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전 시대, 축제와 집회를 짬뽕하자
        2011년 04월 20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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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노는 것이 좋은 삶

    지난 주말, 벚꽃놀이 인파가 수백만이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봄놀이의 활기도 잠시, 어제 내린 봄비로 다채로운 색상의 꽃잎은 아스팔트에 떨어졌고, 비와 함께 돌아온 꽃샘추위는 다시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하지만 봄의 꽃놀이는 서두에 불과하다. 5월부터 더위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이어지는 축제시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한국도 연중 페스티벌을 즐기는 나라가 되었다. 잘 노는 것이야 말로 좋은 삶이 된 것이다. 양질의 놀 기회가 펼쳐진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축제를 충분히 ‘우리’의 축제로 즐기고 있는 걸까?

    2. 축제

    축제는 역할과 주최자에 따라 원시 축제와 현대 축제로 분류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포틀래치‘ 풍습이나 멜라네시아 지역의 ’빅맨‘ 전통은 부유한 자들이 엄청난 재물을 풀어 공동체의 부를 분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는 원시 축제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축제는 부유한 자들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재신임하고, 부를 통해 획득한 재산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재산으로 공고히 한다는 것을 공표하는 자리였다.

    반면, 현대 축제의 운용방식은 이와 다르다. 현대 축제의 한 축인 록 페스티벌은 스테이지의 화려함이 주는 매력도 출중하지만, 관객석의 문화야말로 축제를 흥겹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을 뽐낼 수 있는 물품을 준비하기도 하고, 무대가 아닌 객석(객석이라고는 하지만 잔디밭이나 공터가 대부분)에서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즉, 현대 축제는 주최측의 시혜가 아닌, 참여자의 참여로 완성된다.

    이와 같은 현대 축제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이 그 믿음직한 축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마이클 이비스라는 ‘청년‘을 들여다보는 건 쓸만한 일이 것이다. 빨간 선글래스를 쓰고 ‘THE WHO’의 음악에 몸을 흔들며, 가끔은 무대에 직접 오르기도 하는 올해 75세의 청년 마이클 이비스(Athelstan Joseph Michael Eavis)는 40년 전, 자신이 소를 키우던 150 에이커의 농장을 개방해 입장료 1파운드의 파티를 연 이후로 지금까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을 이끌고 있는 현대 축제의 산증인이다.

       
      ▲글래스톤베리 축제 한 장면. 

    3. 스폰서가 아닌 슬로건

    이비스가 처음 농장을 개방한 60년대 말은 수많은 페스티벌이 앞다투어 등장한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당시의 유명 페스티벌은 글래스톤베리가 유일하다. 지금도 해마다 15만여 명이 유명 록 뮤지션을 비롯해 서커스, 극, 코미디 등을 관람하러 이비스의 농장에 모여든다.

    메인 무대에는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오르는데 지금까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으로 섰던 뮤지션은 U2, 콜드플레이, 비욘세, 고릴라즈, 뮤즈, 스티비 원더, 브루스 스프링스틴, 블러, 더 후, 폴 매카트니, 라디오헤드, 데이빗 보위, 프로디지 등이었다.

    40년 역사에 우여곡절이 없을 리 없다. 처음에는 거의 공짜로 히피들을 입장시켰지만, 주최를 거듭하면서 펜스를 치기도 하고, 입장료를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 <글래스톤베리> 제작자인 줄리앙 템플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장수 비결을 그간의 사회-문화적 변화에 맞서 언제나 ‘축제에 대한 열정을 생존‘시키기 위해 움직였던 성과라고 말한다. 템플의 다큐멘터리에는 이러한 조치를 내리면서 고민하는 이비스의 모습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음악과 축제에 대한 이같은 열정도 그렇지만 내가 마이클 이비스라는 인물을 한층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축제를 축제답게 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나를 사로잡은 장면은 어느 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영상에서 본 메인스테이지의 거대한 “GREENPEACE" 슬로건이었다. 삼성도 아니고, 현대도 아닌, 그린피스가 메인스테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다. 글래스톤베리는 ‘스폰서’가 아닌 ‘슬로건’ 아래에서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축제였던 것이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glastonburyfestivals.co.uk/)의 우측 상단을 보면 워터에이드와 옥스팜, 그린피스의 로고를 볼 수 있다. 이들은 공식 스폰서 단체가 아니라 글래스톤베리가 오랫동안 연대하고, 후원하는 단체들이다. 각 단체는 축제장소인 농장 곳곳에 부스와 체험관을 설치하기도 하며, 메인 스테이지에 커다랗게 걸려 글래스톤베리의 얼굴 역할을 하기도 한다.

    4. 문화적 특성?

    물론,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공연이라는 포맷은 우리 사회에도 많이 있다.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이러한 기획은 마음껏 즐기는 자리보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춰온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이비스가 놓치지 않았던 “축제를 축제답게 하는 힘”이 서로 분리되어 정치적 ‘슬로건’이 중심이 되는 문화집회와 놀기 위해 모인 축제가 별개의 영역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화집회는 상업적인 페스티벌이 승승장구할 때 온갖 구박을 받아왔다. “재미가 없다”, “예술의 질이 낮다”는 1차원적 비판은 오랫동안 문화집회를 만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비수처럼 괴롭혔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 속에서 문화집회는 점점 진화했다.

       
      ▲2011, ‘뉴타운컬쳐파티 51+’  포스터

    1년 쯤 전, 나는 아주 흥미로운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밤 캠퍼스의 고목 아래서 펼쳐진 집회였다. <김예슬 응원 OT>, ‘대학을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홀연히 대학을 떠난 김예슬을 응원하기 위해 또래의 젊은이들이 기획한 무대였다.

    현재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주멤버들인 밤섬해적단과 노컨트롤의 황경하, 그리고 단편선이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 바람이 부는 교문의 한 구석에 펼쳐진 무대였지만 참가자들의 면면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그날의 분위기는 폭탄 같았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아주 신나게 놀았다. 충분히 흥겨웠고, 충분히 시원했다. 그날의 무대를 문화집회였다고 해야 할까, 축제였다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그날의 참가자들은 축제와 집회를 구별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고, 둘 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환경단체의 선전물이나 이름에 담긴 메시지를 전면에 내거는 것이 집회와 축제를 융합시킨 완성형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한국의 록 페스티벌에 ‘Free Precariat(불안정노동 해방)’나 ‘Je lutte des Classes(나는 계급투쟁한다)’를 슬로건으로 거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차이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린피스 등을 후원하는 것은 글래스톤베리만의 전통과 권위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관광대국이기도 한 영국의 문화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글래스톤베리의 상품성이 그 선결 조건인 것도 맞는 말이다.

    이렇게 되짚어 올라가면 예술시장의 크기나 점도, 예술가가 존립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등에서 영국과 상이한 한국의 축제에서 스폰서 대신 정치적 슬로건을 내거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는 것도 타당한 논리전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정치적 행위와 문화적 자유를 연결시키는 것이 ‘과도’한 정치적 개입이라는 과도한 해석을 해온 사회였으니 글래스톤베리의 ‘연대’를 ‘문화적 특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론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행위에 정치적 구호를 입히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는 걸까?

    5.

    촛불집회가 모든 집회를 대체할 순 없다는 전제 하에,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사회가 획득한 또 하나의 집회문화를 ‘집회의 축제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3년 전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자리잡는 기억은 센스 작렬 여고생들의 정부규탄 문구와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엄마부대의 행렬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고생.

    이들의 등장에 힘입어 종로와 광화문 일대는 커다란 공원이 되었고, 시위대는 동네(Community)를 산책하러 나온 주민이 되었다. 커플들은 시위장소에서 만났고, 가두행진이 예정된 거리 곳곳에서는 공연이 벌어졌다.

    저녁이었던 걸 고려하면, 마치 주말 야시장에 나온 주민들이 어울려 즐기는 모습 같았는데, 이렇게 즐기면서도 쉬지 않고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를 공유하고, 저마다 준비한 다른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색다른 경험인 건 분명했다.(나도 ‘이명박 퇴진’을 연호하는 이따금 ‘프리 티베트’ 등을 외치곤 했는데, 이를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공동체의 정의를 외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원시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을 이른바 ‘집회의 축제화’를 통해 원시적인(본능적인) 공동체의 감각을 되찾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역인 ‘축제의 집회화’, 그러니까 신나게 놀면서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닐 것 같다.

    6.

    얼마 전, 한 청년조직의 활동가로부터 청년문화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청년들을 조직할 때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마 20대 당사자 운동론이 처음 유행했을 때 같이 유행하고 있던 문화적 감수성이나 문화적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요즘 가장 핫(hot)한 장르가 뭐냐고 돌려 물어본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 2011년을 살아가는 청년을 관통할 문화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문화현상은 있다. 우리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 요구 없는 청년문화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찾는 대신 질문을 바꾸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조건밖에 없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 조건을 적극적으로 창작물로 주조해 내는 아티스트들이 점점 많아지고, 이를 같은 조건에 처한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 뿐이다.

    2011년의 청년은 프레카리아트다. 프레카리아트가 처한 조건은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다그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여전히 축제로 가득한 사회이다. 만개한 벚꽃을 보러 여의도 윤중로에 나가거나 올림픽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임금을 모아 벼르던 록 페스티벌 티켓을 구입하기도 한다.

    제대로 놀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다. 그렇지만 우리가 프레카리아트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제대로 화끈하게 놀면서 우리의 요구를 표출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풍장소를 정할 땐 근처에 연대할 곳이 있는지 확인하자. 페스티벌에 갈 때는 피켓을 준비하자. ‘슬로건’을 분명히 하는 축제는 필참해서 잘 놀면서도 정치적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청년문화’가 정치적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회에 보여주자.

    가령 이런 슬로건들 말이다. “두리반에게 새로운 생계 터전을!”, “지금 이대로의 걷고 싶은 거리를!”, “우리에게 더 많은 언더그라운드를!” 올해도 전국자립음악가대회가 주최하는 <뉴타운컬쳐파티 51+>의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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