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에 전기를 허하라"
    2011년 05월 17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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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에게 갑자기 전기가 끊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두꺼비집을 찾아 누전차단기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두꺼비집에 이상이 없다면? 고민할 것 없이 전력공급을 전담하고 있는 한전에 문의하면 된다. 지구단위 정전이라면 사태 경위와 복구계획에 대해 안내받게 될 것이고, 건물 배선 등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사고접수를 하고 복구공사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사진=두리반

정상적인 수순은 이렇다. 그런데, 이 때 한전에서 당신의 단전이 한전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음, 전기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한전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정전이 있다는 사실이 ‘벙~ 찔만한’ 일인 건 맞지만, 이 나라에 살면서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가지인가, 일단 헛갈리는 마음을 다잡은 후, 한전의 대답을 뜯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에 "전기공급 재개와 관련해서는 내부에서 이미 법적인 검토가 끝난 상황"이라거나, "한국전력이 도의적인 차원에서 시행사, 마포구청과 전기공급을 위해 비공개 협의를 진행했지만 상대측의 협조 거부로 더 이상은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이 내부적으로 내려졌다"는 따위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아니, 돈 주고 전기를 사겠다는데 뭐가 이리 복잡해?

다시 진정을 하고, 협의를 진행했다는 관할구청에 항의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지구단위 사업계획에 행정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요상한 대답만 들었다면? 남은 건 그 협의를 진행한 ‘상대측’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 정전을 만든 ‘상대측’, 누구냐?

2.

동교동 철거건물 두리반에 전기가 끊긴 지 300일이 지났다. 이 일대 지구단위 사업계획의 주도 기업인 GS건설의 시공사 남전디앤씨 직원과 철거업체 직원이 기습적으로 전기를 끊고 도망한 게 무려 재작년, 그러니까 2009년 12월. 이후 7개월 가량 인근 지하철 공사장 책임자의 도움으로 전기를 끌어쓰다 남전디앤씨 측의 협박성 공문에 의해 전기가 끊긴 게 2010년 7월 21일이다.

이에 대해 두리반 대책위 측은 ‘에너지 기본권’의 차원에서 마포구청과 한국전력 서부지점에 전기 공급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에너지 기본권이란 지난 2004년, 밀린 전기료를 미납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자다 불이 나 숨진 장애인 사건을 목도하면서 진보진영과 시민사회가 주목하게 된 의제이다.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이었던 조승수 의원이 빈곤에 처한 자와 그 가족에게 기본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가스, 난방열 등의 에너지를 무상으로 공급하기 위해 정부, 지방자치단체, 에너지 공기업, 에너지 공급업자가 참여하는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마포구청과 한전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고, 두리반은 제 돈으로 전기를 사용하겠다는데도 GS건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요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임시 방편으로 마포구청 측이 두리반에 경유발전기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며칠 후 연료재공급을 거부하면서 두리반은 전기 없이 폭염을 버텨야 했다. 이 사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혹독했던 작년 겨울을 지나, 다시 여름을 맞게 된 것이다.

3.

두리반은 지구단위 재개발 사업에 의한 세입자 보상 문제로 얽힌 농성장으로 세입자인 두리반과 지구단위 사업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건설사가 갈등 당사자가 되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이들 사이에는 건물의 관리 책임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건설사가 고용하는 철거업체를 비롯한 관리용역과 농성자 사이의 마찰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기서 나타나는 입장의 차이 때문에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협상에서 양측을 만족시키는 공정한 룰이란 걸 만들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촛불을 켜고 있는 모습.(사진=두리반) 

하지만, 전기도 그러한가? ‘에너지 기본권’ 의제를 도입하게 한 2004년의 참사에서 볼 수 있듯 단전은 농성장의 농성자들과 갈등의 대상인 건물 관리인 모두에 위험한 일이다. 갈등 당사자가 협상 중인 농성장에서 기초적인 생활이 이뤄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전기가 없을 때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각종 위험에 노출된 자가발전기를 돌리거나 상대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난방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관리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심지어 용역깡패로 불리는 경비용역들이 농성 중인 철거민 주위를 기웃거리며 긴장을 조성하는 것을 행정당국이 공공연히 묵과하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건물의 안전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비업법’에 근거하고 있지 않나. 단전을 계속해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마포구청 또한 관할구역의 주민과 건물의 위험을 방치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다지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이는 마포구청과 한전이 명백히 GS건설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할 때, 양측이 원만히 합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은 관할당국의 책임 아닌가?

심지어 마포구청장은 두리반 단전 직후 경유발전기를 설치하고 전기를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마포구의 문제가 누구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지, 그리고 마포구청장의 대표성은 어디에 있는지 의심해 볼 만한 일이다.

애당초 체급 차이가 엄청난 갈등에 공기업과 공권력이 페어플레이 환경을 조성하기는커녕 비겁하게 한쪽을 밀어주고 있으니 힘이 약한 사람들로는 억울하고 열 받는 일인 건 분명하다. 취사 곤란, 무더위 등에 그대로 노출된 농성자의 생존권은 시급한 해결을 재차 강조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이렇게 각종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공급자와 관할 행정당국이 이를 해결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4.

2차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가 종전 직후 국회의원을 지낸 뒤 “선의의 반란”으로 불린 빈민 구호활동을 시작으로 평생 불평등과 싸운 아베 피에르는 1994년, 여든이 넘은 나이에 무주택자들과 함께 파리 시내의 건물을 무단점거하면서 집 없는 사람의 권리를 전복적으로 공표했다.

이를 통해 당시 파리 시장이자 대선 후보였던 자크 시락에게 서민층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공약을 받았고, 결국 프랑스에서는 2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에 중과세하고,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못하더라도 강제로 퇴거할 수 없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1994년, 세상에 차고 넘치지만 아베 피에르와 무주택자들에게만 없었던 것이 주택이었다면, 지금 세상 누구나 편히 누리지만 두리반에만 없는 것은 전기를 사용할 권리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요즘, 제 돈으로 전기를 사겠다고 해도 안 된다는 한전, 화재와 주민생존권의 위험을 알고도 방치하는 마포구청이 두리반 단전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두리반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근방의 전기를 점유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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