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당하는 듣보잡 청년, 소년들 떠들다
    2011년 03월 21일 03: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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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어린이의 인격적 해방과 윤리적 해방을 주장했던 어린이날 운동에 대해 당국은 우량아 선발대회와 창경원 관람 할인으로 응수했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을 막론한 소위 ‘운동권’은 어린이 역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구성원이라고 주장했고, 일제는 어린이를 잘 먹이고 잘 키워 충실한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해방을 맞은 이후 어린이날은 국가가 인정하는 기념일이 되었고, 교과서에는 방정환의 얼굴이 실렸다. 그렇다면 어린이날은 승리했을까?

21세기 오늘날의 어린이날, 국가를 대신해 분유회사들이 우량아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부모들은 할인권이 없이도 어린이들을 롯데월드에 데려간다. 어린이헌장에는 어린이를 훌륭한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고, 이 모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 심지어 소위 반체제적 ‘투사’들에게까지도 – 받아들여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갇혀있다가 자살하는 청소년은 매년 신문 한구석에 자연스럽게 실리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모두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맞기 싫다”고 부르짖는 그들에게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때리는게 더 효과가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그들을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한 채 사진을 찍는 충실한 1930년대의 어린이들과, 지금의 어린이, 소년, 청년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는 26일, 아무 영향력도, 아무 명성도 없는 듣보잡 청년과 소년들이 아무 재산도 없는 철거건물에 모여 ‘당신들의 어린이날’에 대해 개념없이 떠들어댈 예정이다. 이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쓸모없는 생각에 가득찬 듣보잡 여러분, 구경하러 오시라.

제1회 어린이날 선언문의 첫머리를 여기 첨부한다.

"젊은이나 늙은이는 일의 희망이 없다.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가련한 후생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 주자."

   
  ▲행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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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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