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우리가 있다”
        2011년 05월 11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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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포스터.(사진=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이하 민주자료관)이 지난 5월 2일부터 2011년 상반기 기획전시 “여기, 우리가 있다”를 열었다. 

    2007년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1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다. 2007년의 전시회가 전반적인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뤘다면 이번 전시회는 대학 내의 비정규직에 관한 내용을 중심에 두었다.

    여느 대학처럼 성공회대 교정에도 벚꽃이 날리고 있었다. 전시회장으로 가는 길, 성공회대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은 느티나무 옆으로 사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대학강사의 얼굴이 이젤 위에 담담하게 놓여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매우 서구적인 이미지의 조형물이 세워졌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올해 초 사회적 이슈로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때 쓰였던 그 형상물이다.

    홍대에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 상에서 몇 번 보았던 그 모습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옆 팻말에 붙은 설명글을 보니 당시 홍익대학교 나무에 걸려있던 그 실물이라 한다. 민주자료관 기획전시 “여기, 우리가 있다” 포스트를 지나치며 전시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지나간 아픔이 떠올랐다.

    필자는 2007년 모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해고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기간 만료’. 2007년 여름, 기록관리라는 조금은 특수한 직종에서 2년간 일했던 필자에게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어 2년간 일한 직원의 계약연장이 어렵다는 것과 계약직인 기록관리 담당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곧 시험공고가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담당자가 필자를 불러 "학교 규정상 만 30세가 넘은 사람은 정규직 공채에 응시할 수 없다"고 차분히 말해주었다. 2005년 석사를 마치고 만 30세에 처음 잡은 직장에서 2년 간을 일했는데 나이가 많아서 정규직 시험에 응시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곳은 필자의 모교였다.

       
      ▲전시회 풍경들.(사진=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아무튼 성공회대 피츠버그홀의 전시장 바닥에는 친절하게 화살표로 동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첫 번째 전시공간에 서니 비정규직 행정직원, 청소·경비노동자, 대학강사에 대한 기록이 전시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명지대 비정규직 행정조교들의 투쟁, 135명에 달하는 행정조교 해고, 246일간의 지난한 복직투쟁, 전시벽에 걸린 기록들이 그 아픔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마는 당시 촛불집회를 재현한 형상물 주위에 놓인 작은 촛불들이 위로하듯 일렁이고 있다.

    대학강사 노조는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300일이 넘는 텐트농성을 진행 중이다. 흰머리에 주름이 곱게 팬 김영애 위원장의 분노와 패기는 금방이라도 전시장 벽의 스크린을 박차고 나올 태세다. 

    전시장 밖 주변 담벼락과 화단을 빙 둘러 사진들을 올려놓은 이젤들이 있었다. 사진 한컷 한컷마다 이 시대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사진 전시는 세종대학교 사진집단 <포뮨>의 “우리 학교 다섯 번째 구성원 비정규직 노동자 사진전”에서 사용한 사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노래와 특별 강연도

    민주자료관이 준비한 전시회는 관련 자료들과 사진 전시 말고도 노래 공연과 특별 강연이 있었다. 5월 6일 금요일 낮 12시 오랫동안 고통받는 사람들 옆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평화와 생태를 노래해온 ‘별음자리표’는 비가 추럭추럭 내리는 가운데서도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마이크와 앰프 성능이 영 별로였음에도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교정에 울려퍼진 그의 ‘총을 내려라’와 ‘살기 위하여’는 특히 압권이었다. 

    뒤이어 이어진 특강의 강사는 투쟁 중에 다리를 다쳐 불편한 다리를 끌고 나타난, <사소한 물음에 답함>의 시인 송경동이었다. 그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해 온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하듯 자신의 삶을 담아 담담하게 말하면서, 그리고 시를 낭송하면서 청중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가수에게는 앵콜이 있는데 왜 시인에게는 앵콜이 없느냐라는 그의 ‘해맑은 투덜거림’에 앵콜 시낭송 요청이 있었다. 이어 들려온 것은 ‘붕어빵 아저씨 고(故) 이근재님의 영전에 바친 추모시’였다. 가슴 숙연해진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의 ‘절뚝거리는’ 시들은 어쩌면 비오는 날 더 제 격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별음자리표와 송경동 시인의 소리는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무쪼록 싸움과 삶의 현장을 지키면서도 오랫동안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건강을 챙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시 전시장 안. 그곳에는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의 서명서들도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그 글자에 담긴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가 가슴으로 전해져오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그 명단에 서명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일이 자신에게 닥칠 멀지 않은 미래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하고 있었을까?

    전시장 입구에 세워진 전시 의도에 나타나 있듯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각성에서 출발한다. 현재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의 각성, 비정규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각성 말이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의 이번 전시회가 그간의 비정규직 투쟁을 정리하는 자리가 아닌 다시 시작하는 출발의 자리, 바로 그 ‘여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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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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