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시즌2' 논쟁, 불 붙나?
    진보혁신의 길… "참여, 쇄신" vs "자유주의적 개조 프로젝트"
        2012년 05월 19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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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른바 ‘진보 시즌2’ 운동을 둘러싼 당 안팎의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패권적 행태를 제압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안으로 들어가서 비대위와 함께 당내 혁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과 이런 주장은 ‘진보를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하는 프로그램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이 부딪치고 있다.

    진보 시즌1의 한계와 노동 중심성

    이번 논쟁은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통합진보당 중앙위가 파행을 끝난 다음날인 5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진보당에 입당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됐다. 그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보 시즌2에 대해 “군사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역시 비합법, 폭력적 수단에 의존했고 그 유전자는 문화적으로 전승되었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과거의 냉전적 사고나 행동양식은 진보진영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며, 현실과 유리된 ‘노동 중심성’이라는 주장, 생태문제에 대한 절박성이 떨어진 것이 진보 시즌1의 문제점이고 한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저항의 민주주의에서 합의의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를 정치의 원리로 삼아 스스로 실천하고, 사회에도 관철시켜야 한다. 작금의 사태는 좁게 보면 당내 민주주의를 다수결에 의한 당권 장악으로 왜곡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진보 시즌2 운동에 참여할 것으로 호소하였다. 경향, 한겨레 등에서도 이를 비중있게 다뤄줬다.

    이런 주장과 맥락이 통하는 것으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가 발표되고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의 대결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오큐파이(점령, Occupy) 통합진보당’ 운동을 제안하는 흐름도 당 안팎에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통합진보당에 적극 입당하여(점령하여), 구 당권파에 의해 왜곡된 진보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낡은 정파적 구조와 습성을 시민적 참여를 통해 바꾸어내자는 것이 이 운동을 제안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지난 11일 <프레시안>에 “통합진보당을 점령하라”라는 글을 통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사라진다면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도 가능하지 않다면서, 통합진보당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내 다수파의 재구성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민주적으로 개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진보신당 당원들이나 진보단체나 운동조직, 진보정치의 평범한 지지자들도 적극적으로 당원이 되어 시민적 다수를 형성하자고 주장한다.

    왼쪽부터 김세균, 김기원, 정태인, 장은주 교수

    “장하준과 대기업노조는 수구적 진보파”

    이런 흐름을 더 단순화시킨 것이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지난 16일자 한겨레신문 칼럼이었다. 김 교수는 아예 통합진보당 내의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의 갈등을 ‘수구적 진보’와 ‘개혁적 진보’의 대립으로 묘사한다. 그는 수구적 진보는 군사독재와 싸우다 닮아버린 불행한 시대의 유산이라고 규정하며, 이들을 북한의 시대 착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내에서 수구적 진보를 거세하고 개혁적 진보를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진보신당이나 녹색당도 통합진보당의 ‘개혁적 진보’ 세력을 지지하기 위해 입당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 교수는 더 나아가서 통합진보당 내뿐만 아니라 그 외부에 있는 장하준 교수나 대기업 노조도 수구적 진보파라고 규정한다.

    이 같은 주장은 현재 일부 지식인들과 시민 사회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흐름의 폭과 공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민주노총이 최근 중앙집행위를 열어 이 같은 ‘참여 속의 쇄신’ 입장을 거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편 이 같은 입장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비판자는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다. 김 교수는 5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기원 교수의 개혁적 진보라는 것이 ‘진보의 자유주의화’를 의미한다며 이를 비판했다.

    그는 “김기원 교수가 주장하는 시장과 국가의 질 향상, 즉 공정한 시장경쟁과 민주적 효율적 국가를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유주의 좌파노선 내지 한국적 지형에서 거론되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이고, 이것이 그가 얘기하는 개혁적 진보”라고 지적했다.

    김세균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 비판

    그는 김기원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 시즌2 운동이 진보를 자유주의적 진보로 개조하고, 진보정당을 그런 진보를 실천하는 시민적 대중정당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임이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진보정당이 노동자정당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닌 정당이어야 한다고 믿는 진보세력이 취할 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것이나 거기에서 파생된 논의는,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조사가 발표되면서 이를 둘러싼 진상조사의 사실 관계, 진보정당 정파들의 낡은 관행과 관습에 대한 비판과 성찰, 민주적 조직 질서와 패권적 조직 문화에 비판 등이 제기되면서 진행됐다.

    그리고 지난 12일 중앙위 폭력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논의가 더욱 심화돼서 진보운동 내부의 독선과 폭력, 비판과 견제, 합리적 공존 문화 등과 진보의 낡은 노선과 이념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됐다. 그리고 구 당권파의 저항과 신 당권파의 강경한 태도가 부딪히면서 당 내 세력들이 결집하고 갈등하는 권력투쟁의 모습도 나타났다.

    총선 이후 한국의 제3당의 지위를 가지게 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당 내부 문제로 제한될 수는 없었고, 언론의 집중적 취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연일 국민의 눈과 뒤에 등장하는 이슈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검찰 등의 국가기관들도 주목하는 사건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래서 민주노총 등 밀접한 연관을 가진 집단이나 진보적 지식인 등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고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논점 급속도로 확장

    따라서 현재의 사회적 논의는 통합진보당 내의 갈등이 어떻게 격화되고, 봉합되고, 수습될 것인가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된 내용들이지만 이와는 독립적으로 중요한 논의의 주제들이 사회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요 지상파 방송3사에서는 자신들의 대표적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진보정당 탄생 이후 초유의 일이다.

    통합진보당은 어떤 정당이며, 민주적 개조가 가능한가, 한국 사회에서 자주파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자주파는 하나의 정치집단인가, 진보정치 전반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재편되어야 하는가? 더 나아가 한국에서 ‘진보’는 어떤 내용을 가져야 하고, 과거의 진보는 어떻게 쇄신되어야 하는가, ‘자유주의’와 ‘진보’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갈등하는가… 등 논점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7일 확정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가 내린 “통합진보당이 노동 중심성 확보와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한 혁신안이 조합원과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실현될 때까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조건부로 철회한다.”는 결정도 이런 고민과 논의 맥락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미 현재의 논점은 통합진보당 내의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의 대립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고 있다. 이 논의의 전개와 실천적 귀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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