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없어 행복한 중딩들의 해방구
        2011년 08월 21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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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우리들의 7일 전쟁』(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양철북, 10000원)은 중학생들이 자기들만의 세상인 ‘해방구’를 만들어 어른이라는 권력에 맞서는 7일간의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왔다.

    행복한 실종

    여름방학 종업식 날, 도쿄의 한 중학교 1학년 2반 남학생이 모두 사라졌다. 유괴된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은 "저녁 7시에 라디오를 들으라"는 정체모를 전화 한 통을 받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프로 레슬링 테마곡 ‘불꽃의 파이터’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연이어 한없이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부터 해방구 방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니 사라진 스물한 명의 남학생들은 빈 공장에 들어가 어른이 들어올 수 없는 아이들만의 공간 ‘해방구’를 만든 것. 해방구는 1960년대 말에 일본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인 ‘전공투 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을 부르는 말이다.

    아이들의 부모는 그 당시 학교에서, 거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청춘을 바쳤던 경험을 가슴속에 묻고 사는 세대다. 이들의 아이들이 16년 뒤, 전공투 운동의 상징인 해방구를 만들어 자신들을 억압하는 가장 큰 권력, ‘어른’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아이들은 리더 도루를 중심으로 해방구를 무너뜨리려는 어른들의 회유와 협박에 맞서 본격적으로 해방구 사수 작전을 펼친다. 해방구 밖에 있는 여학생들과 협력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어 미로를 설계하고 방송국에 연락해 어른들을 골탕 먹이는가 하면, 유괴된 친구를 구출하고 시장 사전 선거 현장을 도청해서 라디오로 생중계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을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온분자로 판단하는 꼰대 교사들과 공부 열심히 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만 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해방구에서 “우리는 어른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요!”라며 지금까지 눌러왔던 불만과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우리는 당신들의 꼭두각시가 아니예요"

    그리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방구 생활 규칙을 세우고 몸을 부대끼며 생활하면서 모범생, 싸움 짱, 마마보이 같은 지금까지 사회가 만든 편견에 사로잡혀 보지 못했던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며 성장한다.

    공격하는 족족 아이들에게 당하기만 한 어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권력을 투입하기로 한다. 과연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에게서 해방구를 사수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청소년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했을 법한 ‘어른들이 없는 세상’을 멋지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에피소드와 아이들의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이 쉬지 않고 펼쳐진다. 입시 지옥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등주의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공부하라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고, 복장을 검사하고 모범생, 문제아를 나누는 선생님도 없다.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이야기와 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일본 청소년들이 이 책에 열광한 이유도 평소 상상에만 머물던 자유로운 세상과 억눌러야만 했던 말과 행동이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모순을 아이들의 눈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른에 견주면 아이들의 사고는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함은 경쟁과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사회를 포장하려고 덕지덕지 갖다 붙인 어른들의 변명을 꿰뚫는 힘이 있다. 이 책은 동화 같은 서사 구조를 취함으로써 사회의 모순을 아이들의 사고방식대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너희는 절대 전쟁은 하지 마라"

    지금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상상을 할 숨통이라도 틔어주고 있는 걸까. "모든 자유는 대학에 가서 누려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바람은 늘 포기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세대와 잘못된 현실과 제도에 저항해 해방구 투쟁을 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십대들의 마음 속 이야기가 시간을 뛰어넘어 이어져 있다. 전쟁에 대한 반성과 체제에 저항했던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전공투 운동의 기억과 회한이 아이들의 해방구 선언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절대 전쟁은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세가와 할아버지를 통해 전쟁의 상처와 평화에 대한 기원을 간절하게 전한다. 그리고 고도로 진화한 경쟁 사회의 거대한 괴물 앞에서 무기력한 현실을 살아가는 부모 세대의 슬픔과 다음 세대를 통해 찾고 싶은 사람 세상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만나는 감동을 그리고 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뒤를 이어 투쟁할 이들이 나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중단할 뿐이라는 말은 각박한 현실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부모 세대의 눈물겨운 의지이다.

                                                      * * *

    저자 : 소다 오사무 (宗田 理)

    1928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아이치 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판 편집자로 일하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주로 아이나 노인과 같은 약자의 눈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상상력과 위트가 주는 통쾌한 웃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에 스며드는 거대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아우르고 있는 저자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역자 : 고향옥

    동덕여대와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고,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공부했다. 지금은 한일 아동문학 연구회에서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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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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