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발전소, 공공화만 되면 안전한가?
        2011년 04월 07일 08: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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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방사능 물질을 뿜어내고 있다. 사상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라고 알려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뿜어낸 방사능 물질은 반경 40km 이내 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켜서 국제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주민을 대피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30km 범위 내에서만 대피를 시키고 있다.

    정부, 과학자들에 대한 불신

    바닷물의 오염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기준치의 몇 천배가 넘은 방사선량이 인근 바다에서 채취된 바닷물에서 측정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어 원자로가 폭발될 위기에 처해지자, 급한 김에 바닷물을 쏟아 부었다.

    그것이 어디로 갔겠는가? 그 위급한 상황에 방사능 물질을 잔뜩 머금은 바닷물을 달리 정화시켜서 내보내기라도 했겠는가? 그 방사능 물질이 후쿠시마 인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거대도시의 동경에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 공급되는 수돗물도 위험하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 후쿠시마의 방사능은 세계 곳곳에서 검출되고 있다.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하여 핵발전소 폭발사고 및 방사능 유출 상황 소식이 전파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그 물리적 실체인 방사능 물질까지 전세계에서 검출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지구촌이고, 분명히 지구는 둥글다. 편서풍 타령만 하고 있던 한국 정부도 당황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원자로가 완전히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극히 미비해서 안전하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게다가 여전히 편서풍이 불고 있는 와중에도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후쿠시마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다. 한겨례 조홍섭 기자가 잘 지적하였듯이, 이제 정부와 그들을 대변하는 과학자들은 방사능 물질이 ‘미량’으로 검출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검출’되었다는 점이다.

       
      ▲핵 발전소. 

    그들이 은폐, 왜곡하는 까닭

    게다가 검출되었다는 사실 발표를 며칠씩이나 미루고 있었다. 시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물질의 위험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정부와 과학자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제 그들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다. 

    이제는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책,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라는 책이 있다. 많은 이들은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목격하면서 인용하고는 하는 책이다. 이 책 자체도 핵발전소 사고와 얼마간 인연이 있는데, 책이 발간된 시점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발행한 1986년이었다. 또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논의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사례도 핵발전소의 위험이다.

    그러나 요즘 무수히 인용되고 있는 『위험사회』의 주장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필자가 다른 사람들마다 더 똑똑해서 나만 제대로 이해했다, 뭐 이런 잘난 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지는 『위험사회』가 주장하는 바가 “현대사회는 위험이 가득 찬 사회다”라고 선언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 이야기면 특별히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 그 위험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하고 있는 점이 보다 큰 실천적 함의를 가진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을 인지/인식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지식과 그것을 생산해내고 이용하는 과학자 사회와 공적 기구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위험을 야기하는 방사능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들은 과학자과 그들을 통해서 관리하는 정부기구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위험의 불평등한 배분

    그러나 그들은 직업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인해서 그 위험에 대해서 축소하거나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일본에서 일본 정부, 동경전력이 해온 말들과 한국 정부의 발표만을 보더라도 그런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에 따라서 위험사회는 위험을 파악, 관리하는 과학과 공적 기구에 대한 불신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라는 분석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위험사회론’의 시각으로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 전력산업의 사유화(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진실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후쿠시마 사고 발생과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 동경전력의 사유화와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마디로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 사유화된 동경전력이 핵발전소 안전을 유지하기보다는 비용 절감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여러 차례 수명 연장을 해왔으며, 사고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며 정보 공개도 회피했다는 점들을 사유화 문제와 연계지어서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분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게다가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삼기 십상인 사기업에서 많은 인력을 아웃소싱 하면서, 정작 중요하지만 위험한 업무는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초기 남겨진 50명의 ‘결사대’의 대부분이 하루 일당 10만원 안팎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는 점이 극적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사적 자본에 맡겨진 위험 관리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증폭되며,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준다.

    공공화된 핵발전소는 안전한가?

    그러나 이 짧은 글에서 핵심적인 화두는 다음부터다. 그렇다면 “공공화된 핵발전소는 안전한가?” 이 질문에 대해서 공공부문 활동가들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를 묻고 싶다. 즉답을 미루고 에둘러 가자. 한국 정부와 핵산업계는 끊임없이 일본 핵발전소와 우리 핵발전소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위 ‘차이의 정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핵발전소 설계 유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진과 쓰나마 가능성이 낮다, 우리 발전소의 예비전력 시스템은 해안가로부터 높은 위치에 놓여 있다 등등. 사실 이런 차이가 중요한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핵발전소가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회의와 성찰을 봉쇄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체르노빌을 겪으면서 탈핵 재생에너지 전환을 감행하고 있는 독일식 경험으로부터 학습할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 ‘차이의 정치’ 중에 하나로 작동될 수 있는 것이 공공화/사유화 논쟁일 수 있다. 즉 우리의 전력산업에 대한 사유화만 중단된다면, 혹은 현재의 공적 소유가 유지만 된다면 핵발전소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상 유지의 논리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거치면서 배워야 할 교훈, 즉 “어디에도 안전한 핵은 없다”는 점과 배치될 수 있다. 현상유지의 논리에서 핵산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핵산업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공공부문 활동가들의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공공 부문 노동조합 간부와 활동가들이 보는 <공공현장>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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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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