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이외엔 대안이 없다
    민영화된 전력회사 재국유화를"
        2011년 03월 18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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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한 순간 한 순간 제 존재는 ‘일본’으로 귀일됩니다. 글을 쓰든 수업하든 가족들과 같이 있든 계속 일본 사태 관련 뉴스를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웃 나라에서의 재앙’이라고 하지만, 저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할 때에 일본이 별도의 ‘나라’, 즉 국민국가라는 부분을 별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인들의 현안

    그저 그 국가적 소속과 무관하게, 한반도와 매우 가까운 열도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리적으로 서로 약간 떨어져 있어도, 지금 일본열도 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앙들이 바로 한반도인들의 현안이라는 생각은 아주 강하게 듭니다.

    국내 언론들이 "우리 나라는 안전지대"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무리하고 자극적인 대북 정책이 정말 언젠가 국지전으로 비화돼 남한의 21기 원자로 중의 하나라도 포탄이나 미사일을 맞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시지요.

    ‘전시’라는 부분까지 아울러 생각한다면 오늘날 일본열도 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재앙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한 보수 매체들이 아무리 ‘패륜아 김정일’을 비난해도, 그가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도 그런 일들을 벌일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점을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역으로 그걸 알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무리하고 도발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할 용기라도 나지요. 그런데 무장 갈등은 아니더라도 원전이란 언제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돌변할는지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예고없이 일어난 1986년의 체르노빌 참사를 생각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원전은 시한부폭탄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핵폭탄 – 이고, 우리는 지금 이 폭탄을 안고 자게끔 강요되어지는 것입니다. 안전지대? 뭐, 언제나 유사시에 가솔들을 다 데리고 저들의 ‘내지’라고 할 미국으로 이사갈 준비가 돼 있는 한국 지배자들에게야 어딜 가나 안전지대지요.

    일본인 피해자들은 ‘우리’다

    ‘세계인’ 노릇을 할 만한 돈과 각종 문서들이 다 완비돼 있기에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옭매여 있는 저들의 머슴들은 복도현(福島県) 주민들의 끔찍한 운명을 언제 같이하게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복도현과 그 주위의 피해자들을 국경 등과 무관하게 같은 ‘우리’로 마땅히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업상 ‘역사학’을 팔고 밥을 먹고 살기에, 우리가 이렇게 핵폭탄을 안고 자게 된 역사적 근원부터 생각해보는 것은 일차적 의무일 것입니다.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로 원전에 의존하게 된 것은 1973년 오일 쇼크(석유파동) 이후입니다.

    국제유가 급등 상황에서는, 양쪽 경제의 ‘주력부대’인 에너지 집약적인 조선, 자동차, 전자 산업의 이윤 마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싼 전력’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실로 따져보면 원전 건설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한데, 그 건설을 박정희, 전두환의 시절의 한전(韓國電力公社)과 같은 정부출자기업이 맡거나, 정부가 적어도 융자상환 보증을 하는 것은 관례이니, 그 엄청난 비용은 결국 일반인들의 혈세로 메워지고, 하향조절되어지는 산업 전력의 ‘염가’로 사기업들이 덕을 보는 것입니다.

    사실, 관치 경제 시대가 끝나고 한전이 – 김대중 정부의 망동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서 – 민영화된 지금에 와서는 원전 운영 그 자체도 국내외 자본에게 이윤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한국전력 같으면, 그 대주주 중에서는 미국 은행 JP Morgan과 금년에 민영화될지도 모를 산업은행 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원전 ‘싼 전력’도 아니다

    지금 복도현 원전의 안전 관리에 실패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데다가 끝없는 진실 호도와 재앙 축소, 노골적 거짓말로 증오를 받고 있는 동경전력 같으면, 역시 제일생명보험, 일본생명보험 등 대형 자본들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이윤을 챙기는, 이윤추구 목적의 업체입니다.

    결국, 제조업 자본과 원전 사업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의 이윤추구를 위해 주민들의 안전도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도 다 얼마든지 쉽게 위험에 노출되어집니다. 일본만 해도, 이미 1981년에 복정현(福井県) 돈하발전소(敦賀発電所)에서 거의 수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방사능 물질 유출로 건강을 해치게 된 일부터 시작해서, 계속 인명피해까지 생기는 일련의 사고들이 잇따랐습니다.

    7년 전에 같은 복정현의 미빈발전소(美浜発電所)에서 4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지는 등 계속해서 원전 이용자와 원전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조업 기업주들의 이윤의 제단에 노동하는 사람들의 목숨들이 바쳐져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본이 이끄는 매체들은 원전의 본격적 문제성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윤을 위한 은폐와 여론조작은, 결국 오늘날의 망국적 재앙을 불러내는 데에 일조한 것입니다.

    일본 전력 생산에 원자력 의존도가 34% 정도고, 한국만 해도 28% 정도인데, 비판해봤자 대안이 있느냐고 분명히 누군가가 물어볼 것입니다. 맞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회사와 국민국가의 세계에서는 뾰쪽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전력회사 재국유화해야

    당연히 원전과 같은 위험천만한 공정들을 맡고 있는 전력회사들의 국유화와 그들에 대한 철저한 사회 통제 등은 당장에 필요한 조치로 보입니다. 국가는 꼭 ‘善’은 아니더라도 이윤 마진에 덜 좌우되는 만큼 비용줄이기 위해 생명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조금 더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한데, 체르노빌 대참사 같으면, 개인기업이 없었던 사회에서 발생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비록 동경전력이 국가에 인수돼 비(非)영리적으로 운영돼도, 핵폭탄을 안고 자는 기본적 현실은 달라질 게 없습니다. 기본적인 대안이란, 결국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실시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냥 없습니다.

    자본주의적 국민국가와 시장경쟁이 철폐돼 세계적 차원의 에너지 배분 계획의 수립 및 실행이 가능해지면, 일단 원전이라는 괴물 없이 한일의 제조업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베리아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송전과 환경적으로 재앙적인 자동차와 같은 흉물의 생산량의 하향조절, 그리고 전세계적 자원을 총동원한 대안에너지 개발의 최대화를 통해서, 단계적으로 지금 원전이 전력공급에 차지하는 틈새를 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면 ‘러시아’와 ‘일본’, ‘한국’ 등은 자본주의적 국민 국가로서 더이상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죠. 환상 같은 이야기라고요? 맞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는 이게 환상에 가깝습니다. 지금 같으면, 한/일의 좌파 정당에서조차 제조업 등의 상황을 고려해서 "원전 철폐"를 구호로 내걸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신병적인 자본주의적 국민국가 세계에서는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의 실시는 ‘환상’으로 보인다 해도, 원전 대재앙으로 일본열도의 중생들이 미증유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앞에 두고서, 그래도 우리들의 최종적 목적으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적 사회주의를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적 규모 사회주의 ‘환상’으로 보이지만

    지금 아무리 산 넘어 산, 머나먼 길로 보인다 해도,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열도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해서 우리 모두들을 ‘궁극적으로’ 원전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적어도 좌파의 도덕적 책무가 아닐까요?

    좌파란, 원래 속물적인 ‘현실적’ 정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범인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원대하게 설정할 줄 아는 사람들의 범칭은 아닌가요? 좌우간, 복도현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저는 사회주의적 신념을 다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주의가 궁극에 실행되지 못하면 지구인들에게 고통스러운 멸종밖에 남을 게 없다는 것은, 저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지금 복도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 최후의 그림자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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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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