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을 기획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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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28일 06: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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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을 괴롭히려면 먹물을 끼얹으면 된다.
    그러나 송경동을 괴롭히려면 오줌물을 끼얹어야 한다.
    아니 폭삭 삭힌 똥물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퍼부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해묵은 똥물에도
    총천연색 매운 최루액도 괴롭지 않다.
    멍자국 짓는 물대포에도
    후려치는 장봉 몽둥이도 괴롭지 않다.
    노동자를 죽음의 땅으로 몰아넣는 억압의 고통이 너무 큰 까닭에
    노동형제 잘린 모가지에 바닷바람 에이는 칼바람 너무 거센 까닭에
    양반에게 새경 떼이고도 멍석말이 당하고 쫓겨나는
    누천년의 조리돌림 시방도 너무 많은 까닭에
    괴로울 것 없다.
    정녕 괴로울 것 하나도 없다.

    탈세라든가 국내 기술 해외반출이라든가
    돈세탁 부당상속이라든가 병역비리라든가
    그런 고상한 죄는 짓지 못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 해서
    그의 잡다한 죄를 더듬어 보니,
    죄가 너무도 많고 커서
    살아서 감옥 나오긴 어려울성싶다.

    그의 죄상인 즉,
    사람 때린 죄
    차로 사람 친 죄
    좀 사는 벗 삥 뜯은 죄
    담벼락에 오줌 싸 갈긴 죄
    맨 정신으로 고성 방가한 죄
    몹쓸 세상에 묵은 가래 뱉은 죄
    친구까지 대동하고 무전취식한 죄
    경찰과 멱살 마주잡고 춤 한번 춘 죄
    신새벽까지 술 처먹고 술값 떼먹은 죄
    가산 노동자를 위해 가산 주민들을 괴롭힌 죄
    나쁜 새끼들한테 나쁜 새끼라고 침 튀기며 욕한 죄
    흠집 나고 부서진 자동차처럼 몸뚱어리 망가뜨리고 살아온 죄
    벼랑 끝 농성, 포클레인에 올라 발악하다 추락해 다리몽둥이 부러진 죄
    하나님도 아니면서 높은 곳에서 농성하는 자와 공공연히 교신한 죄
    내 이웃을 나 몰라라 외면하지 않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만 죄
    태일이 온 몸 태워 지켜낸 노동자의 법을 지키려 버둥거린 죄
    석 줄짜리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지를 받은 친구를 만난 죄
    배운 것도 없이 수많은 지식인들을 충동질한 죄
    가진 것도 없이 이 자본 세상에 태어난 죄
    사소한 개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인 죄
    제3자이면서 당사자가 되려한 죄
    원고지 밖 현장에서 글 쓴 죄
    제 앞가림 못하고 살아온 죄
    문학을 사랑한 죄
    문학보다 노동을 앞세운 죄
    면허 없이 전문 시위꾼이라 불린 죄
    제 몸보다 노동 형제를 근심한 죄
    낭만과 행복을 노래하지 않은 죄
    노동자의 아픔을 시로 옮긴 죄
    이 땅 노동자의 등골 후려치고
    값싼 착취의 땅으로 떠나는
    지상의 비극을 폭로한 죄
    차가운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기획한 죄
    어둠을 해체하고 빛을 조직한 죄
    자유를 기획한 죄
    정의를 기획한 죄
    평등을 기획한 죄
    평화를 기획한 죄
    사랑을 기획한 죄

    시인 송경동,
    혹자는 그가 희망버스를 기획하였다고 하나
    그가 기획한 것은 희망버스가 아니라 희망이다.
    절망은 짙은 어둠 속에서 폭풍처럼 덮치고 덮쳐 오니
    희망을 짊어진 자들이 칠흑 같은 밤을 지켜야
    강도처럼 찾아든 절망 앞에 온몸으로 맞서야
    검푸른 신새벽을 맞이할 것이 아니냐!
    희망을 기획하는 것도 죄가 되는 절망의 땅에서
    불혹의 나이가 넘도록 기획하고 살아온 것이라곤
    오직 한 가닥 희망이다!
    아득한 희망이다!
    붉은 희망이다!

    인간 송경동,
    그는 작디작은 점.
    우리 가운데 하나다.
    바람에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다.
    햇살에 증발하고 마는 사소한 물방울이다.
    권력의 발아래 깨알처럼 터지고야 마는 한 마리 개미다.
    밟혀 끊어진 허리로 복장 터져 꿈틀대는 먹구름 아래 지렁이다.
    그는 힘없어 쉽게 부서지는 보잘 것 없는 밑바닥 먹잇감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모든 이들이 그와 같다.
    수만 가지 다른 목소리를 ‘우리’란 이름으로 묶어준 것은
    송경동이 아니요, 김진숙은 더더욱 아니다.
    찬바람 서글프던 ‘이웃’을 하나로 묶어
    가슴 절절한 ‘우리’로 만든 사람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
    해고의 칼잡이다.

    기나긴 밤,
    적의 단두대가
    절망을 자르는 칼이 된다.
    밤에는 칼을 갈지 말라고 한다.
    밤에는 함께 모여 이웃을 지키지 말라 한다.
    밤에는 어진 사람들 잠 좀 자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밤에는 신고 없이, 허락 없이 집회 시위를 하지 말라고 한다.

    밤에는……
    밤에는 끓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용광로를 보았다면
    밤에는 야근 하는 노동자 하나도 없어 곤히 잠든 공장을 보았다면
    밤에는 차가운 바다에 뜨거운 쇳물에 빠져죽는 이가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격실 가스에 질식해 죽거나 폭사당하는 노동형제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굴뚝에 올라 목숨 걸고 대화를 청하는 해고노동자가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크레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구호하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일하지 않아도 높아가는 전세 융자금 이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잔업 특근 없이도 아들딸 대학 등록금에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자본의 억압과 수탈이 멈추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다면
    밤에는 어여쁜 가족들 곁에서 근심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시위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집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죄 짓지 않을 것이다.
    야밤에 희망을 기획하는
    어리석고 슬픈 죄를
    더럽게 아름다운 죄를
    아무도 짓지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신설 법령에
    새로운 법이 추가될 것 같다.
    이름하야 ‘희망기획죄’
    희망을 기획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 없으니
    죄를 짓지 않으려면 절망하는 것뿐이다.
    김진숙은 높고 높은 크레인에서 희망을 기획하고
    전태일은 넓고 넓은 하늘나라에서 희망을 기획하고
    이소선 어머니는 깊고 깊은 혼수상태에서도 희망을 기획하는데
    송경동이 감옥에서 희망을 기획하는 일쯤이야…….
    원고지 창살에 갇힌 부끄러운 낭만보다
    감옥 창살에 갇혀 자유를 노래하려니
    온몸으로 시를 쓴 죄
    희망을 기획한 죄
    시인 송경동!
    감옥에서 백년쯤 …
    아니, 천 년 쯤 살다 오라!
    희망을 기획한 사람을 구속할지언정
    희망마저 구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
    사랑마저 가둘 수는 없지 않느냐!

                                                   * * *

     

    * 이상경 시인은 노동정의와 희망을 믿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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