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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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29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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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 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 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실천문학》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 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 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 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 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 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 작업을 발목 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 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 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 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 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 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 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 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 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 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서풍에 부치는 노래〉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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