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복지, 가능하고 필요하다
        2011년 05월 04일 03: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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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 통합 논의와 복지국가 담론이 한창이다. 열기는 식을 것 같지 않고,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따로 또 같이 논의되는 정당통합론과 복지담론들은 어떤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다.

    복지가 대세다. 그러나

    과거에도 이런 주의나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급식,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분야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 으레 ’무상‘이란 수식어도 따라 붙는다.

    대부분의 진보·개혁정당들이 내년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두고 정당통합이든 선거연합이든 합종연횡을 고려할 것이다. 또한 작년 지방선거에서 폭발된 국민의 복지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결국에는 복지 프레임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바야흐로 복지가 대세인 세상이다.

    복지의 강도와 범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은 이미 ‘복지판’에 합류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복지와 사회연대를 일찍부터 주도한 반면(실제 국가정책으로 반영되기에는 정치력이 부족했지만), 민주당은 사회의 경제적 균열이 복지로 표출되는 시대 변화를 뒤늦게 깨닫고 이 대열에 합세했다(자의든 타이든 10년의 학습 효과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수 국민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곧 살림이 나아지리라는 희망 역시 갈수록 절망으로 바뀌고 있으니, 야당이 ‘분배의 정치’에 몰두하는 것은 정상이긴 하다. 한발 더 나가서 ‘보편적 복지’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고, 개별 사안들에 대해 세부적인 실행 방법까지 설계되고 있어 긍정적이다.

    진보정당은 ‘노동의 정치’나 ‘생산의 정치’를 연계하여 복지의 빈틈을 메우려 노력하고 있어 돋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진보개혁 세력과 정당이 추구할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빈틈이 너무나 커 보인다. 녹색 또는 생태라는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녹색, 생태 가치는 어디 갔나?

    성장과 개발 일변도의 국가발전 전략의 폐해를 비판하고 국민의 복지 정서에 부합해 유행하는 것이 복지국가론이다. ‘정의로운 복지국가’, ‘역동적 복지국가’, ‘사회연대 복지국가’ 등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 복지도 어떤 복지인가가 중요하다. 영미식도 있고 북유럽식도 있는 것처럼, 다 같은 복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지 패러다임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모순관계가 있는데, 그 중심에 생태 위기가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타협적으로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가 복지국가라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녹색국가로 제시할 수 있다.

    복지와 생태는 때에 따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접점을 찾는데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두 가치는 부분적으로만 친화적이므로, 긴장관계 심지어 갈등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좌파와 우파의 갈등뿐 아니라, 좌파(복지파)와 녹색파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복지파는 녹색가치를 복지가치로 흡수할 수 있다고 보고 복지국가가 되면 녹색국가가 될 수 있다는 ‘복지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데 반해, 녹색파는 복지가치가 녹색가치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녹색사회가 되면 복지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태의 우선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진보정당 내에서 그리고 적록세력 사이에서, 이런 식의 가치의 선후차성과 부차성에 대한 관점은 오래된 전통이다. 심해질 경우, 무관심 또는 역량부족이라는 핑계만 계속된다.

    생태 담론이 빠진 이유

    정당통합과 복지강화 담론에 생태가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당과 복지는 국가권력과 밀접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고 제도권 정치로 진화돼 왔기 때문이다. 반면 생태는 환경단체와 생태마을의 전유물로 인식되었거나 정당과 국회에서 ‘위원회’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녹색정치’는 없었다.

    이 때문인지 환경단체가 주최한 ‘생태복지의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어느 유명한 복지파 패널은 ‘도로 복지당’으로 답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진보의 틀에 녹색 가치를 배제하거나,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는 입장과 태도는 현실에 무지하거나 관념적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MB 전선’ 이상을 바라보며 선언하는 ‘복지국가 단일정당’ 노선이 반신자유주의와 어떻게 결합될지도 중요하지만, 녹색국가 비전 없이 21세기 생태 정세를 돌파할 수 없는 노릇이다.

    4대강 사업은 당장 막아야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강령과 공약의 어딘가에 한 줄 언급될 정도라면,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일 뿐이다. ‘지속가능’은 만능의 수사가 아니던가.

    많은 국민이 녹색과 복지가 통합적으로 실현되길 원하고 있다. 돈 없는 사람도 친환경 식품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에서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 대도시 에너지 소비를 위해 일부 지역이 화력과 핵발전소로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농촌과 빈곤지역에 오염시설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

    복지의 녹색화와 녹색의 복지화

    광우병은 단지 외교통상 문제만은 아니다. 농촌을 도살장으로 만든 구제역은 축산과 소비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독성물질을 배출하여 가족과 후손에게 피해를 주는 공장을 바꾸고자 한다. 황사와 기후변화는 왜 정치의제가 되지 않는가. 한국도 제3세계 자원을 수탈해 ‘약탈적’ 복지국가를 달성해야 하는가.

    복지는 ‘삶의 질 향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당연히 녹색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복지국가가 된 이후에야 녹색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델로 언급하는 북유럽은 이미 ‘녹색복지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 복지국가가 성장 숭배, 대량 소비, 생태 파괴, 관료주의와 결합하면서 ‘비복지’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인식전환 덕에 가능했다. 후발 주자의 이점을 살릴 수 없는 걸까. 국내에도 ‘환경정의’, ‘기후정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복지의 녹색화’와 ‘녹색의 복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제라도 반쪽짜리 가치 중심의 통합 논의 틀을 바꾸길 제안한다. 진보개혁세력이 지금처럼 복지판에 매몰돼선 ‘좌파 신자유주의’는 극복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녹색성장’ 덫에서는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부터 판갈이가 필요하다. 생태적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 지금 바로 헤쳐 모여 ‘녹색사회당’을 준비하자.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다. 역동적인 반전도 흥미롭다. 어쩌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각종 시사토론 프로그램과 선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는지 모른다. 국민들에게 더 이상 따분하고 지리멸렬한 정치 오디션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복지 수요는 생태 감수성과 함께 하고 있다. 녹색사회당이 사회 세력화에 집중하면서 탁월한 오디션을 기획한다면 현실가능한 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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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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