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와 노동자, 비슷한 이 땅의 비극
    2011년 07월 05일 11:40 오전

Print Friendly

2011년 7월 4일 드디어 역사적인 ‘노’‘노’연대가 성사됐다. 노동자들은 이 땅의 뿌리 깊은 고통을 함께 짊어지기로 다짐했다. 그리고는 먼저 떠나간 민중의 넋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인다.

노근리와 노동자

복수노조 문제로 한창 분주한 서울의 양대 노총 사무실도 아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일하고 있는 울산이나 창원 대공장도 아니다.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61년 만에 이뤄진 연대의 현장, 이 곳은 바로 충청도 황간면 노근리 역사공원 조성지이다. ‘노’근리 희생자들과 소금꽃 찾아 천리길 ‘노’동자의 노노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충북 영동군에 있는 노근리 쌍굴다리. 흰색 동그라미는 탄환 흔적. 

희망의 폭풍질주! 소금꽃 찾아 천리길 4일차. 오늘은 걸으면서 노근리를 잠시 들렀다.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기총사격의 상흔을 돌아본 후 문득 ‘노근리와 노동자가 만났구나’ 싶어서 말장난을 조금 해보았다. 그러나, 혹시 노근리의 비극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꽤 많다. 한번 짚어볼까 한다.

1950년 7월 당시, 노근리 사람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땅을 일군 수확으로 자식들을 낳아 기르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전쟁이 터졌어도 순박하게 “그래도 여기까지 난리가 나겠어? 우린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피난민이 됐다.

그래도 나랏님 말씀 믿고 시키는 대로 피난의 길을 나섰다. 며칠만 있다 돌아오리라 믿고 나들이 하듯이 떠났다. 남의 나라 군인들이긴 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이 있으니 더 든든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우방’은 피난민과 북한군을 구분치 않았다. 사살 명령이 떨어지는 동안 대한민국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결국 노근리 양민 300여명은 영문도 모른채 쌍굴다리 안에 갇혀 총알 세례를 맞고 죽어갔다.

쌍용 정리해고자와 노근리 양민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노동자들도 매일 땀 흘려 번 정직한 돈으로 자식들을 길렀다. “먹튀자본이 들어와 신차 개발은 손도 안 댄다. 이러다 회사가 망한다.”는 말이 공장 안팎에 돌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만든 차에 애정이 있었고 끝까지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지키고 싶었다. ‘아무려면 나 같은 베테랑 일꾼을 정리해고 시킬까’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쌍용차를 살리겠다던 남의 나라 회사는 조용히 ‘먹’고 ‘튀’었다.

죽음 같은 해고를 피해서 시작한 공장 안 피난살이는 길어져만 갔다. 서민을 살리겠다던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같은 방패를 들고 있는 용역과 경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불개입을 천명한 정부,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한 노동자. 결과는 ‘공권력 투입’이라는 역설적 불개입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공장 안에 갇힌 채 정리해고의 칼날을 맞았다. 이들 중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상당수는 파업 이후의 죽음이다. 과연 죽음은 이제 끝났는가? 알 수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 답변도 하지 않는다.

꽤 그럴싸하지 않은가? 역사적 비극에 휩쓸린 양민이라는 점에서, 그 과정에 외국이 개입했으며 정부는 제 나라 국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오히려 비극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노근리와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많이 닮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공통점은 바로 고통과 죽음이다. 지금도 계속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고통과 죽음 말이다. 비극이 벌어진 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지도 못한다. 죄책감과 무력감, 무한 반복되는 고통의 기억들.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다보니 가슴은 꽉 죄어들고 머리는 터질 듯 아프고 속은 썩어 들어간다. 노근리에서 그랬듯이 쌍용차에서도 비극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있다.

김진숙 누이의 진정성

한진중공업은 또 어떤가? 공장에서 77일을 보낸 내가 그토록 괴로웠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데, 크레인 위에서 178일을 넘긴 김진숙이 서 있는 절벽은 어떤 곳일까? 나는 지금 두렵다. 지금 우리가 그 곳에 가지 않으면 누가 또 갈 수 있을까? 이 사회가 노근리의 고통을 다시 꺼내는 데는 약 50년의 시간이 걸렸지 않은가.

물론, 쌍용차나 한진의 노동자들은 훨씬 행운(?)이다. 아무리 그래도 노근리의 고통에 비하랴. 다행히 쌍용차의 고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귀를 기울였다. 고통의 심연을 치유하는 분이 있고, 노래를 불러주는 분이 있었고, “함께 웃자”고 손잡아주는 분이 있지 않은가.

저 멀리서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찾아와주신 수많은 희망들이 존재하지 않은가. 남의 염병보다 내 고뿔이 중한 법인데 이렇게 내 고통을 함께 아파해주니 그저 감사하다.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길을 걷는다. 한진 노동자들과 소금꽃 김진숙에게 우리가 가진 행복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 지금은 지옥 한가운데서 서있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우리들이 함께 손잡고 마음을 모을 수 있으면 어떤 곳도 지옥은 아니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우리 다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살기 위해서. 재벌과 자본이 아무리 깝쳐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 확신을 안전하게 전이시키기 위해.

오늘도 노노연대는 평택에서 노근리를 지나 부산까지 폭풍처럼 질주한다. 내일은 추풍령을 넘는다. 생일을 맞은 김진숙 누이에게 깊은 애정과 존중을 보낸다.

“누이 사랑해요. 그리고 생일축하해요. 기쁘게 누이를 ‘와락’ 안고 싶어요. 곧 만날 그 날 위해 쉼 없이, 죽을 힘 다해 내달려요”

하지만 난 ‘김진숙 누이의 진정성’이 늘 두렵다. 마음이 급한 이유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