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는 곳 천미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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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12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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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과자 봉지 위로 개미들이 오른다
개미들은 담을 넘고 있는 거다
단내를 풍기는 과자를 희망이라 부르며
수백 수천 걸음을 걸어 왔으리라
부엌에서 온 놈
장판 밑에서 온 놈
벽 틈새를 뚫고 온 놈
딸내미 발가락을 간질이다 온 놈
과자, 아니 단내 나는 희망을 찾아
개미들의 천릿길을 왔다 폭풍질주로

담장을 기어오르는 개미들
검지 세워 쑥 바닥으로 밀친다
자빠져 나뒹구는 개미들 제 몸 일으키고
뒤따라오던 개미들 쓰러진 동료 피해
담장 기어오른다
손가락으로 밀치다
입술 동그랗게 오므려 후 불다
너희가 침범할 수 없는 희망이라고
너희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희망이라고
절망을 깨우쳐주건만

개미들은 오른다
담장을 박박 기어오른다
무르팍 깨어지고 이마빡 깨져도
절망을 학습시켜도
절망을 확인하고서도
멈추지 않는다

개미들은 끝내 과자 부스러기를 갖지 못할 것이다
개미도 알고 있다
인간의 역한 입김과 야만의 손길을
하지만 담장 넘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은
저 입김과 저 야만을 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싸우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개미들은 과자 봉지 옆
인간의 책꽂이에 185일째 홀로 외로이 꽂혀
누렇게 빛바래가는 <소금꽃나무>를 힐끗 고갯짓하며
담장을 오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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