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정책 둘러싼 정치전쟁의 산물
    By
        2011년 08월 11일 09:3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주 금요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함에 따라 전 세계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져 들었다.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모든 나라의 주식시장은 ‘어게인 2008’을 방불케 하는 주가하락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루비니가 말하는 ‘퍼펙트 스톰’이란 큰 놈이 드디어 온 것인가 하는 ‘공포’에 따른 결과이다.

    무릎 꿇은 오바마

    그러나 사실 이번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주가폭락은 이른바 ‘부채한도 조정’을 둘러싼 tea party로 일컫는 공화당 지지자들과 오바마 행정부간 전쟁의 연장선에 있다. 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래 경제정책의 향방을 두고 벌어진 ‘정치전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전쟁의 일차적인 승자는 tea party이다. 즉 부자감세, 규제완화, 긴축재정을 통한 작은 정부론자이기도 한 tea party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부자증세, 재정지출과 정부개입의 확대로 흐르는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저항으로 일종의 ‘정치 쿠테타’를 감행하였고, 결국 오바마를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부채 한도 조정기한(8월 2일)이 다가오면서 tea party 지지자들은 초유의 ‘디폴트’ 가능성을 들먹이며,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하여 결국 법정 부채 한도를 현재 14조2,940억달러에서 4,000억달러 증액을 용인한 한편,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최소 2조1000억달러 줄이기로 하는 합의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의 승리에는 커다란 결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합의안은 ‘증세없는’ 정부 지출 감축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이후 미국 경제는 양적완화로 일컫는 통화확대 정책과 경기부양을 위한 천문학적인 재정확대에 의해 연명되어 왔다.

    근래에 발생한 국가채무는 증세가 없는 상황에서 실업급여 지급, 부실기업 지원 등 경제위기에 따른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1조8120억 달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비용(1조4690억 달러)에 기반하고 있다.

    재정정책 무력화돼

    따라서 합의안에 따른 증세없는 ‘긴축재정’의 실시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투여의 축소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 경기의 하강으로 이어질 것이다. 향후 정부 부채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예측은 부채한도 협의 전부터 흘러 나왔다. tea party 쪽의 ‘미국 디폴트론’에 대해 재정구조 취약에 따른 ‘국가 신용등급 강등론’이 대립한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지난 5일 발표한 신용평가 리포트에 정확하게 지적해 놓고 있다. ‘재정정책에 대한 정당간의 심각한 대립’이 ‘정부 채무를 안정화시키는 재정건전성(consolidation) 노력을 심각하게 악화시켜‘ 국가신용 등급을 강등한다. 다시 말해 증세와 같은 재정정책의 변화를 불가능하게 한 협의안은 장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국가 채무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용등급 강등의 후폭풍은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거쳐 다시 tea party에게 되돌려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명명되는 경제정책의 기조가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에 역행하였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tea party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의 자축은 불과 3일만에 책임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되었든 스탠더드앤드푸어스에 의해 강행된 사상 유래없는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은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이라는 커다란 충격파를 남겼다. 그 충격의 여파가 달러기축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 국제통화시스템의 개혁으로 나가게 될지 여부는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두 개의 무기 중 행정부의 재정정책은 무력화 되었다는 점이고, 앞으로 통화정책에만 기반하여 경제정책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통화정책이라는 것은 ‘금리정책’과 양적 완화라 불리우는 ‘통화량 증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문제이다.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낮추거나

    결국 미국은 양적 완화를 하든가,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다. 10일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버냉키는 향후 2년간 제로금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정책적 내용이 어떠하든 이는 불가피하게 2010년 G20 정상회의에서 봉합되었던 환율과 무역전쟁을 재촉발시키는 구조이다.

    경제성장 없는 통화량의 증대는 사실상 달러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며, 이는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에게는 이득을, 미국에 빚을 꾸어준 채권국과 수출국들은 보유한 미국채는 휴지가 되고 생산은 침체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신용평가 강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공조해 온 틀의 붕괴를 가져올 개연성을 높인다.

    글로벌 협력체제의 붕괴는 결국 국제 상품과 금융거래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며, 이에 따른 국제적 실업의 증가와 소득의 악화는 저소비와 저투자의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실물경제의 악화가 전 세계적으로 산적한 가계부채와 맞물린다면 우리는 이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정말 큰 놈의 출현을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