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카메라 메고 서울에 오다
    2012년 01월 18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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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두고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완성을 선언한 후 다음 해, 자크 데리다는 자본주의로 인한 착취와 빈곤이 남아 있는 한 “마르크스의 유령들Les spectres de Marx”은 언제든 다시 귀환한다고 반박한다.

이때 데리다는 햄릿을 인용하는데,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원혼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맹세하지만 동시에 햄릿은 그런 자신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탄식한다. “시간이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다. 아, 저주스런 낭패로다. 그걸 바로 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 아직 끝이 아니라고 반박은 했지만 데리다에게도 그 시절의 “지금maintenant” 죽은 마르크스의 명령을 “지키기maintenant”로 맹세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였고 저주와도 같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자본주의의 메카 뉴욕 월스트리트가 붕괴되었고, 유럽 전체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지금’ ‘지키기’ 위해 맹세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이고, “그걸 바로 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 탄식하는 자도 자본주의자들이다. 심지어 국유화라는 공산주의적 결단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상엽 ‘도시재개발'(왼쪽)과 정택용의 ‘기륭전자’

마침내 마르크스의 유령이 귀환한 것일까? 어긋나 있던 시간이 제자리를 찾은 것일까? 아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겠다고 거리로 나온 이들이 증언하듯, 정작 그 국유화의 혜택을 입은 자들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다시 자본가들이라는 점에서 이 유령spectre은 다만 환영spectacle이다. 하지만 어떤가? 정말 마르크스의 유령이 귀환한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유령과 환영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마르크스의 유령을 초대하기로 했다. 1999년 이미 뉴욕을 다녀갔으니, 이번이 최초의 귀환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아니라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Marx in Soho>를 통해 무대에 올랐던 것. 그때 그는 자신을 맹신하는 자들에게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충고했지만, 10년 후 뉴욕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들 아는 대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했다.

2012년 서울이라고 해서 안 될 것 없다. 다만 이번엔 연극이 아니라 사진이다. 하지만 그의 심령사진을 찍어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이번엔 색다른 여행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에는 사진가로서 방문해 달라는 것. 좌파의 지주 마르크스의 유령은 환영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지금’ 무엇을 보았고 ‘지키기’ 원하는지 보여 달라는 것. 이른바 ‘TAKE LEFT’ 프로젝트.

   
  ▲현린의 ‘평택 미군기지 건설’과 홍진훤의 ‘용산참사’

이번 마르크스의 귀환 여행에는 좌파로 찍히고, 좌파로 찍기를 마다 않는 이상엽, 정택용, 현린, 홍진훤 등 네 명의 사진가가 동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귀한 여행을 네 명만 독점할 수는 없는 노릇. 좌파를 잡기 위해서건, 좌파로 찍기 위해서건 동행을 원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네이버, 페이스북, 플릭커, 트위터 등에 TAKE LEFT 공간을 마련한다.

이 가상공간의 문이 열리는 때는 2011년 12월 25일, 예수가 태어났다는 날. 21세기 이 땅을 방문한 마르크스라면 주목하리라 싶은 사건을 사진에 담아 올리면 선별 과정을 거쳐 현실공간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전시는 2012년 1월 25일부터 1월 31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진행된다. 전시기간 중에는 마르크스의 유령이 선정한 사진들을 두고 토론회 TALK LEFT도 열린다. (문의. 02-725-2930)

* 이 글은 ‘TAKE LEFT’ 측에서 보내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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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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