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의원' 만들어 비례대표제 무력화"
        2011년 04월 07일 05: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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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석패율’로 선거제도를 개편하는데 손발을 맞춰가면서 이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역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두 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석패율은 현재 일본에서 시행중인 선거제도로,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 현상이 나오는 현재의 지역구도 정치 개혁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석패율은 1인 소선거구에 출마한 다수의 후보자를 비례대표 명부의 동일 순위에 중복 입후보 하고, 선거결과 비례대표 동일 순위 후보 가운데 소선거구에서 가장 작은 득표율 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당선자로 결정하는 제도로, 현행 비례대표가 54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것이 형식적인 지역 나눠먹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민주당 도입에 긍정적

    현재 석패율에 대해서는 중앙선관위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의견 형태로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중앙 선관위에서도 석패율을 현행 선거제도 속에 시행할 것인지, 원칙이나 기준 등에 대해 명확히 제기하지 못하고 있어 다양한 해석과 예측이 혼재되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석패율 도입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 정치권에서 석패율은 낯선 제도다. 특히 이 제도가 소수정당에 불과한 진보정치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지만, 구체적인 윤곽이 정해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제도 도입의 결과를 전망하기가 어렵다. 7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석패율제, 과연 올바른 정치개혁인가’ 토론회가 눈길을 끈 이유다.

       
      ▲석패율제 토론회(사진=진보신당)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영태 목포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석패율 도입의 핵심적인 근거는 지역정당 구도 완화지만 전국 명부제를 유지하고, 선관위 제안처럼 하나의 광역시도 내 지역구 후보자만을 중복 공천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석패율을 통해 구제되는 인원은 한나라당이 3명(전남·북, 광주), 민주당이 5명(부산, 울산, 대구, 경남·북)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치제도의 일반적 원칙과 관련해 석패율을 반드시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며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1인 소선거구제를 기본축으로 운용해왔고, 지역구 후보를 비례명부에 중복 공천한다는 것은 탈락 후보에 대한 사후적 구제라는 의미가 강해 당선자의 정통성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호남 3석, 민주당 영남 5석 예상

    이어 “또한 한국선거제도의 개선방향이 사회적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데 비례제에도 지역대표성을 접목시키는 것은 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비례제를 늘려야 하는 마당에 거꾸로 지역대표성을 강화하려는 개악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일종의 꼼수"라고 질타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는 나란히 석패율이 현행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선거제도 개편은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며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한계는 있지만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한국정치의 대표성 위기가 일정하게 보완되었다”며 “한국정치의 핵심 문제는 다양한 계층, 직능, 분야 대표성의 실종,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 정책정당 중심의 정당정치 실종, 지역주의 폐단 등인데 이를 해결할 확실한 대안은 비례대표 의원정수 확대 및 정당중심 선거제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제도의 “실질적 문제로 영남에서는 비한나라당 당선자를 내겠다고 하고 호남에서는 비민주당 당선자를 내겠다고 하는데, 대체 어느 당을 말하는 것이냐”며 “영남에서 민주당을, 호남에서 한나라당을 가정하고 있을 뿐 다른 당은 아예 상정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석패율제가 오히려 지역주의 정당을 강화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노회찬 상임고문은 “(석패율제가) 지난 10년 이상 동안 선관위가 낸 안 중에 가장 후퇴한 안”이라며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것을 모양 좋게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적 공천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석패율은 보스나 파벌에 의해 공천권이 독점되거나 거래될 수 있"으며 “석패율은 양대 정당의 의석 점유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석패율 양당제 강화 가능성

    그는 또 지난 총선 당시 부산 유권자 중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사람은 52%에 불과했지만 한나라당이 부산에서 실제 얻은 의석수는 18석 중 17석(94%)이었던 사실을 예로 들며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투표는 완화되어가고 있고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의 진범이 아닌데, 석패율제는 진범을 잘못 지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석패율제로 구제된 ‘좀비 의원’은 비례대표제 취지를 무력화할 것”이라며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 인한 폐해를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완전 정당명부대표제 혹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쭉 뻗은 신작로를 두고 엉뚱한 길로 돌아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시민들은 지역주의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정치권만 여기에 주목한다”며 “정치권의 제한적 관심사를 전 국민적 관심사인 양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정치개혁을 이뤄냈다는 성과로 내세우기 위해 석패율제를 동원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며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고, 인물이 아닌 정당 중심의 정치를 강화시켜 유권자들이 정당을 고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철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은 “석패율제가 소수의 정치적 대표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거대 정당의 과다 대표와 군소 정당의 과소 대표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는 또 “중진 이상의 후보에게는 유리하지만 정치 신인의 충원 구조는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이경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해 축사를 전했으며,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석패율제가 아닌) 정당투표제가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며 “비례대표를 100여석으로 늘려 국민의사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오유석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김영태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추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제기획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형철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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