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 참혹, 전대미문의 예능 프로
        2011년 04월 15일 08: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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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신입사원>을 대단히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난 대화 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대화 회로가 거의 없는 비정상 두뇌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신입사원>의 말하기 대회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 도전자들이 마치 나 같다.

    말하기나 발표하기에 몰입할 만한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바야흐로 취업전쟁의 시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취업을 준비하는데, 그중 필수 코스가 면접 대비 말하기 연습이다. 직장인들에게도 프리젠테이션용 발표 연습은 자기계발의 기본 종목 중의 하나다. <신입사원> 측도 그 점을 노리는 듯하다. 이 프로그램이 인터뷰 능력개발에 좋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신입사원>은 인기가 없다. 왜 그럴까?

    절망을 주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희망을 주기 때문에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람들은 중졸학력 작은 키에 환풍기 수리공 출신 허각의 승승장구를 보며, 또 김태원과 ‘외인구단’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보며 희망을 얻고 감동을 받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졌다.

    반면에 <신입사원>은 끝없는 절망뿐이다. <신입사원>의 도전자들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사람들이다. 예쁘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말도 잘 하고, 목소리도 좋으며, 웬지 지적으로도 보인다. 옷도 잘 입었다. 그런 사람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허각이 잘 될 때는 웬지 나도 잘 될 것 같고, 김태원이 ‘외인구단’의 손을 잡아줬을 때는 웬지 나에게도 멘토가 나타날 것 같았지만, <신입사원>을 보니 암담하기만 하다. 저렇게 잘난 사람들마저 능멸당하며 짓밟히는데 나 같은 보통사람이 살 길은 뭐란 말인가? 암담하고 우울하다. 감동 따위는 없다. 참혹할 뿐이다. 절망, 절망, 절망. 전대미문의 절망 예능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신입사원>은 나름 자기계발에 좋은 정보를 제시해준다. 지금은 자기계발 열풍 시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건, 말능력 따위보다 희망과 즐거움이 간절한 사람들이 압도적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절망, 우울함, 답답함이 싫은 것이다. 이미 현실이 충분히 그러니까. <신입사원>은 굳이 그런 현실을 상기시켜 준다. 사람들은 예능을 보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데, 오디션을 보며 감동과 희망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데, <신입사원>이 막무가내로 가로막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입사원>은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먹은 빨간약과도 같다.

    ‘웰컴 투 더 리얼월드’

    이 세상은 감동과 휴머니즘의 드림월드가 아니라, 살벌한 검투장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의 폭로. 외인구단을 구원해주는 김태원 멘토 같은 이는 현실에 없다. 평가자들은 냉정하기 그지없다.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칼날 위에 서있을 뿐이다. 기적적인(?) 빨간약 오디션이다. <일밤>의 실험정신이 극에 달했다고 할까?

    사람들이 오락물에 원하는 것은 감정이입이다. 감정이 이입될 만한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입사원>엔 그런 것도 없다. 출연자들이 모두 잘난 사람들뿐이라서 허각이나 외인구단처럼 나의 분신 같지가 않다. 저 멋지고 똑똑한 사람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신입사원>은 가수 오디션처럼 쇼를 보는 즐거움조차도 선사해주지 않는다. 극히 건조하다.

    감정이 이입될만한 스토리도 없고, 쇼의 즐거움도 없고, 감동과 희망의 판타지도 없는 오디션. 황량한 현실 그 자체인 오디션. 궁극의 리얼리티다. 감동으로 포장된 판타지 리얼이 아닌 민낯 그 자체의 진짜 진짜 리얼.

    오디션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그래 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세상이야’라는 데 있다. <신입사원>은 그것을 전복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지옥에서 살아날 수 없어!’ 리얼리티라는 기준으로 보면 <신입사원>은 가장 위대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MBC가 애초에 이런 걸 원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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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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