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숙제를 그는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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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8월 08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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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개발과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엄청난 산사태 재난과 이제 2백일을 훌쩍 넘어선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속에서 8월이 지나가고 있다. 공공성을 제도화하고 인간다운 삶을 디자인하는 것에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둔다면, 이 나라 정치는 더위먹어 정신줄 놓고 있음이 분명하다.

    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

    정치권은 이번 ‘인재’(人災)를 행정의 영역으로 제한시켜서 ‘행정부를 질타’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 양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공성을 제도화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행정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정치의 공공성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행정부의 기능적 역할을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결국 좋은 정치없이 좋은 행정은 없다.

    행정과 정치의 분리는 한진중공업 농성에서 보이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경찰의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경찰이 처둔 보호선을 법치의 잣대로 여기는 정부와 “김진숙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여당의 전 원내대표, 희망버스 참가들에게 최루액을 난사하는 경찰과 이를 옹호하는 여당에게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수렴하는 정치의 공공성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치는 그 본질이 그대로 현상으로 투영되거나 발현되지 않는다.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한데, 정치에서 흔히 그 매개체가 정당이나 정치인이다. 그래서 좋은 정당이란 공공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여당이라 하더라도 정부와 대립각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좋은 정치인 역시 공공성에 기반해서 행동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다음 대선에서 선택지는 바로 공공성을 정치의 우선적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 ‘시장(원리)을 거스를 수 있는 정치(인)’이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5년’을 경험해본 나름대로의 성찰이라면 성찰이다. 특히 ‘국가를 사영화’한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이런 성찰은 더 절실해진다.

    2011년 정치의 화두는 단연 2012년이다. 대통령선거는 정당보다는 인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는 총선이 대통령선거에 앞서 치러짐으로써, 의회 권력을 구성하는 총선 자체의 정치적 의미도 있지만, 대선의 유력 주자들이 걸러지는 여과기 역할도 할 것이다.

    문재인, 김해을 선거의 승자

    1주일이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대선후보 여론조사들에서 지지도의 등락에 관심의 초점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경쟁구도에서 한 발짝 물러나 과연 이들이 수렁에 빠진 정치를 구제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관심의 대상은 단연 문재인이다. 야당진영의 대선후보로서 조사기관에 따라서는 이미 손학규를 앞선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민주당이었다. 올해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출마할 것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요청했다. 민주당은 그를 ‘필승카드’로 여겼는데, 문재인은 참여당과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고사로 이 카드가 곧 접히기는 했지만, 민주당과 참여당간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그의 힘은 발휘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대본 상임고문직을 맡게 된다. 그런데 알다시피 참여당은 재보선에서 패배했다. 선거에서는 졌지만, 선대본 상임고문이었던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김해을 선거에서의 승자는 김태호가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또한 유시민이 꺾이고 문재인이 새롭게 부상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재보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야권통합의 촉매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고, 언론은 그를 야권의 대선후보 대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사 대상에 오르자마자 3% 내외의 지지도를 얻었고, 한 달여 만에 손학규와 유시민을 위협하는 야권의 유력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문재인 현상

    이쯤에서 이른바 ‘문재인 현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야당 지지자들은 새로운 인물을 갈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관찰자에 따라서는 폭발력을 지닌 잠재적 유력 후보로 이미 지목되어 왔다.

    손학규는 분당을 재보선 승리 효과를 톡톡히 보았지만, KBS 기자의 민주당 비공개회의 도청의혹 사건과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 제1야당 대표다운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손학규와 말이 앞서는 유시민이 만들어 놓은 야당 지지층의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이라고 해서 모두 환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은 야당 지지층으로부터 초대받을 만한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잘 알려졌듯이 그는 노무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왔던 ‘동지’ 중 한 사람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졌다. 

    그는 부산 출신이다. 그가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라고 지목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출신성분은 노무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부동의 ‘자산’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 의석 절반 이상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고, 그래야 정권교체도 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만 된다면 내년 총선은 대한민국 선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고, 그가 대선 무대로 가는 데 충분한 추진로켓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청와대 근무 시절,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을 무난하게 치렀다. 인권변호사 활동은 그의 개혁성에 대한 일종의 ‘보증서’로 읽힌다. 하지만 그가 가진 야당 대선후보로서의 대중들이 가지는 기대 지점은 언제든지, 그도 어쩔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로 뒤바뀔 수 있다. 그가 지닌 정치적 폭발력에 의문이 가는 출발점도 같은 지점에 있다.

    정권교체 역할론은 넘어서

    대중이 갈망하는 새로움은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비전을 밝힌 바가 없다. 정권교체를 위한 역할론이 비전이라면, 힘 좀 쓰는 영남권 정치인을 벗어나기 힘들다. 참여정부 계승이 비전이라면, 친노 지지층의 장막을 헤쳐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가 쓴 베스트셀러 『문재인의 운명』의 널리 회자되는 마무리는 이렇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대부분 그 ‘숙제’를 정권교체를 위한 대선 출마로 연결시킨다. 하지만 필자가 더 궁금한 것은 숙제를 푸는 방식이다. 문재인은 위의 마지막 문장으로 그의 책을 매듭짓기 전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사람사는 세상’으로, 결국 이는 “‘복지국가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고, 자신도 같은 꿈을 꾸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박근혜 역시 그의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고 ‘해석’한 바 있다. 박근혜의 복지국가와 문재인의 복지국가. 박근혜는 그의 복지국가 청사진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다. 아이러니는 그 골격-생애주기별 복지와 사회투자로서의 복지강조-이 참여정부의 ‘사회투자국가론’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의 그것은 아직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인다. 물론 책 한 권으로 그의 비전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문재인 정치의 출발은 참여정부의 ‘과(過)’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과에서부터 시작해야

    노무현은 (참여정부 시기) “진짜 무너진 것은 노동”이라고 하면서도, “거역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그물이 시장의 고래 힘을 못 이긴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문재인은 이와 같은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치신인’에게 초반부터 너무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 버리고, … ‘무슨 소리야 이거.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프로, 내년까지 40프로, 내후년까지 50프로 올려.’ 그냥 쫙 그어 버렸어야 되는데, 앉아서 ‘이거 몇 프로 올랐어요?’ 했으니….”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 중 한 대목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이처럼 후회한 관료주의와의 싸움에서 ‘무식하게 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성의 정치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바로 관료주의와 시장(자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진보진영에 대한 이해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권통합에 최우선의 목표를 둔 그에게 ‘참여정부를 왼쪽에서 공격했던 진보진영’ 정도의 인식으로는 통합은커녕 선거연대도 이끌어 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 없는 진보’로 규정하기보다는 ‘진보의 대안’에 관심을 먼저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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