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의 네번째 결심과 두 번째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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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24일 07: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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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2년 대선 정국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권영길을 안 건, 2001년에 알게 된 이후로 항상 따르고 지낸 형이 노사모 중앙 사무실에서 상근을 하다 그 곳을 뛰쳐나오면서 “대선이 끝나면 민노당에 입당해야겠다.”란 말을 저에게 한 이후였습니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고 반전시위에 나서던 어느 날, 대전역에서 3~4명 정도의 민주노동당 당원 분들이 입당원서를 가지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권영길과 그 형의 말이 생각났고, 저는 그렇게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채로 대전역에서 입당원서를 썼습니다.

    저에게 민노당이란 키워드를 처음 꺼낸 그 형도 이후 입당했습니다. 지금은 진보신당 관악의 모 당원인 그 형은 민주노동당 당원번호 34454번이었고, 저는 32666번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게 저와 권영길의 시작이었습니다.

    2.

    2003년 8월의 더운 여름날, 한국노총 여주 연수원에 고2의 저도 있었습니다. 청소년 정치캠프의 교장선생님은 노회찬 당시 사무총장이었고, 이지안 선배, 채진원 선배 등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첫째 날 밤에 저는 기다리던 권영길 대표를 볼 수 있었죠.

    대선 후보와의 만남, 강연회에서 저는 “선도적 군축은 국제 외교적 관점에서는 쉽게 실행할 수 없는 공허한 논의 아니냐?”라고 질문을 했었고, 그때 권 대표님이 다소 쩔쩔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푸근한 미소로 답변을 해주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정치캠프 멤버의 몇몇은 권 대표 앞에서 당시 유행하던 노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하면서 –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쓴웃음이 납니다 – 웃었는데, 같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셨었죠. 정말로 참 친근한 지도자상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밌던 교장선생님 노회찬은 아오안(인터넷 신조어, ‘아웃 오브 안중’의 줄임말로 안중에 없다, 신경 안 쓴다는 뜻)이었고, 나에겐 권영길뿐이었죠. 저에게 정치캠프는 좋은 선배들과 친구들을 볼 수 있던 시간이었고, 무엇보다도 권영길과, 노회찬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분회에 나가고 활동도 하는 진성당원이 되기로 한 것도 그때 이후였습니다.

    3.

    그 이후 저는 꾸준히 시위도 나가고, 2006년부터는 경희대 학위도 NL 친구들과 같이 하고, 패권주의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NL과 ‘다함께’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당원들 모임이었던 ‘토마토 친구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영길이란 이름을 경악과 실망의 눈으로 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일듯 합니다.

    당내 정파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고, 때로는 당내 ‘주사파’와 갈등도 불사했던 그의 모습은, 2007년 4월말 그의 대선 출마 선언과, 뒤이은 범NL 계열의 권영길 지지가 알려지면서 경악과 배신감으로 보이게 됐습니다.

    제가 선거운동을 도운 노회찬의 낙선, 그리고 결선에서 심상정의 낙선, 2007년 9월 15일 이후 권영길과 함께 하는 저의 당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이었습니다. 그가 당선 이후 첫 강연지로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을 잡았을 때 전 심술이 나서 질문했습니다.

    “백만 민중대회는 민주노동당의 대운하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과연 대선후보의 전략이나 정책일 수 있나요?” 3만 명 왔던 그 민중대회의 결과를 몰랐던 그때도, 권 후보가 멋쩍은 웃음과 굳은 목소리의 반론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4.

    3%, 71만표. 백만 민중대회의 백만도,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그를 뽑지 않은 숫자. 2007년 12월 28일 당 중앙위는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토마토 친구들이란 곳에서는 “권영길은 물러나라”, “현 지도부는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하라” 등을 내용으로 담은 성명서를 중앙위원회에서 돌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피켓팅을 했었죠.

       
      ▲가운데가 필자. 만두 상정은 원더걸스의 소희 별명에서 땄고, 호빵 회찬은 호빵맨과 닮아서 지은 구호다.

    그는 대선 3수를 하면서 이번 출마가 그의 “세 번째 결심”이라고 이야기했고, “도박을 하려면 이명박, 쪽박을 차려면 정동영, 대박을 치려면 권영길”을 찍으라고 이야기했었죠. 거기에 빗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명서는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권영길은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국민에게 심판당했다. 마땅히 국민과 당원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위하여,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해야 한다.…권영길의 ‘네 번째 결심’이 민주노동당을 부활시키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라고 말입니다.

    중앙위원회 시작 직전에 권영길 의원이 우리 모습을 봤습니다. 허허 웃으시더니 차례차례 악수를 해주셨죠.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우리 많이 봤지?” 하면서, 웃으면서 어깨를 툭툭 쳐주시더군요.

    5. 그리고 지금, “네 번째 결심”과 우리 모두의 두 번째 악수

    저는 통합 진보정당을 위한 백의종군 선언보다도, 07년 대선에 대한 사과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모두 발언 전문을 읽고 나자마자, ‘장면 4.’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때의 성명서를 다시 읽어보았고, 그때부터 역순으로 권영길과 나, 민주노동당과 나에 대해서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2007년에 진보진영의 어른이 될 기회를 놓치고, 추한 노정객이 되었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에 그는 드디어 진보진영의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창당의 주역이자 분당의 원흉은 권영길이란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저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 번 창당의 주역은 아니지만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분당 사태에 대한 결자해지의 자세는, 무엇보다도 책임정치의 완성 그 자체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다가왔던 것은, 2007년 연말 그때 권 대표가 저에게 해준 악수였습니다. 그 악수가 지금의 선택과 함께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권 대표의 정치적 의도”, “진작하지 그랬나”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권 대표 발언의 핵심은 자기반성과 성찰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번 “네 번째 결심”이 저나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향하는, “두 번째 악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단순히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통합에 대한 메시지 그 자체로만 봐선 안 됩니다.

    전 그의 “두 번째 악수”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악수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권영길의 선언을 기점으로, 독자파와 통합파가 악수하고, 국민파와 중앙파, 범정파가 악수를 하고, “진보정당”의 뜻을 함께 꿈꾸고 걸어왔던 모두가 통합을 위해 배려하는, 바로 그런 악수가 권영길이 청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왜 이 당이 이렇게 되었나, 나는 과거의 잘못을 타인에게 사과할 용기가 있을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분당 이후 진보신당 창당 과정과 초기에, 저와 다른 의견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적잖은 동료 학생당원 분들에게 나쁜 감정을 가졌었습니다.

    때로는 저의 경박한 언행이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었고, 그리고 그런 다툼이 저에게도 상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촛불 이후 2008년 제1회 진보신당 정치캠프를 잘 성사시키고, 사후에 그런 힘을 끝까지 이끌고 유지시키지 못하고 전 훈련소에 가야했습니다.

    만약 제가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학생 당원들을 배려하는 언행을 했더라면 그 성과들이 좀 더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런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나, 돌이켜보면 여전히 부끄럽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평가하려고만 했지, 자기의 행태에 대한 책임에 관해선 생각이 없었나 하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 여기서 반성과 성찰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권영길이 우리에게 던진 진짜 메시지라고 봤습니다.

    통합진보정당 모색의 핵심은 낡은 정파구도의 혁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가? 남한사회의 진보를 위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과 결론일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진보양당의 병존이 오히려 낡은 정파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 중요한 것은 상대의 과거 잘못에 대한 미움과 경계보다도 함께 배려하면서 타인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아닐까? 그것이 진보의 자세 아닐까? 라는 식의 자문자답. 자신부터 반성해야 타인과의 낡은 구도를 깰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의 이념과 사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종교겠지만, 타인이 공통된 목표를 위해 보다 더 나은 방법을 택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게 바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고 진보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 설득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신뢰 아니겠습니까?

    좌파는 인간을 신뢰합니다. 권 대표의 시도가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는 권 대표님의 손을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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