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 한국은행을 점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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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04일 08: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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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을 걷는 이가 요즘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걸었다. 충무로 사무실부터 볼일 있는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가을이 좋았다. 황망한 서울 도심에도 가을은 마지막으로 단풍을 선사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마른내길을 따라 명동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요즘 일본 관광객이 이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듯 들려오는 모든 언어가 일본어다. 하다못해 이곳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어로 호객한다. 그 길 끝에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있다. 예전에 일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이다. 저 우아하고 그럴듯한 건물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다이이치은행 서울지점

    코너를 오른 쪽으로 돌아 큰 길로 나서면 이번에는 한국은행 본점 건물이 보인다. 일본인 다쓰노의 설계로 일본 다이이치은행 서울지점 건물로 짓기 시작해 1912년 준공되어 조선은행 본점으로 쓰였다. 제국주의 지배의 본산이었다.

    그 오른쪽 길로 걷다보니 돌로 만든 아름다운 벤치와 은행나무 낙엽이 아름답게 깔려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곳에서 앉아 가을을 만끽하지 않는다. 그저 황망히 걸어가는 사무직만이 파인더에 들어온다.

       
      

    이곳 명동은 한국은행 덕분에 금융회사의 본산처럼 빌딩들이 솟아 있다. 일제를 지나 미군정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은행을 지배하면 그 나라의 경제를 장악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처럼. 하지만 이 거리는 참 쓸쓸하다. 그저 옛 식민의 자취가 남은 박물관 같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금물.

    월스트리트는 옛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인디언들의 공격을 막고자 담을 쌓고 ‘뉴 암스테르담’이라 붙인 곳이다. 그곳에 뉴욕증권거래소가 자리 잡으면서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본산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곳을 미국의 인민들이 점령했다. OCCUPY WALLSTREET. 하지만 사실 이곳은 그저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을 뿐 금융자본주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바이블처럼 꺼내 읽던 책의 먼지를 털고 다시 잡아든다. 이 책 1장에서 6장에 걸쳐 제국주의의 5가지 기본적 특질을 분석한다.

    낙엽 위의 <제국주의론>

    “제국주의의 제1 특질은 생산의 집적 및 자본의 집중이 고도의 발전단계에 도달, 독점체가 형성되고 종래의 자유경쟁 대신 독점이 경제생활을 결정적으로 지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독점의 지배가 공황, 경쟁, 생산의 무정부성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강화, 격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제2 특질은 은행자본의 축적 및 은행독점체의 형성에 의해 은행이 종래의 중개업자의 지위에서 금융시장의 전능한 독점체로 전화,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이 유착하여 금융자본이 발생하고 이를 기초로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제3 특질은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히 중요한 의의를 획득한다는 데 있다. 레닌은 자본수출이 점차 상품수출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어 투자권을 둘러싼 자본주의 제국 간의 모순ㆍ투쟁을 격화시키며, 식민지 인민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제국주의 본국 경제에 기생성을 각인한다고 설명한다.

    제4 특질은 국제적 독점체(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 콘체른)가 형성되어 세계자본주의 시장을 분할한다는 점이다. 레닌은 개별 독점체 및 독점그룹으로 구성되는 국제적 독점체의 내부협정이 이윤상승을 위한 격렬한 투쟁 속에서 불안정하게 되고 개별 독점체 사이의 투쟁이 야기됨을 지적하고, 이러한 거대 독점체에 의한 세계분할이, 다음 제국주의의 제 5 특질, 즉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의한 세계의 영토분할의 완료와 긴밀히 결부된다고 설명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다. 우리는 레닌의 이론가로서의 탁월함을 잊었나 보다. 사회주의가 해체되고도 20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이 책의 여전한 유의미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마지막 10장에서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지위를 규정하고 그것을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이며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라고 선언”한다. 이건 잘 모르겠다. 진단은 그럴듯한데 자본주의가 쉽게 망해줄 것 같지 않다.

    김진숙의 크레인과 아이폰 그리고 자본주의

    김진숙의 노을 속 크레인은 그 전야를 짐작케 하지만 고도의 집적화된 저렴한 ‘아이폰’은 여전히 자본주의 우위성을 자랑한다. 중국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 한술 떠 죽음까지 짜내면서 말이다. 내가 지나친 한국은행 본점은 누구도 점령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일까? 내 생각에는 여의도가 아니라 명동이 점령할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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