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아, 군사적 개입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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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4월 14일 01: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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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시리아 순교자>에 따르면 2012년 4월 12일까지 시위와 무장 저항 과정에서 13,333명이 사망했다. 이는 정부 보안군 사망자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출처=위키피디아)

    2012년 3월 초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시리아 국민을 보호하고, 폭력 사태를 끝내며, 역내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군사적인 대안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라 시리아가 제2의 리비아가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졌다. 과연 미국의 군사 개입은 시리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미국 평화운동의 시각을 담은 글을 소개한다.

    한편 4월 2일 시리아군과 반군은 코피 아난 유엔 특사의 평화안을 받아들여 오는 4월 10일까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철수하고 12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휴전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시리아 정부는 4월 12일 오전 6시를 기해 시리아 전역에서 반정부군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가 "만일 무장 테러 단체들이 시민들을 공격한다면 군은 바로 보복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시리아의 휴전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번역자(사회진보연대 반전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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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저항세력을 공격하는 경찰. 

    시리아 정권이 현재 자행하고 있는 자국 인민에 대한 억압을 외국의 군사적 개입을 통해 종식하려는 충동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발상이다.

    극심한 탄압이 벌어지는 경우에 군사적 개입이 실제로는 단기적으로 폭력을 악화시키며, 군사적 개입이 공정하거나 중립적인 경우에만 장기적으로 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경험적 연구를 통해 여러 번 입증되었다.

    다른 연구는 외국의 군사적 개입이 그것이 없는 경우에 비해 실제로 내전의 지속 기간을 증가시키며 분쟁이 더욱 길어지고 참혹하게 하며, 그 지역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입증했다. 덧붙여 군사적 개입은 ‘적나라한’ 집단 심리를 폭발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고, 이는 양측의 폭력을 극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역사적 기록을 제쳐놓더라도 시리아의 정치와 역사를 잘 안다면 거의 누구라도 무장투쟁에 대한 외국의 지원이 잘못된 발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수많은 비폭력 시위자들이 비극적으로 살해되었고 앞으로 더 많이 살해될 것이다. 하지만 비율로 볼 때 훨씬 더 많은 수의 무장 저항자들이 살해되었고 앞으로 계속 살해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수천 명이 죽을 것이냐가 아니라, 시리아 인민이 정권을 전복하고 폭력을 종식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고의 방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폭력 대 비폭력

    정권에 대한 저항에 참여하고 있는 수십만 명의 시리아인 중 압도적 다수는 비폭력적이다. 일부는 동시에 진행 중인 무장투쟁을 지지하고 일부는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리아 집권세력은 정권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에서 무장집단이 무장력을 통해 국가권력을 공격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폭력 저항의 힘으로 국가권력을 중립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는 정권이 민주주의 세력의 폭력을 유발하기 위해 그렇게 지속적으로 도발하는 이유다. 정권은 투쟁이 거의 완전하게 비폭력이었던 처음 6개월 동안조차 반대세력이 테러리스트와 무장폭력단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권은 시리아 인민이 비폭력적인 시민들의 민란에 위협을 당하기보다는 무장봉기에 위협을 당하는 정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군사력으로 무장저항을 지원하는 것은 비폭력 저항에 참여해 자유를 위해 매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고 영향력을 빼앗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빨리 무기를 잡은 사람들은 정권이 전복된 후 민주주의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주었다.

    심지어 주로 비폭력적 수단에 의해 독재가 전복된 경우에 비해 (전위라는 집단 심리, 군사주의적 가치, 엄격한 군사적 위계를 지닌) 무장 집단들에 의해 독재가 전복된 국가들은 새로운 독재로 전환될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이는 종종 폭력과 파벌주의를 동반한다.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는 일부 논자는 시리아의 선례로서 리비아의 ‘성공’을 언급한다. 리비아의 경우를 보더라도 무장투쟁과 외국의 개입의 필요성을 두고 여전히 심각한 문제들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리비아는 민주주의 이행을 위한 훌륭한 모델로 여겨지기 어렵다.

    리비아에 이웃한 튀니지의 경우 평화적이고 상대적으로 질서 있게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지만 (튀니지는 지난 해 2011년 1월 대체로 비폭력적 행동으로 벤 알리 독재를 무너뜨렸다) 리비아는 전리품을 놓고 서로 싸우고 있는 무장 민병대의 경쟁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혹자가 리비아를 외국 개입의 ‘성공 사례’로 간주하고 싶더라도 두 국가 사이에서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가다피는 그의 말년에 리비아 사회의 모든 부문들로부터 거의 멀어졌지만 시리아 정권은 여전히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알라위파, 기독교도, 다른 소수파 공동체들, 바트당 충성파, 정부 공무원, 정권이 육성한 정실 자본가 계급으로 구성된 시리아 소수파의 대다수는 여전히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 내부에도 분명히 불만은 있다. 그러나 정권은 외국의 개입이 있을 경우에 그들의 지지를 더욱 확고히 얻을 수 있다. 

    시리아의 바트당은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조직되어 있다. 리비아 가다피 정권 치하에서는 이러한 조직이 없었다. 소련공산당을 장악한 스탈린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담 후세인이 철권을 휘두른 이라크 바트당과 달리, 시리아의 경우 바트당이 아사드 대통령을 능가한다.

    바트당은 50년 동안 시리아를 지배했다. 바트당은 아랍민족주의, 사회주의, 반제국주의에 뿌리를 둔 이데올로기로 외국 침략자에 저항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당원을 동원했다. 수백 명의 당원이 비폭력 시위자 살해에 항의하며 탈당했지만, 외국인이 갑자기 시리아를 공격한다면 탈당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과 시리아

    미국과 시리아의 역사를 보면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옹호하는 것은 특히 부적절하다. 시리아 정권은 한때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시리아 정권은 1970년대 중후반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 좌파 세력을 억압했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1990년에 미국이 주도하는 ‘사막의 방패’ 작전에 군대를 파견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사담을 옹호하는 레바논 총리에 대항한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알카에다와 다른 극단주의자에 대항해 정보와 여타 지원을 제공했고, 국제연합 안보이사회에서 가혹한 이라크 결의안을 지지했으며, 미국이 체포한 이슬람 급진주의 혐의자들의 ‘특별송환’을 위한 장소를 제공했다.

    하지만 미국과 시리아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거대한 적대심으로 채워졌다. 미국은 이스라엘 우파 정부가 시리아 남서부를 불법적으로 점령, 식민지화한 것을 지지했다. 그 지역은 시리아 정부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완전한 철수를 대가로 안전 보장을 제공한다고 제안했지만 1967년 7월 이스라엘이 침략한 곳이다. 나아가 2007년 미국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협상을 재개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1983~84년 미국의 해군 제트기는 레바논의 시리아 기지를 공격했고, 2008년 미국 육군 특공대원은 시리아 동부 국경 마을을 공격, 상당수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미국은 2003년 시리아에 가혹한 제재를 가했으며,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특정 종류의 무기체계 개발을 시리아가 일방적으로 중단할 때까지 제재 해제를 거부했다.

    같은 해에 의회에서 거의 양당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은 시리아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대한 위협을 대표하며 시리아가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칭해진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을 담았다. 법안 통과에 대해 상원의원 고(故) 로버트 버드는 의회가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을 위한 논거를 세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역사에서 볼 때 미국의 군사 개입은 단지 다마스쿠스 정권의 계략에 빠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시리아 정권은 시리아 인민의 강력한 민족주의 감정을 통해 이익을 본 수십 년간의 경험을 지니고 있다. 시리아 정권은 미국이 세계에 남아 있는 독재자에게 가장 많이 군수품을 공급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바레인의 억압적 왕조가 포함된다. 바레인 왕조는 지난 해 2011년 압도적으로 비폭력인 민주주주의 투쟁을 야만적으로 억압했지만 워싱턴은 거의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미국이 중동 다른 지역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시리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민주주의 증진’은 워싱턴의 중동 헤게모니 계획에 반대했던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핑계라고 아사드와 다른 시리아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폭력 행동의 힘

    최근 역사는 심지어 독재에 대항할 때조차도 비폭력 투쟁에 비해 무장 투쟁이 성공할 가망성이 훨씬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보안군과 정부 관리의 이탈은 더욱 적을 것이고, 적극적인 운동 참여자들의 수를 축소될 것이며, 잠재적 지지자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정권이 반대자를 ‘테러리스트’라 묘사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진압을 위한 핑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험적 연구는 독재에 대항해 본질적으로 비폭력적인 운동이 무장투쟁에 비해 성공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이 반정권 저항세력 중에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며 덜 효과적인 분파를 지원하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다.

    시리아를 위한 가장 최선의 희망은 저항과 파업, 다른 형태의 비폭력 저항이 지속되며 여기에 특정 목표(정권 최고위층)를 향한 국제 제재가 결합됨으로써, 그것이 알라위파 주도 정부와 현재 동맹을 맺고 있는 강력한 경제적 이해관계 집단과 다른 핵심 부문들이 정부로 하여금 권력을 민주적 다수파에 이전하는 협상을 진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실로 이러한 시나리오는 과거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또 다른 악명 높은 소수파 정권인 시리아 정권을 궁극적으로 종식시키는 길이다.

    군사적 개입을 말하는 것은 오직 정권에 이익을 주며 시리아에서 비극적인 폭력을 종식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훨씬 높은 세력, 즉 시리아의 시민사회와 비폭력 행동을 약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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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2012년 3월 29일 Foreign Policy in Focus에 실린 글이며 필자 스티븐 준스(Stephen Zunes)는 샌프란시스코 대학 정치학 교수이자 중동연구회 회장이며,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의 칼럼니스트다. 그는 최신 저작은 제이콥 먼디와 함께 쓴 『서부 사하라: 전쟁, 민족주의, 해결되지 않은 분쟁』(Western Sahara: War, Nationalism and Conflict Irresolution, Syracuse University Press, 2010.)이다.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는 700여 명의 학자, 법률가,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든 연구, 분석, 행동을 위한 네트워크로서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프로젝트다. <정책연구소>는 연구자와 평화, 정의, 환경운동 활동가들의 공동체로 미국 사회운동과 공동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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