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발전소 안전은 없다, 탈핵이 쟁점
    원전 추가건설, 수명연장, 수출 안돼
        2011년 03월 17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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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16일) 강의를 마치고 건물을 나서니,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캠퍼스에 때늦은 함박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3월 중순에 눈이라니. 어이없다는 생각에 이어 덜컥 겁이 났다.

    1954년 2월 어느날 남태평양의 외딴 섬, 롱게랩(Rogelap)에 눈이 내렸다. 난생 처음을 눈을 본 아이들은 그 눈을 만지며 놀았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암에 걸려 죽어갔다. 미국이 실시한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의 결과였다. 아무런 경고도 받지 않은 섬 사람들과 아이들은 방사능 낙진을 눈으로 알았던 것이다.

    비가시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위험

    후쿠시마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일본 당국은 후쿠시마에 내리는 눈에 방사능 낙진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1년 3월, 뒤늦게 내리는 후쿠시마의 눈은 그렇게 비극적이다. 북한산 자락에 내리는 눈은 ‘아직’ 괜찮겠지만, 내 가슴은 철렁인다.

    매일 매시간 상황 악화를 알리는 속보에 이제는 무감각해질만한데도 가슴이 떨린다. 그렇게도 침착하던 일본 국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눈 앞에서도 가족을 잃고도 힘을 내자며 다독거리던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그래서 전적으로 소위 전문가들의 눈과 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비가시적고 통제할 방법인 없는 위험 앞에 노출된다는 것. 안전하다고만 하던 동경전력과 일본 정부의 말은 이제 신뢰를 잃고, 불안과 공포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일본의 비극을 애도하고 그들을 돕자고 나선 한국인들 사이에도 서서히 불안이 싹트는 듯하다. 일본의 핵재앙으로부터 우리는 안전할까? 한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안전하다”고 장담하고 있다. 천만다행, 우리가 일본의 서쪽에 위치한 덕분이란다. 1년 내내 불고 있는 편서풍에나 기대가 있는 정부 관료가 가엽다는 생각까지 든다.

       
      

    정부는 악명높은 정보통신망법을 동원하여 또다시 루머와의 전쟁에 나섰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이 우리나라로 날라올 수 있다는 걱정이 근거없는 루머라며,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부터 잡아가야 할지 모른다.

    2008년 촛불 집회를 재현할 것인가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가 나기 시작하고부터 주구장창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면서, 한국의 방사능 피폭에 대해서 걱정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뿐인가?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정말 핵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우려와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우려와 걱정은 시민들의 공포감과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점점 한국 정부는 스스로를 그리고 시민들을 2008년 촛불 집회의 국면으로 내몰고 있다.

    언론사 기자들과 네티즌,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핵발전소에 대한 공부에 들어갔다. 핵분열, 노심용해, 비등경수로, 사용후 핵시설 등등. 그러한 전문적 용어를 이해해나가면서 우리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비극 속에서 배우는 공부이기에 씁쓸하기는 하지만, 좋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사회적 학습을 왜곡하는 잘못된 프레임도 들어서는 것과 같아 우려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원자력 마피아’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국은 자칫 후쿠시마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할 것인가?” 이것이 원자력 마피아들이 노리는 프레임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지만, 지금 후쿠시마의 교훈은 이런 대재앙을 내재한 ‘원자력을 지속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과 관련된다. 후쿠시마 사태는 세계 최고라고 자타가 인정하던 일본의 ‘원자력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에서 일본보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며, 또 그 안전 수준을 높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을 잃은 것이다.

    언론들은 외신을 인용하면서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설계가 원래부터 안전을 의심받았으며, 애초의 계획을 어겨가며 무리하게 수명 연장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재앙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겠지만, 미안하지만 그런 강조는 사람들을 호도할 수 있다.

    그런 기사들은 일본의 핵산업계가 얼마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국민들을 속여 왔는지를 보여주는데는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속성은 전세계의 모든 핵산업계에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영리하게도 한국의 핵마피아들은 이를 돌려치고 있다. 우리의 핵발전소는 일본 것과 다르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안전한 핵발전소”는 논점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안전도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매일 목격하고,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참상을 지켜봐야 할 일본의 핵재앙은 우리를 핵발전소 자체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 가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재앙을 지켜본 독일이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이용의 길로 나섰던 것처럼, 우리도 탈핵의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핵심이다. 그에 비해서 ‘안전한 핵발전소’는 논점 이탈이거나, 기껏해야 부차적인 논점이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했던 시점의 구(舊)소련의 공산당 서기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핵발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서 재생에너지로 이동해가야 한다. 그에게 체르노빌은 악몽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보다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횃불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도 남았다. 한국인에게 후쿠시마는 어떤 교훈으로 남을 것인가.

    벌써부터 일부 언론들은 이런 근본적인 성찰의 힘을 두려워하며, 이를 봉쇄하기에 급급한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핵발전을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이분법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써 이런 제안의 긍정성을 수용해볼 수는 있다. 대다수의 반핵론자들도 당장에 21기에 달하는 우리나라 원전을 모두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책 기조인 셈이다. 지금도 추가적으로 7기의 핵발전소가 건설 중에 있으며, 제 수명이 종료된 월성의 핵발전소가 수명 연장을 위해 검토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된다. 게다가 녹색성장이니 뭐니 하면서 원자력의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거의 60%까지 높이겠다는 정책 방향을 찬성하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핵발전소의 안전을 다짐하는 정부를 믿고 원자력 확대 정책에 계속 동의할 것인가.

    나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안전이 정말 잘 지켜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월성 핵발전소 수명 연장, 그리고 추가적인 핵발전소 건설, 그리고 핵발전소 수출 정책에 대해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정작 우리가 토론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치, 사회의 지도자, 여론의 리더들이 토론을 시작하고 사회 전체의 토론을 이끌어 가야 할 문제가 바로 여기이다. 이를 벗어나면 논점 이탈이라며 우리의 미래를 외면하는 일이라고 못박아 두고 싶다. 

    잊고 있는 이들, 후쿠시마의 영웅 50인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일본의 운명을 짊어지고 후쿠시마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일본 총리는 동경전력 경영진에게 그들의 철수는 있을 수 없다고 ‘옥쇄’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든 이번 사고를 축소할까 골몰하고 있는 경영진들과 다르게, 일본의 핵산업 노동자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자원자도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 현장에 투입된 많은 노동자들은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일 날일 4월 26일, 현장에 투입된 발전소 노동자와 소방요원들이 가장 높은 방사선 오염에 노출되었다. 3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대부분인 28명이 급성방사선 중상이 사망 원인이었다. 이후 134명이 추가로 방사선 중독으로 확인되었다”(장주영 외,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반핵평화의 지식』 중에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냉각수를 주입하고, 방사능 증기를 뽑아내며,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50명의 일본 노동자들은 죽거나 치명적인 질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만이 일본의 핵재앙을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들은 ‘영웅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핵산업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 지금껏 노력해준 덕분에 한국의 핵발전소의 안전이 지켜져 왔을 것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반핵론자들과 격렬히 싸웠을 것이고, 정도에 벗어난 행동 때문에 저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들 중에 누군가가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핵재앙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지금 한국의 핵산업 노동자들이 후쿠시마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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