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가니', 언론 무관심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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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29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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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보여준 힘은 놀라웠다. 사회복지법인 우석 산하 시설 가운데 한 곳인 청각장애 특수학교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교장・교사들의 미성년 제자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29일자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그뿐이 아니다. 영화가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자 경찰청은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전면적으로 재수사하겠다고 나섰고, 법원과 검찰도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해명자료를 서둘러 냈다. 교과부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해당 학교의 자진 폐교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사건이 영화 한 편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4년 동안 설립자의 두 아들인 학교장과 행정실장 등이 일부 학생을 교장실과 기숙사 등으로 불러 청각장애 학생들을 수차례 성폭행하는 일이 자행됐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교장, 행정실장, 교사를 포함한 가해자 중 4명이 기소됐으나 모두 가벼운 징역형・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놀랍게도 현재 가해자들은 학교에 다시 복직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은 9월29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세상을 바꾸는 ‘영화의 힘’>
    국민일보 <감사원 ‘대통령 사전보고’ 급증>
    동아일보 <외환은행 인수 하나금융 확실>
    서울신문 <스크린의 힘>
    세계일보 <분노의 ‘도가니’…무관심한 사회 깨우다>
    조선일보 <이 3대에게는 나눔의 DNA가 흐른다>
    중앙일보 <삼성·MS 손잡고 반애플 연합전선>
    한겨레 <야구장 등 쓰인 석면물질 내년부터 수입・생산금지>
    한국일보 <호주 쇠고기 관세 없앤다>

    상업영화 한편에 경찰・검찰・법원・교육부 ‘진땀’

    경향신문은 이 영화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에 대해 1면 머리기사 <세상을 바꾸는 ‘영화의 힘’>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지방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취재한 소설, 그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분노의 도가니’에 빠졌다. 성폭행 사건이 핵심이었지만 경찰의 부패, 공무원의 무사안일, 종교집단의 광기, 법의 무능이 주변에 똬리를 튼 영화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 기존에 쌓여왔던 경찰과 검찰, 법원, 교육부, 종교단체 등 사회 지배세력과 사법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불신이 결합하면서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경향신문 9월29일자 1면

    한겨레 사설도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인화학교 사태, 국가기관도 가해자였다>에서 “끓어오르는 여론을 보고서야 그동안 얼렁뚱땅 수사하고, 가해자들에게 처벌 시늉만하고, 학교 책임자를 제재하지 않고, 관련제도와 법을 고치지 않은 국가기관들이 비로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한겨레는 “지금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는 건, 무력한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는커녕 이들의 피해를 방관한 국가기관들”이라며 △시민대책위원회가 242일간 법인 임원 해임을 촉구하고 학생들이 66일간이나 등교를 거부해도 교육당국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점 △지난 2007년 공익이사제 도입을 통해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를 막으려 했지만 한나라당 반대로 관련법 개정이 무산된 점 △나이 어린 장애인에게 범죄 피해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을 보완한 성폭력처벌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은 국회의 외면 등을 지적했다.

    ‘도가니’ 사건 여론 들끓자 이제서야…경찰・정치권 등 뒷북 행보 도마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사회를 고발하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28일 오후 8시까지 5만 명이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인터넷 포털 청원게시판에 서명을 했고, 8만 명이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청원운동에 동참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관련법을 만들겠다고 아우성이고, 경찰은 재조사에 착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도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세계일보 9월29일자 1면

    경찰청(청장 조현오)은 28일 국민여론이 들끓자 전면 재조사를 천명했다. 경찰청은 본청 지능범죄수사대 1개팀 5명과 여경 3명을 포함한 광주청 조속 성폭력 전문 수사관 10명 등 모두 15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재조사에 들어갔다. 특별수사팀은 이미 가해 교사들에 대한 법원 형이 확정돼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가해 교사들의 추가 성폭행 사례 등 또 다른 범죄가 드러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교육과학기술부도 28일 전국 41개 특수학교를 대상으로 다음달 중 장애학생 생활실태를 점검한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장애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교원이나 학생의 징계수위를 높이고 187개 특수교육지원센터 등과 연계해 피해 장애학생의 상담, 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공지영 작가 “언론이 인화학교 파헤쳐 줬다면 여기까지 안 왔을 것”

    여야는 일제히 사회복지법인 공익이사 선임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도가니법)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트위터에서 “영화의 실체인 광주 모 학교가 사회복지법인이라면 복지부가 재단(허가)을 취소하고 사정 당국에 고발해야 하며,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이라면 즉각 폐교하고 사정 당국에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반발로 막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9월29일자 3면

    이 작품의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과 영화가 인기를 끄는데 그치지 않고 법이 바뀌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공지영 작가는 언론에도 책임을 물었다. 그는 “요즘 SNS(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유통되는 뉴스만 봐요. 언론이 망가졌잖아요. 언론들이 인화학교 사건을 파헤쳐주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법원・검찰 “영화는 영화일 뿐…일부 내용 사실과 다르다” 반박

    한편, 항소심을 맡았던 재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엄벌하려고 했지만 친고죄 한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몇 개의 신문에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이 재판장은 “1심과 달리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고소를 취하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1심에서 취하됐다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데 2심에서 취하됐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한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판결로 인해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합리적으로 양형을 정하기로 결심했다”며 “인기에 영합하다 보면 ‘튀는 판결’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며 당시 판결에 대한 정당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9월29일자 8면

    광주고법과 광주지검도 29일 영화에서 묵시적으로 성폭력 가해자를 감싼 것으로 그려진 데 대한 입장을 밝혔다.

    광주고법은 영화 속 재판내용과 다른 실제 사건의 형량을 비교하는 표까지 제시하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지검도 영화에서 공판검사가 증거인 CD를 법정에 주지 않고 로펌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변호사와 타협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광주지검의 한 차장검사는 “특정 사건에 대한 공식발표에는 관심 없고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나 소설에 잘 반응하는 트렌드의 영향”이라며 “사건 진행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 등이 비난받을 일이 없었는데도 일부 사실이 달리 표현돼 검찰에 대한 여론도 흔들리는 것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고 밝혔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장애아동에 대한 인권유린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다만 영화가 고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판과정을 사실과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사법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사설 <‘도가니’는 극장 밖에서도 여전히 성행하는데…>에서 양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발언취지는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국민의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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