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굴욕, 구걸하듯 맺은 정책협약
    By
        2011년 10월 29일 09:17 오전

    Print Friendly

    쿨하게 선거운동에 결합한다

    정책협약을 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박원순 후보 측은 거래하는 것 같아 구태의연하다며 빠지려는 분위기였다. 노동 문제로 발목이 잡히지 않을까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민주노총 방침에 따라 10월 11일 서울지역 간부결의대회가 열렸다.

    박원순 후보가 이 자리에 와야 선거운동을 제대로 결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 후보 측은 여전히 협약식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바람을 타고 있던 박원순 후보 쪽의 입장에서는 협약식에 구애받지 않고 선거를 할 작정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설마 투표를 거부하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책토론회 같은 걸로 대치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7일 열린 서울본부 운영위에 보고되었다. 운영위원들은 대체로 후보 측을 설득할 수 없다면, 해고자 복직 등 우리의 요구를 끝까지 실현하기 위해 일단 조건없이 선거에 임하자는 의견이었다. 선거운동을 안 하면 다른 경로를 통한 관철 방식이 없는 조건에서 결국 우리만 손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박원순 후보. 

    11일 서울본부 운영위원들과 박원순 후보가 간담회를 가지면서 우리는 당선되자마자 해고자를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했으나, 선문답하듯 "크리마스 선물이면 되냐"는 식으로 우회했고, 노정협의기구와 관련해서는 "대화채널을 가동하여 노사현안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열렬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간담회와 간부 결의대회를 마치기는 했으나, 뭔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손학규의 쿠데타, 민주당의 패권, 민노당의 패착

    10월 5일 손학규 대표는 박영선 후보의 패배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 카드를 던진다. 민주당이 선거운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완전한 ‘행패’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내년 총선의 지역 기반을 다지려는 민주당의 지구당 위원장들이 기겁을 했을 터였다.

    박원순 후보 쪽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대본 체계 구성의 전권은 민주당 쪽으로 넘어갔다. 시민사회진영은 자신들의 후보를 낼 수 있었으니 이미 몫은 충분하게 챙긴 거 같았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 완전히 배제되다시피됐다.

    이러한 패권적 상황에서 강원 인제군수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가 합의되지 않자, 자신들에게 양보를 하라던 민주노동당이 서울시장 선대위에 결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버린다.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대표는 공동선대 위원장을 맡지 않고, 최규엽 후보와 서울시당 위원장은 본부장을 맡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 위원장도 공동 선대위원장에 결합할 수 없었다. 이는 매일매일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노동 부문이 빠지게 되는 것이고, 선거운동 기간에 반드시 챙겨야 하는 우리의 몫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리당략! 이 같은 민주노동당의 행위는 민주노총 쪽의 해고자 복직 요구 등 다양한 요구를 진지하게 검토해본 결과였을까? 대중조직의 이해와 요구를 지켜주고 대변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배타적 지지까지 하면서 키워줘야 할 이유가 없는 중대한 사태였다.

    민주당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불만을 야권 단일후보에 피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표출하고 대응하는 것은 심각한 패착이었다. 며칠 후 야3당 공동협약 사항이라며 최규엽 후보는 공동선대본부장에 복귀한다. 선거 막바지에는 민주노동당,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위원장이 다시 선대본에 결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서 시민사회단체에까지 폭넓은 관계를 가지고 있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역할을 하게 되고, 노동희망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임공동 위원장으로서 사실상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함께 민주노총 및 빈민, 실업자 조직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국민참여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장충체육관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박원순 후보.

    진보진영의 전체세력으로 선대본에 결합한 게 아니고, 노조 진영만 결합하게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일하는 사람의 선대본을 만들어 함께 하면서도 선대본부장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기이한 운동을 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의 운동본부’ 구성을 포함하여 예비선거 단계, 본선에서의 선대위 결합 문제 등에 대해 당이 정하면 대중조직인 노조는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는 관행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타적 지지 방침을 갖는 동맹 관계로서 선거라는 비상시국에서 전략의 공유와 중대한 결단에서의 상호합의와 조율은 필수적인 것이며 조직 간의 예의가 아닐까?

    한신이 되다

    13일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 선대본에 결합해보니 선거운동 체계는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로 2원화된 구조였고, 노동은 선대위 직속으로 별도의 기구이면서도 사실상은 시민단체의 하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협약식과 후보 일정을 정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대외협력 담당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에서 정책협약식 체결 대신 후보 공약과 간담회로 대신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맹과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선거 참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정책협약을 맺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관철하는 것이 중요했다. 캠프 쪽은 11일 서울본부에 방문한 걸로 가름하고 싶어했다.

    후보가 워낙 바쁘기도 했지만 협약식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박 후보가 나경원 후보측의 네거티브 공세로 인해 여론 조사상 지지율이 박빙을 기록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집토끼가 아니라는 것을 선본 측에 강조하면서 정책협약을 맺어야만 지도부들이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보 측은 마지못해 협약식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공공연맹의 경우는 머리를 짜내어 후보가 음식폐기물 집하장을 밤 11시에 방문하게 하고 그 곳에서 협약식을 맺기로 했으나, 결국 이는 무산되고 전달식만 하게 된다. 나중에 후보에게 서명을 받고 나서야 민주노총 위원장과 산별대표자들이 지지 선언을 했고, 후보와 사진을 찍게 된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협약식을 맺기를 강력하게 요청하였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못하고 후보가 건대병원을 방문하는 와중에 간단한 협약식을 진행했다. 박 후보와 노동조합 측의 정책협약식은 구걸하듯 그렇게 맺어졌다.

    이외에도 넥타이 부대의 상징인 사무금융노조와 출근 시 공동 행동, 경동시장에서 하역노동자와의 만남 등등 10여개의 후보 초청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송 토론이 있는 날은 반나절 밖에 없는 조건에서 노조 쪽으로 일정을 빼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후보가 지역구 도는 것을 강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가장 불쾌했던 건은 민주노총 위원장과 산별대표자들이 모여 지지선언을 하려는 바로 그 시간에 후보 일정을 옆 건물로 배치시켜 기자 없는 썰렁한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이는 조직의 자존심 문제였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다.

       
      ▲민주노총과 산별연맹 주요 지도부들과 만나고 있는 박원순 후보.

    결국 후보가 있는 옆건물로 민주노총의 지도부들이 이동하여 가까스로 후보와 만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 해고자 복직을 생각하면서 안으로 울화를 삭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누구를 향해 분노할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의 반영이라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깡패들의 가랑이를 기어가면서 굴욕을 참았던 한신이 떠오기도 했다. 경험 많고 세력이 큰 민주당, 후보를 낸 시민운동진영에 비해 진보진영은 전체가 단결하여 결합하지 못한 것의 결과이기도 했다.

    선거운동 할 만큼 하다

    17일 광화문에서의 노동특위 출범식, 21일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에 맞춘 3700여명의 간부 지지 선언, 25일의 330여개 역사에서의 투표 독려 운동 등 대형 이벤트의 조직과,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 제작과 배포 등 노동조합은 나름의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노동특위에도 두 지하철노조의 해고자들을 비롯하여 거의 30여명이 결합하였고, 이수호 위원장과 노동특보들을 중심으로 현장 방문을 다양하게 진행하였다. 필자가 직접 방문한 노조들도 위원장들이 투표를 위한 근무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현장을 돌면서 투표를 독려하고 있었다. 박 후보의 당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선대본 전체의 기조는 정책 선거와 인물중심의 선거였지만, 한나라당 측의 집요한 네거티브 공세로 여론 지지율은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선거운동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전 시장의 실정에 초점을 맞춰 반한나라당 전선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네거티브에 대한 맞대응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특히 주간지 <시사인>에서 보도한 1억원 피부클리닉 진료 사실은 한나라당 측이 더 이상 네거티브 공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역풍이 몰아왔고, 한나라당 지지층의 결집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무상급식 반대 투표에 참여하였던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상당수가 투표에 불참한 것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노동조합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향후 서울시 차원의 노정 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선거 과정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반한나라당 전선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요구했던 것을 차분히 실현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역시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서 진보 진영 전체의 단결력에 달려 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되지 않는다면 앞날은 막연할 뿐이다. 필자는 이번 선거 전 과정에서 분열된 진보정당들의 무능과 무기력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벼랑 끝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의 통합운동이 재개되길 기대한다. (끝)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