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의 마법에 취한 80년대 일상사
        2011년 05월 01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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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 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동지’들이 저마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흩어져간 ‘91년 5월’. 그 5월의 투쟁은 80년대와 90년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됐고, 사람들은 80년대를 ‘정리했다’. 그 뒤로 20년이 지났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학생운동은 껍데기만 남고, 취업 학원이 된 대학에서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채 스펙 쌓기에 몰두하며 ‘투쟁’하지 않는 ‘요새 젊은 것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기성세대는 20대들에게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고 채근했다. 그 목소리들 안에서 ‘화염병과 짱돌’은 신화화됐다. 거리로 나가 공권력과 싸우던 시대에 견주면 ‘88만원 세대’의 무기력함은 한층 더 초라해보였다.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를 통해 70년대 노동사의 숨겨진 주체인 여공들의 역사를 복원한 김원의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매진, 20000원)은 그렇게 화석으로 남은 ‘80년대’를 지금-여기로 소환한다.

    1999년 서른 살의 연구자이던 저자가 쓴 책에 방대한 양의 보론을 덧붙여 다시 출간한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운동을 한 대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꿈꾸었는지, 그리고 그 꿈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시대를 산 구술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치밀하게 추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직도 더 기억돼야 하는 1980년대와 그 자장 안에 있는 ‘91년 5월’을 다시 이야기하려는 작업이다.

    ‘혁명의 마법’에 취한 80년대

    막걸리와 소주, 민중가요, 풍물, 학회, 과방, ‘동지’……. ‘80년대’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왜 그런 문화를 공유했을까?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당시의 공동체 문화와 학생운동의 이상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70년대 대학생의 역할이 저물고, 학생들은 미래의 사회적 주체인 민중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해석해 ‘민중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발명했다. 이 가치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될 수 있게 한 기제가 위와 같은 하위문화의 의례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학생운동을 한 구술자들이 술회하는 당시 대학생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80년대의 학생들은 여자든 남자든 소박하고 단출한 복장을 하고, 커피나 맥주가 아닌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고 밤새 함께 노래하고 속내를 이야기하는 등의 ‘민중적’ 생활양식을 공유했다.

    또한 거리 투쟁이나 학회, MT, 농활 등의 과정을 통해 공통의 운동 문화를 공유하면서 ‘동지애’를 형성하고, ‘쟁가’와 ‘풍물’ 같은 저항적 문화를 고안해냈다. 이 책은 학생들이 이런 의식적이고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하나의 ‘상상된 민중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것이 당시의 학생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상상된 민중 공동체’가 80년대 학생운동의 동력이었다면, 그것이 소멸하게 된 원인을 저자는 학생운동의 제도화, 그리고 ‘대중정치의 실패’에서 찾는다. 학생회 엘리트의 급진적인 관념성 위주로 조직된 운동이 결국 대중의 일상적인 계급 경험과 결합하지 못하고, 대중의 무의식적인 힘과 자발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하위문화가 지니던 저항성 역시 대중의 감수성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생운동이 대중과 괴리되게 만든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 이 책은 당시 관료화되고 제도화된 학생회 조직의 문제점과 분파 갈등, 대중을 소외시킨 학생운동의 엘리트주의를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 * * 

    저자 : 김원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와 성공회대학교 노동사연구소를 거쳐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로 연구하고 있다.

    전공 분야는 노동사, 구술사 그리고 1960~1970년대 현대사다. 박정희 시기 서발턴 또는 민중이라고 불리던 존재들이 일으킨 사건과 민중의 기억이 어떻게 현재화되어 재현되는가, 그리고 지식인들이 민중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 글쓰기란 세상 속에서 자신과 세계, 과거 그리고 현재를 재구성하는 ‘자서전적인 보고서’의 일종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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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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