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 신부의 숨막히는 고뇌와 임수경
        2011년 08월 21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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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떠나다』(김중미 지음, 낮은산, 16000원)는 깡패 신부, 운동권 신부로 알려진 문정현의 삶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인 저자가 차분히 기록한 책이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저자는 그 어떤 순간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에 몸을 던져왔던 문정현 신부의 삶을 기록하면서, 그를 길 위로 나서게 했던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결정적 순간들과 함께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복음과 교회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까지 돌아보고 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첫 임지에 부임받았을 때만 해도 문정현의 사회의식은 미미한 편이었다. 이런 문정현이 민주화운동에 첫발을 디딘 계기는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연행된 사건이었다.

    김중미는 이 대목을 인터뷰하면서,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사제로서의 사회적 소명을 깨달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였냐며 여러 번 되물었지만 문정현 신부의 답은 한결같았다. 논리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했으며, 그의 말대로 “한순간도 유보 없이, 망설임 없이, 곧바로” 예수의 길에 선 것이다.

    문정현 신부는 새로운 부임지에 갈 때마다 노동자, 농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명을 이행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1985년 부임한 전북 장수의 장계성당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곳이다. 농민들과 성당 마당에 솥을 걸고 음식을 나눠 먹었고, 형제처럼 하나가 되어 소값 피해보상운동, 부당조세 시정운동 등을 해나갔던 곳, 신앙과 생활이 하나였으며 비신자들도 교회가 자신들의 삶에 꼭 필요한 곳이라고 여겼던 곳이었다.

    1988년 부임한 익산 창인동성당에서는 ‘노동자의 집’ 책임신부로서, 노동운동이 싹트고 있는 익산 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자들 편에 서서 수많은 분쟁을 해결했다. 성당 주임신부이기 때문에 성당 사목회 임원인 중소기업 대표나 기업 관리자 같은 지역 유지들과도 어울려야 했지만, 그는 항상 노동자들을 두둔하는 신부였다.

    한국 현대사의 치열하고 아픈 기록

    자신이 영세를 주었던 조성만이 1988년 조국통일을 외치며 투신한 것을 계기로 통일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던 문정현 신부는 89년 임수경의 방북 때 동생 문규현 신부를 북으로 파견하게 된다. 유학을 마친 촉망받는 젊은 사제였던 동생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었던 문정현 신부와, 자신의 북한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삼켜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심한 갈등을 겪었던 문규현 신부의 숨막히는 순간들이 이 책에서 생생하게 기술되고 있다.

    그 뒤로도 문정현 신부 앞에는 군산 미군기지 반환 싸움을 비롯해, 불평등한 소파 개정운동·부안·대추리·용산·강정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예수의 심정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현장이 마치 소명처럼 계속 주어진다. 그 부름에 항상 충실히 응답했던 문정현 신부의 삶을 돌아보자니,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치열하고 아픈 기록이기도 하다.

    책 속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이 2000년부터 문정현 신부의 모습을 담아온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다. 사진 속의 문정현 신부는 분노하는 예언자이기도 하지만,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 속에서 천진하게 웃는 인상 좋은 동네 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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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중미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에서 ‘기차길옆공부방’을 꾸려왔으며, 지금은 강화로 터전을 옮겨 농사를 짓고 인천과 강화를 오가며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로 살고 있다. 수많은 이웃들의 삶을 녹여낸 장편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 2000)로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 대상을 받으면서 동화작가가 되었고,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세상에 감동의 울림을 전하고 있다.

    그 동안 지은 책으로 『종이밥』(낮은산, 2002)『내 동생 아영이』(창비, 2002)『거대한 뿌리』(검둥소, 2006)『꽃섬고개 친구들』(검둥소, 2008) 『모여라, 유랑인형극단!』(낮은산, 2009) 등이 있다.

    가톨릭노동사목을 매개로 문정현 신부와 처음 만난 뒤,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정의와 평화를 외칠 때마다 어김없이 문정현 신부를 마주하게 되었다. 정 많은 문정현 신부를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친구’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논리와 계획이 아닌 사랑과 연민으로 행동하는 사제 문정현의 참모습을 발견하였고, 한평생 외로운 길을 선택해가며 예수의 벗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글로 써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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