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후진국 & '잃어버린 3년'
    2011년 06월 03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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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중요한 전환기였던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여성운동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런 여성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차별적 법제도와 사회문화적 관행을 철폐하고 성평등(gender equality)을 지향하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 개선이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퇴행적 여성의식과 성평등 정책 방기

제도화에 동반되는 부작용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시민사회 부분의 여성운동과 국가 부문의 여성정책은 긍정적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동반성장해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나오면서 본격화된 여성정책은 여성발전기본법 제정(1995), 여성부 신설(2001), 성별영향평가 도입(2004), 여성 할당제 도입 등 성주류화를 위한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른바 여성인권 3법(성폭력 특별법, 가정폭력 방지법, 성매매 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2005) 등 여성인권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일정 정도 마련했다.

이런 제도적 기반 위에서 이명박 정부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이미 마련된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이를 실효성 있게 추진함으로써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실질적 조처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퇴행적인 여성의식을 노출하며 성평등 정책을 사실상 방기했다. 부적절한 인사를 여성부 장관 후보로 내세웠다가 국민의 조롱을 받으며 낙마하게 만들었고, 여성의식이나 여성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의심받는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여성부 폐지를 추진하다가 여성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우여곡절 끝에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존치되었지만, 보육을 포함한 가족 관련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해 예산이나 조직이 대폭 축소되었고 위상과 영향력도 크게 하락했다.

평가할 여성정책이 없다

예산은 2007년 1조 1,994억 원에서 2008년 539억원으로 1년 만에 95.5%가 줄어들었으며, 직원규모는 100명 정도의 초미니 부서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0년 보육업무를 제외한 가족, 청소년 업무를 여성부로 복귀시켜 여성가족부로 확대시키고 예산도 일정 정도 증가시켰지만,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주무부서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집권 3년 이명박 정권 시기 여성가족부가 한 일이라고는 여성부의 기본 업무인 여성 일자리 창출, 취약가족 지원사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로써 2007년 대선 당시 “양성평등에 대한 전담부서의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성계와의 약속은 파기되었고, “선진국 수준의 양성평등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정부 100대 국정과제는 공허한 수사에 그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성평등 의식에 기초한 종합적 여성정책은 사라졌고 민주정부 10년 동안 여성계가 공들여 쌓아놓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기능은 축소되었다. 여성정책과 관련해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 3년은 ‘잃어버린 시절’이다. 한 마디로 성평등 전담기구로서 여성가족부가 보이지 않고 여성정책이 실종한 것이 이명박 정부 3년 여성정책의 실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성불평등지수 138개국 중 20위(2010년 유엔 개발계획), 성격차지수 134개국 104위(2010년 세계경제포럼)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15세 이상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49.4%로 OECD 평균 61.3%와 일본 62.9%, 미국 69%에 비해 크게 낮다.

여성임금노동자 중 정규직은 47%에 그친다. 여성전문 관리직 종사자와 화이트칼라 사무직을 포함한 이른바 ‘질 좋은 일자리’ 비율은 전체 여성 취업자의 39%에 불과하다. 여성인력은 여전히 서비스, 판매업, 단순노무직, 농림, 어업 등 단순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6.2%에 머물고 있다.

한국 여성 삶은 후진국

2010년 합계 출산율은 1.24로 186개국 184위이다. 정부는 선진 한국으로의 진입을 외치고 있지만 지표상으로 나타난 한국 여성의 삶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알파 걸’의 득세 운운하며 마치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한 듯한 착시효과가 일어나고 있지만 현실 속 다수 여성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팍팍하며, 직장과 가정에서 안팎곱사등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명박 정부 들어 개선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 중상류층 여성들을 제외한 다수 여성들의 삶의 조건과 질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과 가사노동의 이중부담에 시달리는 여성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여성들이 저임금 비정규직에 내몰리는 현상도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경제위기로 여성의 해고와 불이익은 증가하고 있으며,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라 최저임금 미달자의 60%이상을 차지하는 빈곤 여성층들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실종되고 있는 성매매 방지정책으로 신, 변종 성매매 및 해외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여전히 국가로부터 적절한 구제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구조를 지탱하는 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09년 2월 이명박 정부 여성정책 1년을 “성평등정책의 실종,” “여성인권의식과 젠더 거버넌스의 부재,” “가족보육정책의 후퇴” “구호뿐인 여성일자리 창출” 4가지로 요약했다. 불행하게도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런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0년 10월 확정된 제 2차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은 정부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고 코 앞에 닥친 고령화 사회 대비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방향 설정부터 잘못되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한국여성의 출산율이 저조한 까닭은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너무나 큰 부담이기 때문에 사실상 결혼 거부와 출산파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 임신, 교육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어야지 협소한 인구 정책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여성은 단순히 출산율 제고의 대상이 아니라 최적의 환경을 고려하여 출산을 선택하는 주체이다. 여성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성찰 없는 저출산 대책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제 2차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안의 핵심은 육아휴직 40% 정률제,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 3일, 유연근로시간제 확산, 자율형 어린이집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일-가족 양립이라는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시장이나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보육의 기본책임을 떠맡고,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가족 돌봄과 아동양육을 나눌 수 있는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71%는 자녀 출산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있으며,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직장생활의 가장 큰 고충으로 꼽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들이 과연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

더욱이 여성노동자의 5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잘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시간제를 신청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정규직 여성들이 산전산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며,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

이런 급여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육아휴직 40% 정률제는 육아휴직 비용의 차등화, 즉 저소득 여성들은 육아휴직 비용도 적게 받게 되는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차별철폐가 다양한 차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유연근무제의 경우, 일부 전문직 여성을 제외한 다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겐 임금하락과 고용불안정을 안겨주는 빌미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유연근무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단시간 근무와 전일제 근로의 상호 이동과 동등한 대우가 보장되어야 하며, 공보육이 획기적으로 확충되고 남녀 임금격차가 시정되어야 한다. 이런 조처를 적극적으로 취한 후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해도 늦지 않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한국 여성들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무엇보다 성평등이라는 문제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손실이자 후퇴라 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성차별과 빈곤의 여성화, 여성들 내부의 양극화, 여성의 돌봄노동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신종 성산업의 기승과 여성 몸의 상품화 등 한국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장자연 자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여성 연예노동자들의 비인권적 상황은 신종 성노예사회를 연상시킬 지경이다. 하지만 자살의 형태를 띤 사실상의 타살이 여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한편으로, 이제 여성문제는 다 해결되었다는 착시현상이 우리 모두의 눈을 흐리고 있다.

평등의 주장은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요된 성규범과 성차별적 관행의 철폐를 요구하는 것이지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차별 없는 세상이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차별철폐와 기회균등은 다양한 차이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조건이다.

나는 페미니즘이 이 전제 조건을 얻기 위한 투쟁이었고, 이 투쟁을 통해 여성뿐 아니라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간적 가능성을 확대시켰다고 생각한다. 인간적 가능성의 실현을 위한 긴 싸움의 과정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러나 진지하고 격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실종된 성평등이라는 문제의식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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