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의 대부분은 옳지 않다
    2008년 09월 24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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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노동당에 관련된 글이 두 편 나왔다. 하나는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t ; IS)’ 계열의 창시자인 토니 클리프와 그의 아들이 쓴 『영국노동당의 역사 : 희망과 배신의 100년』이고, 또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위 의장이었던 주대환이 영국노동당을 따라 배우자며 <시대정신> 여름호에 쓴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먼 나라 어떤 당에까지 눈길을 돌려야 하느냐는 푸념도 있겠지만, 100년도 넘는 그 역사를 살펴 하나라도 배운다면 아까울 일 없겠다.

전국민 무상의료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만든 영국노동당의 오늘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하다. 블레어와 고든으로 이어진 11년 집권 동안 영국의 빈부격차는 지난 50년래 가장 커졌고, OECD국가 중 계층이동이 가장 어려운 나라가 됐다. 영아사망률, 평균수명, 교육혜택에서도 계층간 차이가 더 벌어져 사회양극화는 이제 보수당의 정치 소재가 되고 말았다.

1.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 SWP)의 창시자인 토니 클리프와 그의 아들이자 스티븐슨 칼리지 역사학 교수인 도니 글룩스타인이 함께 쓴 『영국노동당의 역사』는 왜 영국이, 영국노동당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밝히려 한 책이다.

도니 글룩스타인은 「한국어판에 부치는 서문」에서 영국노동당의 ‘개혁주의’에 모든 책임을 지운다.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쓰게 된 동기는 노동계급 운동에서 벌어지는 개혁과 혁명의 투쟁 때문이었다. … 주로 영국 등지에서 개혁주의 정당들의 행동 때문에 대중의 전투성과 자주적 행동의 물결이 퇴조하자 많은 사람들은 실망한 나머지 오히려 환멸의 근원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노동당과 영국 의회를 급진적 정치, 정말로 혁명적인 정치로 설득시키기를 원했다.

좌익 공론가들의 무책임한 도식

이 책은 그런 생각이 당시에도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을 뿐 아니라, 노동당의 역사 전체에서 늘 신기루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썼다. ‘황금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국의 특수성이나 노동당 지도자들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니다. 노동당은 개혁주의 정치의 고전적 사례이고, 따라서 노동당의 역사를 살펴보며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통찰과 교훈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토니와 도니는 “노동당은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부르주아지의 조직(「On Britain)」)”이라는 레닌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주의자들에게 핵심 문제는 투표소가 아니라 노동계급 운동의 상태다. … 대다수 사람들은 투쟁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혁명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결론 맺는다.

영국노동당의 독특한 개혁주의가 그 당의 역사와 현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지만, 개혁주의여서 애당초 글러먹었다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으로는 모르겠으되, 역사과학의 차원에서는 좌익 공론가들의 무책임한 도식이다.

공격적으로 따지자면, 레닌이나 IS의 비조(鼻祖)인 트로츠키조차도 영국노동당의 유력자들보다 언제나 덜 개혁적이었거나 더 혁명적이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현실을 고려에 넣어야 하는 바, 사실 의회는 계급투쟁의 무대이다”(레닌, 「코민테른 제2회 대회에서의 연설」, 1920)라고 말할 때의 레닌은 페이비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임한 트로츠키의 최초 입장은 지극히 ‘혁명적’이었지만, 곧 부하린보다 타협적으로 변하고, 종국에는 영국의 사회애국주의파처럼 조국 수호라는 “반동적 과제(트로츠키, 「전쟁과 제4인터내셔날」, 1934)”에 굴복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혁명주의가 혁명의 자연적 성공을 보장치 못한 것처럼 영국노동당의 개혁주의가 대중을 근원적으로 개혁에 가두지는 못한다. 개혁주의 정당이 대중을 개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과 상황이 작용해야 한다.

혁명주의 분파들의 무능과 오류

“거짓말”, “속임수”, “배신”과 같은 환원적, 주관적, 정파적 선악법을 남발하는 토니와 도니의 도식으로는 영국노동당이 왜 개혁주의가 됐는지, 그 지도자들이 왜 대중을 배신했는지, 왜 배신자들이 더 많은 대중 지지를 얻어 당을 장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얻을 수 없다.

추측컨대, 명예혁명이 미친 사회문화적 전통, 두 차례 세계대전과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미국과 유럽을 잇는 중간점으로서의 위치, 공업 조로(早老)-금융 조숙(早熟)의 경제구조, 세계 모든 정당 중 가장 강력한 노동자주의 같은 조건들을 살펴야 영국노동당의 특수한 개혁주의를 밝힐 수 있을 것이고, 나름의 대안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는 영국노동당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넘겨주고, 여기에서는 개혁주의에 대항한 영국노동당 혁명적 분파들의 문제를 첨언하겠다.

영국노동당도 여느 진보정당들처럼 다양한 정파들이 경합하는 정당이었는데, 좌익적 분파들이 꾸준히 숙청, 축출되며 개혁주의에 압도된다. 예컨대, 트로츠키주의 일파인 밀리턴트파가 한국 다함께파처럼 리버풀 시당을 장악하고 종파적 행태를 일삼아 우파 수뇌부에게 좌익 척결의 명분을 제공하는 식이다.

게다가 스무여남은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트로츠키 분파들은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며 좌파 정치 전반에 대한 대중 불신을 자초하여 스스로의 자원을 고갈시켰다. 영국노동당이 개혁주의로만 치닫은 데는 혁명주의 분파들의 무능과 오류도 크게 한몫했다.

2.

IS가 영국노동당을 “자본주의의 첩자”라 규정하는 데 반해 주대환에게 영국노동당은 “세계를 놀라게 한 … 기적과도 같은 … 드라마(「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다.

   
 

주대환의 논지는, ‘NL파와 PD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구좌파인데, 대한민국은 꽤 훌륭하게 발전한 나라이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구좌파는 현실에서 성공할 수 없다.

페이비언이며 뉴레프트인 자신은 영국노동당을 따라 사민주의를 실현하려 한다. 하지만 분당 사태로 진보정당이 후퇴했으므로 사민주의자들은 구여권과 연합해야 한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번에 내가 한 것은 민주화 과도기 20년 동안 대립해온 두 입장, 비판적 지지파와 독자후보(정당)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며, 노동조합을 근거로 ‘노동당’을 만들어서 ‘자유당’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의 폐기다.

…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을, 곧 사라질 그 무엇이 아니라 영국의 페이비안협회처럼 100년을 갈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바치고 싶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정당들의 흥망과 이합집산을 초월하여 100년을 갈 것이다.

… 영국노동당을 만든 케어 하디는 노회찬처럼 하지 않았다. 더 많이 인내하고 양보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노동조합 간부들의 부족함과 근시안과 보수성을 인내하고, 그들의 별로 맞지 않는 의견과 권력욕에 양보했다. … 짧은 인생, 정직하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 「구좌파와 전쟁 각오, 동지들에 미안,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레디앙>, 9. 2 

주대환의 강박과 오류 

첫째, ‘사민주의’가 만사형통인 듯이 주장하며, 남들이 ‘사민주의’가 아니어서 옳지 않다는 주대환의 주장이 옳지 않다. 주대환의 ‘사민주의’ 희구는 1990년대 초까지의 그가 ‘사회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완성된 이념이나 명징한 정치상징에 대한 강박으로 보인다.

주대환은 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 하는 문제를 “당신은 개신교도냐 아니면 가톨릭신자냐?”라는 질문에 비유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교리를 비교하여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사가 꼬셔서 교회에 나가거나 미사가 멋있어서 성당에 다니는 것이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있어 영국노동당은 ‘사민주의’를 내세워 성공한 것이 아니고, 러시아 볼셰비키 역시 ‘사회주의’를 내세워 성공했던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의회선거에서든 가두혁명에서든 인민은 ‘사회주의’나 ‘사민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 정책과 구체적 정당에 의해 움직여왔다.

둘째, NL과 PD가 ‘구좌파’적이라는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진보신당 계열의 사람들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독재’와 ‘폭력혁명’에 대한 양심고백은 김세균 교수나 오세철 교수, ‘노동자의 힘’이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게 들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과 함께 20년 가까이 신노선을 밟아온 노회찬 같은 이들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주대환의 ‘사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뉴레프트’인가?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는 일국 자본과 타협하거나 소비에트식 국제주의에 충성을 바친 유럽판 NL-PD, 구좌파가 아닌가? ‘녹색’을 거부하는 주대환은 어떤 의미에서 ‘뉴레프트’인가? 19세기 신사도(紳士道)와 개혁주의의 짬뽕인 페이비어니즘은 또 어떻게 ‘뉴레프트’일 수 있는가?

지구당 폐지 주장 옳지 않다

셋째, 지구당 폐지와 중대선거구제 주장이 옳지 않다. 지구당이 이런저런 폐해를 낳는다는 것은 지구당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이지, 지구당 조직제도 자체에 내재해 있는 문제점이 아니다. 권노갑처럼 운영하면 지구당은 만악의 근원일 테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많은 지역에서 지구당은 대중과 접촉하는 매우 소중한 창구로 기능해왔다.

주대환의 지구당 운영은 어느 쪽이었나? 영국노동당에서는 좌파를 억압하기 위해 지구당 활동을 축소한 결과 당원 급감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지구당 폐지가 존중해야 하는 대한민국 법률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면 국가보안법상의 ‘해외 좌익계열’인 사민주의도 포기할 일이다.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면 왜 주대환은 2000년 총선에서의 선거자금 유용을 묻어두고 있는가?

소선거구제는 진보신당 같은 당들에게 진입 장벽이기도 하지만, 그 장벽을 넘은 영국노동당 같은 당들에게는 안정적 보혁구도의 장치였다. 중대선거구제를 한다는 것은 주대환의 마산 등에서는 당선 가능성을 다소 높여주겠지만, 유권자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는 진보정당 후보들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현재 2~3위권인 소수 진보후보들은 더러 당선되겠지만, 4~5위권의 대다수 진보후보들은 20위권으로 밀려나 10위권으로 들어서야 하는 새 진입장벽을 만날 것이다. 영국노동당은 중대선거구제가 아닌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파리특파원이 용접공에게 양보했어야?

넷째, “노동당 노선”에 따라 노회찬이 권영길에게 양보해야 했다는 주장이 옳지 않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육체노동자가 공직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영국노동당의 창당 정신에 따라 파리 특파원이 용접공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런 신분주의(身分主義)대로라면 광부인 케어 하디가 영국노동당의 당수였던 것처럼 금속 노동자 문성현이 민주노동당 대표직에 무혈 입성하도록 논술강사 주대환은 경선 불출마했어야 했다.

노회찬더러는 “노동조합 간부들의 권력욕에 양보”하라면서, “100년 전 영국의 노동조합의 간부들보다 훨씬 훌륭한 민주노총 간부”인 문성현에게 주대환이 양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3.

영국의 경제 주간지 <Economist>는 “영국 정치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대처의 적통 계승자”라는 이유로 블레어를 지지했다. 블레어는 자신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짝꿍이라고 화답하고, 지금은 JP모건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독일사민당과 함께 유럽 사민주의의 양대 산맥이라 할 영국노동당이 이렇게 변신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노동운동의 특수한 경향, 노동조합과 당의 관계 맺기에 특히 주목한다.

영국노동당을 망하게 한 영국노총

국내외의 논자들은 대개 노동조합이 영국노동당의 우경화에 저항한 방파제인 양 평한다. 그런데 나는 영국노동당의 우경화는 노동조합의 우경노선을 반영한 것이고, 영국노동당의 독특한 노동자주의가 그를 실현시킨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민영화에 저항해 당의 좌경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지난 100년의 대부분 동안 영국노총(TUC)은 당 우익의 맹주로 군림해왔다. 은행노조는 은행 국유화에 저항했고, 노조들은 좌파를 내쫓거나 우파를 당직과 공직에 당선시키는 데 자신들의 특권표를 행사했다.

노조를 통한 당의 우경화에는 좌파도 일조했다. 당내외 좌파들은 영국노동당 입당을 지시한 트로츠키의 지시에 따랐는데, 그들의 입당 노선과 연합전선 노선은 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실현이 특유의 현장주의와 결합하면서 상황은 틀어진다.

한국의 좌파들이 대개 그러하듯 영국의 좌파들도 ‘현장투쟁’을 고무하고 찬양했는데, 그 현장투쟁은 대부분 노동조합원들의 단기적, 배타적 경제이익을 고수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고, 원하지 않았을지라도 결국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에 대한 추수(追隨)였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 매몰은 조합원들을 근시안적 소비자로 만들었고, 조합원들은 블록투표를 통해 당을 단기 선거정당으로 몰아갔다.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자 개인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사고한 페이비어니즘은 현장주의 좌파에 의해 완성됐고, 영구혁명은 항시적 선거캠페인으로 대체됐다.

너무 빨리 영국노동당이 된 민주노동당

주대환은, 한국 진보정당의 살 길이 영국노동당처럼 되는 데 있는데, 영국노동당스럽지 못해 민주노동당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민주노동당은 너무 빨리 영국노동당처럼 돼서 실패했다.

영국에서 당권의 압도적 다수를 장악한 노조 지도부가 대의원을 지명하고 블록투표를 지시했던 것처럼, 민주노총의 국민파와 중앙파는 노동 할당을 ‘묻지마 투표’에 동원했다.

미국, 일본처럼 전투적 노조운동과 반정치주의에 경도돼있던 한국 노조운동은 1997년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영국처럼 조합주의적 이익의 당 관철에 나섰고, 민주노동당 의결, 집행단위에서 결정된 당론은 연맹 위원장의 ‘항의전화’나 의원실을 방문한 노조 ‘민원단’에 의해 훼손되기 일쑤였다.

민주노동당에게,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에 대한 반대 압력을 가한 것은 임대업주나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라, 주택담보 확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한 은행 노조와 이자 수익 감소를 걱정한 제2금융권 노조였다.

그런데도 주대환은 자신이 민주노총 국민파가 되는 것으로 영국노동당 되기를 실천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수호, 이석행 같은 민주노총 국민파의 수장들에게 노동계급과 사민주의의 미래를 애걸해봐야, 범속한 ‘아저씨들’과의 의기투합 이상이기 어렵다. 지금의 민주노총을 배경으로 영국노동당 노선을 하면 민정당-한국노총이기 십상이다.

노동조합이 가장 광범위한 노동조직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노동계급 자체는 아니라는 문제. 양자간의 협력과 긴장을 유도 유지할 구조와 정책의 문제. 노동조합 이익의 선거적 표현을 넘어 노동계급 전망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문제에서 한 그룹은 기생하려 하고, 한 사람은 기숙하려 했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에서의 이탈을 주저하게 한 이유의 전말이다.

4.

진보신당 사람들이나 내가 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제 이념이 뭔지를 진짜 몰라서이지, 주대환이나 자칭 좌파들의 공박처럼 숨기기 때문이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대통령 될래, 간호사 될래?” 윽박질러 봤자, 별스런 대답 못 얻는다. 1900년의 케어 하디, 1898년 사회민주주의노동당의 레닌도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주대환의 어이없는 강압

“성적 안 좋으니까, 실업고나 가라”는 말이 폭력인 것처럼 지금 내놓는 정책이 사민주의적이라고 사민주의 하라는 것도 어이없는 강압이다. 당장의 접적 전투에서 5부 능선 점령까지만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전쟁 포기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가시적 미래의 지배적 가능성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의 유효함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 주체의 정치사상이 사회민주주의여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나 사회민주당이란, 처음에는 볼셰비키들이 자랑스레 내세웠던 이름이고, 나중에는 힘을 키운 레닌이 독일사민당의 선배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타자화시킨 이름이다. 그래서 사민당-공산당이란 구분에는 사회주의 전략보다는 국가블록, 사실보다는 도덕, 비유물론적 선악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주대환은 레닌의 이 명명법과 정의를 그대로 따른다. 그리고 ‘사민주의’를 ‘한 번이 아닌 방법’ 즉 일규적 권력혁명이 아니라 장기이행이라고 정의할 때 주대환은 레닌의 최초 기획으로 회귀한다.

정치든 혁명이든 다중 획득-다중 참여의 문제이고, 다중 획득은 다중의 이해와 권력 획득의 관계이다. 무엇을 선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전반까지는 다중 이해 이전의 권력 획득이 일반적 현상이었고 그 중 특수한 양상을 혁명이라 하였는데, 민주주의가 확립된 현대 사회에서는 다중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일반적이다.

대학교 2학년생과 주대환

이는 다중 이해를 초월할 수 있었던 세 조건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일상적이었던 각 정치세력의 절차 초월 행동이 축소되고 일탈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정보와 권위의 지식인 독점이 해소되었다. 셋째, 특정 계급의 선험적 도덕이나 집단 과학의 우월함이 경험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는 다중 이해를 궁극의 수단으로 삼는다. 다만, ‘불가피’하게 ‘잠정적’으로 다중 이해를 ‘유보’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혁명주의자들에게 남은 문제는 다중 이해를 전제하는 혁명적 변화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혁명적 언사를 남발하지 않는다고 남들 윽박지르는 대학교 2학년 수준 지적 능력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든, 자본주의를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전망이 아니라 사회변화의 형태에 집착하는 주대환이든 19세기식 혁명-개혁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긴 매한가지다.

5. 

영국노동당 100년의 역사에는 여러 개의 ‘노동당’이 있다. 지금의 영국노동당이 케인즈주의 우파와도 단절한 지 오래인 신자유주의의 첨병임에 비해 NHS를 건설할 때의 영국노동당은 다분히 ‘사회주의적’이었다. 그 100년의 역사 중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우리는 어떤 ‘노동당’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분열 통해 성장한 영국노동당과 한국의 진보정당

독립노동당이 최초에 실패했던 것처럼 한국노동당도 실패했었다. 독립노동당, 페이비언협회, 사회민주연맹이 노동조합과 결합하여 1900년 노동대표위원회를 만든 것처럼 우리도 진보정치연합, 전국연합, 정치연대, 민주노총이 연합하여 국민승리21을 만들었다. 노동대표위원회가 몇 년 후 노동당으로 전환한 것처럼 국민승리21도 민주노동당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1차대전 발발을 맞은 영국노동당은 반전과 인민복리를 표방하는 독립노동당파와 참전과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노동조합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우리 역시 국가 문제를 둘러싸고 주체사상파와 진보신당파로 분리됐다. 분열됐던 영국노동당은 1918년 노조주의를 누르고 국유화 당헌 4조를 만들며 집권에 이르는 성장 국면을 맞지만, 우리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영국노동당이 노동조합 조직률 10%를 겨우 넘겼을 때 창당됐고, 그 후로도 오래 조합원 대부분이 입당하지 않았었다는 점과 우리 역시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진보정당의 실패를 운운할 시점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창당기이다.

“사민주의라도 그게 어디야”라고 주대환이 말했을 때 그것은 주대환이 내놓았던 남한자본주의의 발달, 민주주의 확립, 비북 독자노선, 진보정당 노선처럼 우리를 개안케 했다. 투쟁가 속의 감성에서 물질세계로 탈출케 했다. 하지만, 그러한 성취조차도 매우 고단할 것이고 우리의 도정에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리라는 사실주의적 진술이 아니라, 그런 철학과 방법만이 옳다는 이데올로기가 될 때 문제는 달라진다.

진보정당과는 10년, 유시민과는 100년

볼셰비키가 서유럽 수 세기를 초월하려 했던 것처럼 주대환은 개혁주의 노동자당 100년 역사를 가로질러 수입하려 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옳지 않음이 증명된 이 논리는 역사에서는 여전히 진실이다. 우리가 그 기간을 대단히 많이 단축할 수야 있겠지만, 혁명주의나 개혁주의,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데는 그만한 시간과 그만한 실천이 지난 이후일 것이다.

주대환은 “짧은 인생 정직하게 살자”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영국의 페이비안협회처럼 100년을 갈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바치고 싶다”고도 말했다. 주대환이 정직하려면 ‘끈질기게 시기가 도래할 것을 기다리고, 때가 오면 과감히 돌진한다’는 페이비언의 모토를 이미 저버렸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는 100년은커녕 국민승리21 이후의 10년도 채 채우지 않았다. 그가 정직하려면 페이비언이 아니라 기든스주의나 블레어주의라고 말해야 한다. 그가 진짜 정직하려면 기든스나 블레어의 길이 아니라, 민주당 혁신파인 노무현, 유시민과 함께 길을 걷겠다고 고백해야 한다.

주대환이, 죽은 여성 노동자 김철순 이름으로 엮어낸 『사회주의자의 실천』 표지는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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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북매거진 <텍스트> 10월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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