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인, 윤지훈 그리고 장자연의 죽음
        2011년 03월 12일 06: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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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인>이 끝났다. 주인공인 윤지훈이 죽었다. 아쉽다. 윤지훈이 마지막에 죽을지 모른다는 풍문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길 바랬다. 주인공이 죽으면 우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싸인>이라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막판에 주인공이 죽을 만큼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으니까.

    윤지훈의 죽음은 확실히 튀는 면이 있다. 그가 그 살인자를 검거하기 위해 꼭 목숨을 버려야 했는가가 납득이 안 된다. 이 세상에 심증은 확실하나 물증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이 허다하다. 그때마다 수사관이나 법의관이 자기 목숨을 던져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면 남아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 중에 굳이 이 사건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던지려면, 대단히 강력하고 필연적이며 특수한 동기가 제시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의 심적 변화가 치밀하게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약했다. 그래서 죽음이 튄다는 이야기다.

    자신을 사랑하는 고다경을 남겨둔 상태라서 더 그렇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질기게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 때문이다. 혼자뿐일 때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사이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그런 사람을 남겨두고까지 자기 목숨을 버릴 때는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저 진실과 정의를 위한 법의관의 충정이라는 막연한 동기로는 이 ‘특수한’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막판에 윤지훈은 살인자가 자신을 죽이도록 유도하고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범인이 잡히도록 했다. 그걸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했으면, 죽이도록 유도는 하되 자신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상대가 독약을 타고 숨을 못 쉬게 하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유죄 입증이 충분하니까. 아니면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의 범죄사실을 모두 자인하도록 하고 그것을 녹음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인>는 윤지훈을 죽였다. 왜 그랬을까?

    한국사회를 부검하다

    <싸인>은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관들의 이야기다. 수많은 시신들이 ‘진실’을 위해 부검되었다. 그 부검 작업은 시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싸인’을 듣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었다. 그런 <싸인>의 과정 전체를 통해 부검되었던 대상이 있다. 바로 한국사회다. 그 부검 작업의 정점을 장식한 것이 윤지훈의 죽음이고, 그것을 통해 <싸인>은 시청자에게 ‘싸인’을 보내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싸인>은 한 아이돌 가수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알고 보니 그 뒤엔 가수를 확고히 통제하려 하며,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돈만 아는 소속사 사장이 있었다. 그 뒤엔 굴지의 엘리트 로펌이 있었다. 그와 함께 검찰 등 공권력이 일제히 모의했다. 그리고 그 뒤엔 최고의 정치권력이 있었다.

    정치권력은 막강했다. 모든 증인, 증거를 하나하나 없애갔다. 드라마 <싸인>은 증거와 증인이 차례차례 없어지는, 그래서 우리 현실에선 그 검은 권력의 실체를 더 이상 밝혀낼 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가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싸인>에는 또 다른 성역도 나왔다. 바로 미군이었다. 미군이 저지른 범죄는 권력기관들의 모의를 통해 이 땅의 민초에게 너무도 쉽게 전가됐다. 권력은 ‘한미동맹’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

    또 다른 성역도 있었다. 자본이다. 매값폭행을 일삼는 자본이 사람을 죽이고도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이 <싸인>에 그려졌던 것이다. 윤지훈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진실의 메스를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싸인>이 부검했던 건 한국사회였다.

    <싸인>이 보낸 싸인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싸인>은 목숨을 건 시민의 용기가 아니고선 도저히 한국사회의 진실이 드러날 수 없다는 ‘싸인’을 보내려 한 것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싸인>은 차근차근 보여줬다. 또 자기 일신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소시민들의 행동이 결국 진실의 은폐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보여줬다.

    그리하여 <싸인>은 단언했다. 목숨을 건 용기, 그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그럴 만큼 한국사회는 어두운 상황이라고. 말을 하고 보니 무섭다. 이렇게 무서운 드라마였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싸인>의 내용과 윤지훈의 죽음이라는 구도가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현실에서도 성상납 관행의 문제를 사회공론화하는 데에는 장자연이라는 배우의 목숨이 필요했다. 그녀가 목숨을 내놓기 전까진, 성상납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론화까지다. 진실은 여전히 흑막에 가려져있다. 한두 명 정도의 목숨으론 밝힐 수 없을 만큼 어두운 현실인가보다. 그래서 더욱 <싸인>은 윤지훈을 죽여야 했을 것이다.

    다만 서두에 설명한 내용들 때문에 윤지훈의 죽음에 극적인 필연성이 떨어졌고, 그에 따라 감동이 2% 떨어진 것이 아쉽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심적인 과정이 조금만 더 치밀했더라면 훨씬 인상 깊은 작품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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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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