 사례를 검토하기 전에 원조 ‘카타스트로이카’, 그러니까 러시아의 자본주의화를 먼저 고찰한다.

    러시아의 자본주의화는 역설적이게도 1991년 8월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쿠데타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러시아 의회로 진격하자 보리스 옐친이라는 주정뱅이가 등장해 의회를 지켜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후 그는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고르바초프가 갖고 있던 권력을 하나하나 빼앗았다. 마침내 1991년 말, 그는 고르바초프를 압박해 퇴진하게 만들었고 소련 연방을 해체했다.

    절대 권력을 갖게 된 옐친은 러시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불행히도 옐친의 경제팀은 시카고대학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추종자들이었다. ‘시카고 보이즈’라고 불렸던 이들은 프리드먼 교수조차 놀랄만큼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내세웠다.

    이들을 후원한 것은 미국이었다. 그들은 민영화, 주식시장, 파생상품시장 등 자본주의 수백년의 역사를 한꺼번에 이식하려는 듯 달려들었다. 이런 ‘미-러 합작’ 속에서 국영기업들은 한꺼번에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헐값에 팔려나갔다. 모스크바 대학 경제학 교수 알렉산더 부즈갈린은 “당시 100만~200만 달러만 있으면 1억 달러, 어쩌면 1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을 살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아니 당시 러시아에서 권력 깨나 있는 사람들은 알짜 국영기업을 거의 거저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국영기업의 소유지분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자금은 옐친 정부에서 미리 조성해놓은 공적자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오미 클라인의 말처럼 “러시아인들은 돈은 돈대로 내고 국가재산도 강탈당한 것”이었다. 그 결과 1998년 무렵 러시아 농가의 80퍼센트 이상이 파산했고 7만개의 국영공장이 문을 닫았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수백만이 가난에 몰렸고 사회주의 시대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굶주림을 경험했다. 평균수명이 줄었고 에이즈가 창궐했으며 아동매춘이 급증했다.

    만약 러시아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옐친은 비상상황이라며 국민들을 윽박지르며 민주적 의사 표현을 억압했고 정당 활동조차 마비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카타스트로이카는 국가자원의 폭탄 세일이 정치적으로 또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를 파괴함으로써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건 프리드먼 경제학의 실험장이 되어버린 피노체트 장군 치하의 칠레나 이브렌 장군 독재시대의 터키도 마찬가지였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사부님으로 모신 마거릿 대처 또한 포클랜드 전쟁을 빌미(국가, 아니 정부 중심으로 단결!)로 광산노동조합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와 관련해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라 함은 그것이 실제 정치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카타스트로이카>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폭압으로 시작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수단을 통해 실현된다. 그 새로운 수단이란 바로 빚, 즉 국가부채다. 어마어마한 경제위기 속에서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급증했고 외환고는 떨어졌다. 사실 이 문제라면 우리 또한 그리 낯설지 않다.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의 금융위기 속에서 우리 또한 ‘IMF 시대’를 맞았지 않았나.

    마치 이같은 상황이 기회라는 듯, 한국의 경우처럼 그리스 앞에도 IMF와 WTO가 등장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그리스의 경제 전반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중 핵심은 민영화다.

    IMF는 구제금융을 대가로 철도, 수도, 전력 등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칠레의 저명한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말마따나 “IMF가 내건 조건은 민중의 권리를 송두리째 내놓는 것”임에도 그리스 정부는 이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 조건을 감수했다.

    우리가 이미 겪었듯이 IMF에 얽매이게 되면 민영화 뿐 아니라 금융선진화, 기업의 구조조정, 각종 보조금 지급을 제한함으로써 국민들을 실업자로 내몰게 된다. 런던대학의 코스타스 두지나스 교수는 이를 “신식민주의 상황”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1997년부터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IMF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온갖 규제를 푸는 ‘자유화’를 내세운다며 비판해왔다.

    자신의 이론적 조상을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 프리드먼에서 찾는 IMF의 경제학자와 실무자들은 각 나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세계 표준’의 해법, 그러니까 민영화와 자유화만을 내놓는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는 그들의 경제학에서 실업은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부자들에게 탐욕을 실현하도록 해 부를 갖게 만들면 자연스레 국가에도 부가 쌓여 실업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이는 “성장을 거의 이루지도 못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이다.

    또 IMF는 비효율적인 국가가 관리하는 기업을 민간에게 풀어놓으면 경쟁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고 소비자들에게 값싼 가격의 상품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부가 국부로 흘러넘쳐 국민들에게 혜택이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다르다. 하나의 경우는 러시아처럼 올리가르흐(과두지배세력)들이 핵심 기업을 몽땅 싹쓸이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민영화된 기업의 부는 국가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 FC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만 봐도 안다.

    그는 옐친 정권 당시 실세였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의 친분 덕에 석유회사 시브네프트를 1억 달러에 매입했다. 이 회사는 당시 27억 달러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렇게 헐값에 구입한 시브네프트는 매년 30억 달러어치의 석유를 생산한다. 하지만 떼부자가 된 그가 한 일이라곤 러시아 국민들의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이었다. 몸값 비싼 축구선수들을 사 모으는 자신의 취미활동(그나마 선수가 질리면 헐값에 팔아넘기고 다시 비싼 선수들을 사들이곤 한다)만 벌였으니 말이다.

    현실 속 민영화의 또 다른 방식은 다국적 기업, 국제적 금융기업이 국영기업을 매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 돌아올 혜택이 거의 없다는 것은 우리도 론스타 사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부관료나 국영기업 임원들은 돈냄새를 맡고 민영화된 기업으로 향한다. 결국 모든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카타스트로이카>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부는 의회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헌법적 조치를 발동해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권력의 시녀인 언론은 대중을 상대로 협박에 나섰다. 이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슈퍼마켓의 진열대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그리스는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나오미 클라인이 주장한 개념인 ‘쇼크 독트린’(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뒤 정책을 밀어부치는 방식)은 그리스에서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카타스트로이카>는 그리스와 남유럽 등지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수도와 전력 민영화 문제도 다룬다. 이탈리아의 경우 2011년 국민투표에서 96%가 수도 민영화에 반대했으나 EU 집행부는 이탈리아에 민영화 프로그램이 절실하며 그 안에 수도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전력이 민영화된 그리스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데, 엔론의 경우처럼 민영 전력기업들이 납세자들의 세금을 가로챈다(결국 주주들의 주머니로 갈 것이다)는 점이 첫째이고 노동자들의 문제가 두번째다. 그리스 전력 노동자는 3만5000명이었으나 민영화 이후 2만2000명으로 줄었다. 이는 실업을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전력 관련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고 국민들의 안전 또한 위협하게 될 것이다.

    범지구적 문제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카타스트로이카>는 웹사이트(www.catastroik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또 이들을 지지하는 이라면 후원을 할 수도 있다. 부디 많은 분들이 보고 공분과 공감을 가졌으면 한다. 안타깝게도 <카타스트로이카>의 한글 자막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온갖 영화와 드라마의 자막을 ‘무보수’로 번역해 공유하는 문화가 이 땅에 차고 넘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의인’이 나타나 자막을 만들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소개
    문석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