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차라리 "나는 선배다"로
    2011년 03월 21일 03: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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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는 대인배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모두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가수 김건모가 7위를 했다. 충격이었다. 후배가수들이 모두 경악에 휩싸였다. 그때 김건모가 흔쾌히 결과에 승복하고 하차했다면?

그랬다면 김건모는 대인배로 칭송 받았을 것이다. 김건모가 이렇게 하차한다고 해도 그의 명예에 조금도 손상이 갈 일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결정된 등수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에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는 사람으로 오히려 명예가 커져 대인배가 됐을 거란 얘기다.

사실 김건모쯤 되는 대형가수가 이런 프로그램에서 계속 평가 받으며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이 정도 방송한 것으로 팬서비스했다고 치고 적당히 빠지는 것이 확실히 더 나은 구도였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김건모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줬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그는 원칙을 깬 사람이란 멍에를 쓰게 됐다. 그 자체로 비호감의 씨앗을 남겼다. 게다가 앞으로도 문제다. 지금 탈락하면 명예로운 탈락이었겠지만, 이렇게 살아남아서 다음에 또 탈락하게 되면 그땐 정말 ‘대망신’이다. 득될 것은 별로 없는데 리스크는 대단히 큰 길을 선택한 것이다.

김건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탈락하면 더 문제다. 그러면 김건모는 원칙을 깨고 욕심 부려 후배를 밀어낸 ‘밉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가 ‘나는 선배다’로 바뀌는 것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안타깝다.

곱등이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며 요즘 네티즌들이 혐오하는 곤충이다. 이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 살아남는 출연자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 호칭을 선사받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절대로 좋지 않다. 대형가수이자 국민가수인 김건모가 곱등이의 구도로 가는 것은 패착이었다.

대인배 될 수 있었던 이은미

비슷한 시기에 <위대한 탄생>에서는 이은미가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이진선, 박원미를 떨어뜨리고 권리세와 김혜리를 끌어올렸다. 시청자는 납득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것은 외모만 중시하는 주류 기획사판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것이 김태원의 ‘외인구단’에 찬사가 쏟아진 이유다. 이은미는 정확히 그 반대의 구도를 보여줬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서도 원칙의 문제가 작용했다. 사람들은 권리세의 가창력이 가장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권리세는 <위대한 탄생> 초반부터 미스코리아 등 외모로 화제가 된 것이지, 노래 실력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이은미는 <위대한 탄생> 멘토 중에서 가장 엄격해보이는 사람이었고, 가창력을 중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이은미가 다른 도전자가 아닌 권리세를 뽑았을 때 사람들은 원칙이 뭐냐고 물었다.

만약 계속해서 외모를 강조했던 방시혁이 권리세를 뽑았다면 반발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시혁의 원칙은 그런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이은미니까 충격이 더 큰 것이다. 그녀의 원칙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은미는 권리세가 열심히 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는데, 도전자 중에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열심히 하는 것이 기준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제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은미도 대인배가 될 수 있었다. <위대한 탄생>에서 권리세는 외모의 상징으로 일종의 아이돌처럼 여겨졌었는데, 그런 권리세가 아닌 가창력 중심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였다면, 이 프로그램 최대의 이벤트가 되면서 김태원 이상의 대인배로 칭송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결국 또 하나의 곱등이 신화를 낳고 말았다.

그리하여 같은 시기에 김건모와 이은미는 네티즌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심지어 김건모 재도전을 주장한 김제동마저 비난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원칙의 힘은 이렇게 무섭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앞으로 원칙이 애매해지는 구도를 만들면 안 될 것이다. 시청자는 울화통이 터지고, 프로그램과 출연자가 모두 죽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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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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