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 점거운동, 경제학 지형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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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02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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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머리에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2월 17일을 기점으로 3개월째 이어지던 점거 운동이 각 지역 경찰의 탄압과 추운 날씨 때문에 상징적인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일종의 ‘후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필자는 국제 경제 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미국 경제학계의 지배적인 담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 – 미국발 경제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로의 파급, 그리고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으로 불거져 나온 사회 운동 차원의 저항 등 – 을 접하면서, 필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미국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점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경제학자들이 연구를 해나가면 좋을지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영미권의 경제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의 ‘자폐성’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적실성 있는 학문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에 대해서도 한국의 독자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고 싶다.

   
 

미국 주류 경제학 담론의 역사와 동향

영미권의 경제학 담론이 보여온 폐쇄성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기초 경제학 수업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 행위자들의 소비 패턴과 생산자들의 생산량 및 가격 조절 법칙을 해명한다는 이름 하에,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소비 함수와 생산 함수를 오남용하고, 개별 행위자들의 효용 및 이윤 극대화 행위가 아무런 외부 효과나 구조적 제약 없이 시장 경제 전체의 일반 균형을 달성한다는 전형적인 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영미권의 경제학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전통적인 케인즈주의 경제학에 의해 지배되었다. 알프레드 마샬과 피구 등 전쟁 전 유럽 경제학을 지배하던 당시의 ‘신고전파’ 경제학 패러다임의 한계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기업의 투자와 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유효 수요가 거시경제 전반의 안정성과 복리 증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케인즈의 경제학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몰아닥친 오일 쇼크와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학은 거시 금융 경제학 영역에서 밀턴 프리드먼류의 통화주의(Monetarism)와 루카스 등이 주창했던 합리적 기대 가설(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이 번성하는 일종의 방향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통화주의 이론과 합리적 기대 가설의 핵심을 이루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은 데이비드 흄과 존 스튜어트 밀이 제창했던 국제 통화의 유출입을 통한 경상수지의 자동적 균형(Hume specie flow) 등에 관한 논의를 참고할 때 경제사상사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경우에는 1940년대부터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 관리 이론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고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와 중화학 공업 부문에 대한 배타적인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미 연방 정부 차원의 ‘케인즈주의적 경기 부양 정책’(당시 이단적 케인즈주의자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에서 이렇게 오남용된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을 ‘군사 케인즈주의’라고 불렀다)이 실효를 거두기 못하자 당시 소수에 머물러 있던 통화주의자들이 경제학계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로 올라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레이건 행정부가 등장하고 영국에서 대처가 수상이 되어, 우리가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제 정책 – 부자들에 대한 감세 정책, 금융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정부의 공공 서비스의 축소, 노동조합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임금 및 사회 복지 수당의 축소와 공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민영화 조치 등 – 을 관철시키기 시작하자 통화주의 이론과 합리적 기대 이론은 영미권의 경제학계는 물론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흐름과 약간은 구별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 괘를 같이 하는 지적 기반이 존재했다. 그것은 특히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구소련과의 냉전 체제가 지속되는 동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영구성과 안정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체계화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자 효용 증대를 통한 가치의 형성, 수요 공급을 통한 일반 균형의 달성이라는 논리를 수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만개했고, 그 결과 수리적 논증을 통한 일반 균형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 주류 경제학 담론의 자폐성에 대한 비판

그러나 현재 미국 대학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경제학 프로그램이 채택하고 있는 이와 같은 지배적인 연구 동향은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 수많은 문제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현대 영미권 경제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사회적 적실성과 역사성이라는 중요한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합리적’이라고 가정된 생산자 또는 소비자로서의 경제 행위자가 어떻게 이윤과 효용을 극대화하고,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통해 일반 균형에 다다르는지를 핵심 연구 과제로 삼고 있는 주류 미시경제학은, 근대 사회에 존재하는 그리고 여러 사회철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분석한 바 있는 ‘근대적 이성의 복수성’이란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시경제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조차 경제 행위자들이 전략적 또는 목적 합리적 이성 이외에도 다른 이성적 판단과 고려를 한다는 사실을 분석할 인식론적 수단을 결여하고 있다.

게다가 합리적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상호작용이 잠재적으로 야기할 수 있는 외부성(externality)에 대해서도 주류 미시경제학은 제대로 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된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를 근본적으로 구속하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와 법적 제도적 배열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함몰된 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인식론적인 차원에서도 미국식 주류 경제학은 분석자(경제학자)와 행위자(소비자, 생산자 등)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간극 또는 ‘인식론적 거리’에 대해서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통계학자나 수리 경제학자 자신들도 평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은 초월적 계산 능력을 경제 행위자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부여하면서 합리적 기대 가설의 타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미시 경제학과 함께 현대 경제학 프로그램의 핵심 연구 영역인 거시경제학 영역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재정 정책과 금융 정책, 기업 투자와 소비 및 물가 변동 등 거시 경제학의 대표적인 연구 영역은 몰역사적인 생산 함수와 소비 함수를 동원한 동적 최적화 모델을 세우고 문제를 풀이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대학원 과정에서 더이상 경제사상사나 경제사 관련 과목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그 중요성과 복잡성을 더해가는 금융 문제에 대해서도 주요 대학원의 금융 경제학 프로그램은 제대로 해명할 개념적 수단을 결여하고 있다. 지배적인 담론은 낡고도 낡은 통화주의 이론에 근거하거나 금융 자산의 상대적 수익률을 예측하는 자산 다변화-비지니즈 모델로 퇴락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 금융 시장의 본질적인 불안정성과 금융 기업들이 실물 경제와 맺고 있는 복잡다단한 거래관계는 ‘저축에 기반한 투자 증대’라는 낡은 공식으로 환원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금융 시장의 원할한 작동을 가로막은 비신축성 또는 경직성이나 비대칭적 정보론으로 환원되고 있을 뿐이다.

비주류 경제학계의 역사와 동향

주류 경제학 담론이 지닌 일종의 폐쇄회로와 같은 이같은 문제점들에게 대해서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비판을 해왔다.

우선, 19세기 후반 한계주의 학파(Marginalist)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편파적으로 이해된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본(이윤)과 노동(실질 임금)의 적대적 상호관계를 재정립하려고 했던 피에로 스라파와 그의 뒤를 이은 신리카도주의 경제학자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거치며 정점에 달한 칼 맑스의 잉여 가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고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복잡성과 산업관계의 연관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려고 한 현대의 고전적 맑스주의 경제학자들도 왕성하게 비주류 경제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케인즈의 거시 금융경제 이론을, 투자를 통한 저축율과 경제 성장율의 증대라는 기본 테마와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복잡성과 금융 불안정성이라는 문제의식과 연결시켜 온 포스트 케인즈주의(Post-Keynesian) 경제학자들의 논의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들은 특히 금융 시장과 노동 시장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을 강조하는 스티클리츠와 같은 뉴케인지언 경제학자들과는 구별되는 독립적인 연구 방법과 의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 이외에도 여성주의(Feminism)와 제도주의적(Institutionalist)인 시각에서 기업의 투자와 생산 활동 그리고 거시경제의 동학과 역사적 변천을 분석하려고 하는 시도들도, 비록 주변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경제학계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영미권 경제학계 안에서 1980년대 이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온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 일반 균형론, 합리적 기대 가설과 금융 시장의 효율성(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라는 공고한 지적 헤게모니에 맞서서 독립적인 연구 의제를 발전시키고 학회 운영, 잡지 발행, 그리고 도서 출판의 형태로 활발하게 활동해 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대한 비판 경제학자들의 반응

최근 전개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이처럼 이념적인 간극을 보여온 경제학 담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주류 경제학 담론에 대한 거부감과 비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학계에서 주변화된 것처럼 보였던 비주류 경제학자와 비판적 성향의 사회과학자들의 논의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를 먼저 간략하게 소개하고, 뒤이어 영미권의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어떠한 연구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를 전하고자 한다.

우선, 미국 발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한창 번져나가던 2008년 가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는 왜 금융 위기가 발생했고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공개적으로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영국의 왕립 학술원에 소속되어 있던 주류 경제학자들은 여왕에게 ‘도래하는 금융 위기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었던 경제학자들의 무능력’을 인정하면서 ‘창의성과 사회 현안에 대한 민감성을 갖추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집단 사고’를 자책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시의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최근 토비 캐롤과 샤하르 하메이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한 글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의 집합적인 무능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한계 효용 중심의 수요 공급 이론과 로빈슨 크루소우의 우화에서나 등장하는 자기 조절적 생산과 노동 및 소득 분배론을 핵심으로 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뿌리 깊게 잠재해 있는 학문의 정향성이야말로 주류 경제학자들의 무능력과 비사회성을 야기한 원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영국의 대표적인 비주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이클 립턴, 스테파니 그리핀-존스 그리고 로버드 웨이드 등은 영국의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금융 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 조치들이 금융 위기를 빈번하게 발생시키고 국내적으로는 경제적 소득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현재와 같은 위기 국면에서는 긴축 정책을 취할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유효 수요를 증대시키고 조세 형평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확대 재정 정책 편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같은 글에서 경제학자들과 경제 정책 결정자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정향된 편협한 이론이 아니라 리카도와 맑스 등의 고전파 정치경제학, 알프레드 마샬과 케인즈 그리고 하이만 민스키(Hyman P. Minsky)와 같은 사람들이 주창했던 금융 부문의 사회화와 정부의 적극적인 거시경제 조정 정책에 관한 이론을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툴사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스캇 카터(Scott Carter)의 입장은 더욱 선명하다. 그는 한계 효용 및 한계 생산성 이론에 기반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가설, 그리고 다시 이 가설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의 일반 균형론을 한마디로 ‘1%를 위한 경제학’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는 생산 과정에서 잉여 가치가 착취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쳤던 맑스주의와 스라피안 경제학을 학문적으로 복권시키는 것이야말로 ‘99%를 위한 경제학’을 수립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마치 ‘과학’의 지위를 독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양 행세해 왔던 현대판 ‘벌거벗은 임금님’(신고전파 경제학과 일반 균형 이론)의 실체를 폭로하고, 주류 경제학 담론이 합리화하고 변호하는 억압의 질서를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스쿨과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암허스트 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들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대해서 지금까지 보여준 반응도 흥미롭다. 이 두 대학의 경제학 프로그램은 미국의 유타 대학이나 미주리 캔사스 시티 대학 등과 함께 미국 경제학계에서 비주류 경제학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으로 유명한 대학들이다.

뉴스쿨 대학 경제학과 교수들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 사안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뉴욕시 소재 대학생들이 뉴스쿨 대학 부속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자마자 즉각 그 점거 운동을 지지한다는 공개 성명서를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암허스트 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들도 ‘경제학을 점령하라’(Occupy Economics)라는 제목을 단 동영상을 만들어 다음과 같은 일종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경제학계에서 벌어진 이념적 세척을 거부한다. 이와 함께 현재와 같은 경제 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필수불가결한 논쟁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1% 부자와 정치 엘리트들의 단기적인 탐욕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키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지지한다. 우리는 공공 장소에서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경찰과 공무원들을 동원해 진압하려고 하는 냉소적이고 전도된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경제, 생태친화적인 경제,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경제 시스템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경제 정의와 사회 정의를 요구하며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는 점거 운동가들과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 –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함께 하는 경제학자들 일동”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최근 연구 동향

비주류 경제학자들과 비판 사회과학자들의 이와 같은 사회적 실천이 가까운 장래에 주류 경제학자들의 지배적인 담론과 정향성을 대체하고 주요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신고전파 일반 균형론과 그 변형태의 주창자와 옹호자들이 영미권의 학술 시스템과 각종 저널들을 장악하고, 이단적인 견해들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것을 가로막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련의 등급이 매겨진 저널에 어떠한 글을 발표했는가를 신규 교수 임용이나 승진 심사에 중요하게 반영하는 대학 행정가들의 관행은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학자들을 배척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해 왔다.(한국의 학술진층 시스템은 바로 이와 같은 기제를 한국의 학계에 무차별적으로 이식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난 수년간 지속된 있는 국제적 차원의 경제 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 운동이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사회 활동에 지대한 자극과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학술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비주류 경제학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최근 어떠한 연구 주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몇 년 동안 비주류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원인과 과정 및 정책적 대안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을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 지닌 본질적인 모순 –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에 따른 이윤율의 하락 – 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그래서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축적 체제의 현재와 같은 파국을 돌파하는 대안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와 더불어, 금융의 국제화가 야기하는 다양한 경제 문제들을 탐구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새롭게 동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맑스주의와 포스트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다른 부분에 비해 비대하게 발전한 금융 부분이 어떻게 생산적 기업의 투자를 정체시키고 고용의 양과 질을 악화시키는지를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증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주류 경제학 학회 모임이나 컨퍼런스에서는 이와 같은 ‘금융화’(financialization) 과정의 기원과 전개 그리고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종래의 금융화에 관한 논의가 영국과 미국의 산업 구조 변동에 국한되어 왔다면, 최근 들어서는 외환 및 재정 위기를 경험했던 나라들(라틴 아메리카와 동아시아 그리고 터키 등)에 대한 사례 분석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를 통해 비판 경제학자들은 금융 산업과 비금융 산업의 관계, 정부의 산업 정책, 금융 위기 국면에서 취할 정책적 대안 등에 관해 심도 깊게 논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 위기 국면에서 통상적으로 취해지는 긴축 정책이 어떠한 방식으로 경제 성장과 미래의 성장 동력을 잠식하고 채권국 은행들과 국제 투자자들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인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과 아동 그리고 이주 노동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익을 희생하는지에 관한 이론적, 경험적 분석도 중요한 연구 테마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들이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는 거시 경제 성장 지표들도 새로운 시각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통적인 국내총생산 지표는 가계와 비영리 단체들이 수행하는 직간접적인 경제활동의 기여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종래의 낡고도 낡은 거시 경제 지표들을 생태주의적 함의를 담을 뿐만 아니라 가계와 비영리기구들의 사회적 기여분도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로 바꿀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전통적인 실업률 개념도 협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종래의 실업율 지표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서 고용의 양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과 소득 그리고 기술적 숙련도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고용의 질을 제대로 포착하는 실질 실업률 개념틀을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 * *

참고 및 소개 자료들

• 영미권, 특히 미국의 주류 경제학 담론의 역사와 최근 동향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들로는 다음의 책들이 있다. Paul Krugman, Peddling Prosperity,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1995; Robert Lucas, Jr. Studies in Business-Cycle, Boston: MIT Press TheoryGeorge Macesich, The Politics of Monetarism – Its Historical and Institutional Development, New Jersey: Rowman & Allanheld Publishers, 1984; 박만섭 엮음, <신고전파에 대한 12 대안 – 경제학, 더 넓은 지평을 향하여>, 서울: 이투신서, 2005

• 경제 위기 국면에서 주류 경제학 담론이 보여준 무능함에 대한 일종의 자기 성찰,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관련하여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태도에 대해서는 관련해서는 Toby Carroll and Shahar Hameiri, “Where are they now?,”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Edition, December 05, 2011; Michael Lipton, Stephany Griffith-Jones and Robert Wade, “A three-step programme to re-civilise capitalism,” The Guardian, December 07, 2011; Jonathan Tasini, “Harvard Revolt Against the "Free Market",” November 07, 2011; Scott Carter, “Occupy Economics! The Occupy Movement and Economic Theory,” Red State: The Journal of Socialist Thought from the Heartland, Volume 1: Issue 3, November 2011; Economists stand with Occupy Wall Street, “Occupy Economics – Statement on Occupy Wall Street” (www.econ4.org; http://player.vimeo.com/video/32597394?autoplay=1; http://vimeo.com/27264995) 등을 참조.

• 비주류 경제학의 역사와 최근의 정책 제안 그리고 연구 동향 등에 대해서는 비주류 경제학 소식지세계 경제학회 소식지 등을 참조. 특히 비주류 경제학 소식지에는 비판 경제학 프로그램과 각종 저널 그리고 학회 활동 등에 관한 유용한 정보가 실려 있다.

* 이 글을 쓴 신희영은 신사회과학원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경제학과를 졸업하고(경제학 박사), 뉴욕시 소재 재정정책연구소(Fiscal Policy Institute)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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