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도시, 진보정당 외면 왜?
By
    2012년 04월 16일 12:33 오후

Print Friendly

12년 전인 2000년 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노동자의 도시 울산 북구에 있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그것도 창당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할 것인지 전국의 노동자들이 선거 결과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개표 결과 민주노동당 최용규 후보는 41.78%를 얻어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43.03%)에게 563표(1.25%)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민주노동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 벌어진 패권주의와 민주주의 훼손 등의 논란을 차치하고, 울산 북구 선거 결과는 노동자 도시에서 진보정당과 노동자 국회의원의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울산 북구에서는 2004년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가 46.89%로 윤두환 후보(34.38)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부자되세요’와 ‘뉴타운 광풍’이 불었던 2008년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보궐선거에서 다시 조승수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4월 11일 전국 최대의 노동자 도시 울산 북구는 통합진보당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야권 단일후보인 통합진보당 김창현 후보는 47.62%를 얻어 새누리당 박대동 후보(52.37%)에게 4천여 표차로 지고 말았습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합당하고 민주통합당과 단일화까지 이뤄 2파전 선거로 진행된 울산 북구에서 김창현 후보가 얻은 47.62%는 8년 전인 2004년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46.89%)와 열린우리당 이수동 후보(17.65%)가 얻은 64.54%보다 무려 16.92%나 줄어든 결과입니다.  

진보정치 1번지 창원의 패배 

2000년 4월 진보정치 1번지 경남 창원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38.68%의 지지를 얻어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44.13%)에게 5.5% 차이로 석패했습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13.26%를 얻었습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49.8%를 얻어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37.80%)와 열린우리당 박무용 후보(12.38%)를 큰 차이로 앞섰습니다. 18대 선거에서도 권영길 후보는 48.19%를 얻어 한나라당 강기윤(44.66%)와 통합민주당 구명회(4.97%)를 눌렀습니다. 

   
  ▲마산 창원 손석형 후보 유세 모습.(사진=통합진보당) 

그러나 2012년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가 49.04를 얻어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 (43.83)와 진보신당 김창근 후보(7.12)를 물리쳤습니다. 손석형과 김창근 후보의 표를 합하면(50.95%)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보다 많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이수봉 사무부총장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분열된 것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열린우리당 박무용 후보가 얻은 표를 합산하면 무려 62.18%에 이릅니다. 최악이었던 2008년 선거에서도 권 후보와 통합민주당이 얻은 득표율을 더하면 53.16%였습니다. 즉, 진보정치 1번지 창원성산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은 8년 동안 13% 이상 급증했고,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답보, 하락했으며, 보수야당의 지지율은 급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울산 비례대표 정당 지지 5.3% 하락 

정당과 함께 인물도 중요한 요소인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결과만 가지고 진보정당의 패배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004년부터 도입된 비례대표 정당투표의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선관위 홈페이지를 뒤져 2004년부터 울산과 창원 등 주요 노동자 도시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을 살펴보았습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울산에서 36.4%의 정당 지지를 받았던 새누리당(한나라당)은 2008년 42.86%, 2012년 49.46%로 8년 사이에 지지율이 13%나 급등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선거에서 21.89%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분당 후에 치러진 2008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14.24%, 진보신당은 4.46%를 얻어 18.7%의 지지를 받았지만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2012년에는 16.3%에 그쳤습니다. 8년 사이에 지지율이 5.6%나 떨어진 셈입니다. 

창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4년 17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24.25%의 지지를 받아 정점을 찍은 후 2008년 민주노동당(17.34%)와 진보신당(4.02%)를 합쳐 21.36%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과 합친 2012년에는 창원의창 17.99%, 창원성산 18.75%에 그쳤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창원에서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폭은 공교롭게도 울산과 비슷한 5.8%였습니다. 

전국적인 지지도도 새누리당은 2004년(35.76%)에 비해 7% 늘었지만 통합진보당은 13.03%에서 10.3%로 2.7% 하락했습니다.    

인천, 거제, 평택 등 노동자 도시 진보정당 지지율 반토막 

울산과 창원뿐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노동자 도시인 인천의 경우 2004년 민주노동당은 전국 득표율보다 높은 15.32%를 얻었지만 2012년에는 전국 득표율보다 낮은 9.71%에 그쳤습니다. 

조선소가 밀집한 노동자도시 경남 거제도 2004년 민주노동당이 26.19%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2012년 통합진보당은 9.93%, 야권단일후보를 낸 진보신당은 8.48% 지지에 그쳤습니다. 통합진보당은 무려 16%나 하락했고, 양 당을 합쳐도 14.41%로 8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입니다.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공단이 위치한 평택도 2004년 민주노동당 지지율 16.71%에서 2012년 8.63%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걸까요? 노동자들이 노동자정당을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 때문일까요? 

통합진보당의 전략적 오류와 안일한 대응, 울산 동구와 창원에서 잇따라 벌어진 지방의원 사퇴 논란 등도 ‘노동자 도시 진보정당 전멸’에 영향을 미쳤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노동자 정당의 정체성과 계급성이 사라져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장을 찾아갈 절박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정희 대표 현대차 비정규직 집회에서 연설하지 못한 사연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14일 밤,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울산과 창원, 전주 등 여러 지역에서 올라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최상하는 이번 선거에 참여했지만 야권단일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진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과 후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3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부산을 방문한 후 울산 현대차 공장 앞에서 열리는 비정규직 수요 집회에 참가해 연설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노조는 이정희 대표의 집회 연설을 거부했습니다. 

2010년 겨울 전국을 뒤흔들었던 25일 동안의 공장 점거파업 당시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야4당이 ‘선 파업중단, 후 교섭’이라는 중재안을 내밀려 파업을 중단하라고 강요해 조합원들이 대거 흔들렸고, 결국 농성장을 내려오게 됐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정희 대표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정희 대표는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현대차 정규직노조 간부들만 만나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에 대해 사라진 열정 

“현장은 조용합니다. 총선에 별 관심이 없고, 선거 얘기를 잘 하지 않아요.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투표를 독려하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국민참여당 세력과 통합하면서 현장 분위기는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금속노조 부위원장이었던 현대차 전주공장 김형우 조합원이 전한 현장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함께 민주당 지지 유세를 하는 것을 보며 한국노총과 뭐가 다르냐며 개탄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통합진보당을 찍어야 하는지, 가족과 주변의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는지 마음이 우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통합진보당은 노동자의 정당, 비정규직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권력을 쫓는 야당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3대 악법 만든 세력과의 통합과 ‘묻지마 야권 연대’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김대중 정권 때 만들어진 정리해고법으로 인해 36일간의 점거파업을 벌이고도 1만여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인천의 한국지엠 노동자들 역시 김대중 정권의 정리해고와 해외매각으로 1750명이 정리해고를 당해야 했고, 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기억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법과 파견법, 비정규직법은 노동자들에게 악법의 상징이고 징표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고공농성과 파업 등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해 만든 법안입니다. 국민참여당과의 합당, 민주당과의 ‘묻지마 야권연대’에 민주노총의 많은 노동자들이 반대했던 이유였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파탄내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야권연대 후보를 찍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런데 한국지엠은 해외매각 반대와 정리해고 투쟁이 있었고, 이는 김대중 정권에서 벌어진 일인데, 정리해고법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폭력으로 짓밟은 세력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동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1년 정리해고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일섭 한국지엠지부 조합원의 말입니다. 반이명박 야권연대에 대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느끼는 딜레마와 고민이 담겨있었지만,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들이 무조건 자신들을 찍어줄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잃어버린 진보정당 

이명박 정권 4년, 도저히 못살겠다는 노동자 서민들의 절규가 빗발쳤습니다. 무한 탐욕의 재벌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치솟았고,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일자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과 야당은 총선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노동자들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한 채 ‘묻지마 야권연대’에 매달렸고,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4.11 총선이 끝나고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도시에서 외면당한 통합진보당에서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묻지마 야권연대 지지’를 하고 다닌 민주노총은 반성과 성찰은커녕 여전히 ‘반MB와 정권교체의 희망’을 되뇌고 있습니다. 

재벌과 맞서 싸우는 정당,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정당을 내걸고 출범한 민주노동당은 12년 만에 노동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1895일 투쟁과 94일 단식농성을 벌였던 기륭전자 전 김소연 분회장이 말합니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문제, 전체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려면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절실합니다. 제 2의 희망버스와 거대한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가는 실천 과정에서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정리해고의 상징인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의 상징인 현대차 비정규직과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