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위에 이소선, 전태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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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6일 06: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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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관련한 20주년 사업에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민주노조였던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구속에 맞서 일어난 연대 투쟁이었습니다. 단 일주일만에 진압당하고 말았지만, 이틀째에 벌써 연대파업에 들어간 노동조합들이 있었고, "구로지역 20만 노동자여! 다함께 일어나 싸워나가자!”라는 제하의 유인물이 뿌려지기도 했습니다.

파업 3일차부터는 22개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 모여 연대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멀리 창원의 통일산업까지 연대파업에 들어 갔다가 구속된 노동자들이 있었고, 노동청 점거에 들어갔다가 구속된 노동자들, 전봇대 위에 올라가 항의 행동을 하다 구속당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SNS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연대의 불길은 단 1주일만에 전국을 휘돌았습니다.

   
  ▲구로지역 동맹파업 모습. 

그 사건으로 구로공단에서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2000여명이었고, 구속된 이들이 2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들이 이후 전노협 창립의 소중한 밑거름들이 되어 주었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사회적 투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이 87년 6월 항쟁의 숨은 주역들이었으며,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버팀목들이었습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5차 희망의 버스가 달리는 동안에도 그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에서는 17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KCTS노동자 한 분이 분신하기도 했습니다. 1200일이 넘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은 아무런 답 없이 1400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1500일이 되기 전에 문제 해결을 해보겠다고 100일 결사투쟁에 돌입했다고도 합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30여명이 다시 해고당했다고 하고,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6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이 모든 노동자들의 운명과 분노를 건 한판 싸움입니다. 1차 때 함께 담장을 넘었던 많은 이들도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실제 단위사업장의 담도 함께 넘었던 것입니다. 그때 같이 했던 콜트-콜텍, 기륭, 동희오토, 지엠대우, 재능교육, 현대차 현대중 비정규직 동지들과 콜트-콜텍, 쌍용자동차, 발레오공조코리아 정리해고자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이 모든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와 한을 모아 제2의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그간 5차 희망의 버스를 진행하며 온갖 장벽을 넘어 왔습니다. 1차 때 16개 중대, 2차 때 93개 중대, 3차 때 86개 중대, 4차 때 114개 중대, 5차 때 90여개 중대라는 공권력 탄압의 벽을 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110여 명의 연행자들이 나왔고, 350여 명이 소환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폭우를 이겼고, 폭염을 이겼고, 휴가철을 넘고, 수해를 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넘어 왔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수구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 탄압을 넘고,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부산지역 보수 특권층들의 조직적 반발을 넘어 왔습니다. 정리해고 철회는 안된다는 사이비 논객들의 벽도 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성과들도 많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 1차 때, 공권력의 방해를 뚫고 그 완고한 자본의 담장을 수백 명이 함께 넘은 것입니다. 12시까지 마치고 나가면 연행하지 않겠다는 경찰의 위협을 거부하고, 우리의 모든 일정을 완강하게 지킨 것입니다.

6월 27일 기만적인 노사협의를 사회적 무효선언을 통해 넘은 것도 눈물겨운 일이었습니다. 2차 당시 50여 명을 연행해 두고, 대표자 20여 명만을 공장 방문을 시켜주겠다는 경찰의 제안을 거부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3차 때 신새벽까지 근 3~4시간씩을 걸어걸어 85호 크레인 주변으로 모여들던 사람들의 행진도 감격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과정에 노동 문제가 전체 사회의 화두가 된 것도 소중한 것이었고, 14년만에 재벌총수를 국회청문회에 세운 것도 작지만 큰일이었습니다.

   
  ▲크레인 위에는 싸우는 전태일들이 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의 크레인 고공농성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날짜를 더해 야만과 분노의 300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건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만의 절망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운명이 그렇게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77일간의 옥쇄투쟁을 벌여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받고도 안돼 25일간에 걸쳐 파업을 해도, 또 그 누가 철탑을 오르고, 한강다리에 매달려도, 500일을 그렇게 싸우고, 1000일을 그렇게 싸워도 최소한의 안정된 일자리 하나 보장받을 수 없는 이 극악한 사회의 험악한 현실입니다.

300일 가까이 생사를 넘나들며 투쟁해도, 수만 명이 연 6개월여째 호소하고, 함께 싸워도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하나, 1700만 노동자들의 권익이 무수한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선합니다. 어떤 모멸감 속에 있을지 보지 않아도 선합니다.

그래서 이 투쟁은 이 땅 모든 소금꽃들의 공동투쟁입니다. 공동의 전선입니다. 이를 알기에 그간 이명박 정권과 전경련과 경총과 보수언론들은 조직적으로 이 운동의 성격을 왜곡하고, 탄압하기 위해 총력으로 나섰습니다. 이제 우리의 힘을 좀더 크게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한진 조남호를 넘어, 이런 1%의 재벌체제에 대한 사회적 단죄에 나서야 합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차별과 탄압의 근거가 되고 있는 관련 악법 자체를 우리의 힘으로 폐기시켜야 합니다. 300일째 이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그 보수의 아성인 부산에서 허물어뜨려야 합니다. 이만한 반이명박 전선이 따로 없습니다. 이만한 대자본 전선이 따로 없습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벼랑 끝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희망합니다. 그간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이 받았던 모든 탄압과 수모를 되로 갚아주는 연대와 투쟁의 전국노동자대회를 희망합니다. 국회 환노위의 낮은 권고안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힘있는 대사회적 요구안을 제출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희망합니다. 누구도 잘 넘지 못하는 저 경찰의 차벽을 뛰어넘어주는 전국노동자대회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주체적인 행동을 희망합니다.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이 사회적 투쟁에서 제3자가 아닙니다. 외부세력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응원군에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 모순의 극점인 정리해고, 비정규직화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당사자입니다. 사회적 정의를 세워나가는 투쟁에서 우리 모두는 주체입니다.

더 이상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만의 결사투쟁이 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만의, 유성기업 노동자들만의, 콜트콜텍 노동자들만의,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들만의, 대우자판 노동자들만의, 전주버스 노동자들만의 결사 투쟁이 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이고 당사자이다. 

그것은 실상은 나를 내버려두는 일입니다. 투쟁은 당사자들이 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은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기준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단위사업장의 틀로, 1700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라는 큰 울타리가 아닌 민주노총과 시민이라는 잘못된 구분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의 틀로 우리의 의식과 삶을 토막내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맞서 우리 모두가 이 사회운동의 가장 결사적인 주체로 서나가야 합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저 눈물의 300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저 야만의 300일에 모두가 나서서 저항해야 합니다. 한진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나와 우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우선, 고공농성 300일이 되는 11월 1일부터 3일 동안 한진중공업 서울 본사 앞에서 규탄 행사를 갖습니다. 희망버스 방식입니다. 다양한 희망버스 승객들이 24시간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를 얘기합니다.

11월 1일엔 부산에서도 연대의 자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11월 5일엔 부산에서 야만의 300일을 기억하는 ‘ConcerT 85′(가칭)가 열립니다. 그리고 ‘3000피스의 peace’를 모으는 사업도 진행됩니다. 1차 11월 12일까지 300일을 기억하는 항의 피켓 샘플(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홈페이지)을 출력해 1인 시위 등 가능한 행동을 하고 인증샷을 보내주면 모두를 큰 그림으로 맞춰보는 사업입니다.

3000인의 마음을 모으면 어떤 큰 그림이 되는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300일을 규탄하고 기억하는 행동들이 전국 각지에서, 각 사회 부문에서 진행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11월 12일-13일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가 확정되면, 촉박한 시간이지만 6차 희망의 버스도 함께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자리는 한국사회 운동 전체에게도 무척이나 소중한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노동자 민중들은 그간 너무나 많이 밀려 왔습니다. 너무나 많이 빼앗겨 왔습니다. 이젠 공세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필요합니다. 그 힘과 가능성, 고민들을 모아가는 전국노동자대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저 크레인 위의 사람들이 되뇌듯, 따라서 끝없이 얘기해 봅니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저 한맺힌 300일의 기도가 만인의 기도로 넓혀질 수 있도록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으로 형이 시다들에게 빵을 사주고 나면 함께 걸어걸어 미아리 고개를 넘었다던, 형이 저 하늘로 가고, 어머니가 그 자리에 다시 서며 자신은 40여년 동안 벙어리처럼 지내야 했다던, 자신의 역할은 40여년 동안 그것이었다던 전태삼 선배님이 며칠 전 이소선 어머니 49재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술이라며, 소주 두 병을 들고 와서 했던 말씀입니다.

어머님 장례 마치고 내려가 85호 크레인을 보는데 차마 올려다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크레인 위에 어머니와 형이 함께 있더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 두 분뿐이겠습니까. 김주익 열사가 곽재규 열사가, 박창수 열사가 지금 그 크레인 위에 함께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살아, 이겨, 이 땅 위로, 제 발로 걸어내려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전국노동자대회의 공식 명칭은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입니다. 지금 저 85호 크레인 위에 그 전태일과 그의 어머니와 제2, 제3, 제4, 제5, 제6의 전태일들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구하러, 그들과 함께 싸우러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울에서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구체적인 현장으로 달려가 더 직접적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연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함께 말해주십시오. 2011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부산 개최를 호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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