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정운찬 묘책을 걷어차다
    2011년 03월 12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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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재벌의 이건희 회장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제안한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초과이익 공유제, 별 거 아닌 까닭

그러나 ‘초과이익 공유제’란 말처럼 그렇게 거창하고, 위험한 제도가 아니다. 정운찬씨가 제안한 ‘초과이익 공유제’란 대기업이 연초 설정한 이윤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경우, 그 일부를 협력업체에 자발적으로 분배하는 제도다.

즉 장사가 잘 되었을 때, 큰 자본가가 작은 자본가에게 알아서 좀 나눠주라는 얘기다. 일종의 시혜적이고 잔여적인 복지인 셈이다. 이것은 공유제라는 표현을 달고 있지만, 제도라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어차피 생각보다 많이 남긴 돈으로 자기가 알아서 자발적으로 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 싫으면 처음부터 이윤 목표를 높게 잡아서 초과 달성이 아니라고 우기거나 자발적으로 분배하지 않으면 된다.

따라서 초과이익 공유제는 이름만 거창할 뿐, 내용은 별것도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1년 내내 실컷 장사하다가 남는 이윤으로 연말에 산동네 올라가서 연탄 날라주며 사회 공헌했다고 생색내는 거랑 본질적으로 별 차이도 없다.

겨우 이런 정도를 놓고 국내 최대그룹의 회장님이 "공산주의" 운운하며 짜증을 냈으니, 참 이건희씨는 작은 일에 분노할 줄 아는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번 일로 정운찬이 좌경화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동안 학문의 세계에 갇혀 있던 정운찬 위원장이 이번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자본의 속성에 대한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운찬이 별 생각없이 초과이윤 공유제를 얘기했다가 곤란에 처한 것으로 분석하지만 내가 볼 때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이름만 거창한데 내용은 별 게 아닌 제안을 한 것 같다.

작은 일에 분노할 줄 아는 훌륭한 회장님

어쨌든, 이번 이건희의 비판으로 정운찬은 졸지에 두 가지 망신을 당했다. 하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분당에 출마할지도 모르는데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를 모를 이상한 말을 유포한 사람이 되었고, 경제학 박사로 서울대 총장까지 지냈는데 어디서 족보도 없는 듣보잡 경제학을 들고 나온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정운찬을 공격하려던 좌파들은 오히려 머쓱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경제를 살리려면 개별자본가의 자발적 의지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증세’를 해야 한다. 현재 2단계인 법인세를 3~4단계로 세분화해서 세율 상위 구간을 신설해야 한다.

현재 법인세율은 과표 2억원 이하는 10%, 2억원 초과는 22%이다. 즉 순이익이 2억 규모인 기업이나 2백억 규모의 기업이나 똑같이 세율 22%를 적용받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대기업일수록 돈이 쌓이고 있다.

10대 그룹의 사내유보율(사내유보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것)은 2004년 600%(자본금의 6배)를 돌파한 데 이어 2007년 700%(7배), 2009년에는 1000%(10배)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도 52조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남아도는 돈을 조세로 회수해서 국가가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창설하고, 복지혜택을 늘려나가면 당연히 내수에 도움이 되고 중소기업의 매출도 올라간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한쪽에선 가계 부채로 고통 받는데, 한쪽에서는 돈이 남아돌아서 처치 곤란인 상황이다. 이 상황을 두 글자로 말하면? 맞다. ‘공황’이다.

정운찬 묘책을 거부한 이건희

정운찬은 경기변동의 원인이 되는 구매력의 불균등 분배 문제를 완화시키고 싶었다. 자본의 미래를 위해 근사한 생명 연장책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원래 성과가 나오면 나눠 갖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덕이다.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오래 지속되어왔다. 이건희는 이 묘책을 거부한 셈이다.

끝으로, 이건희 씨가 국내 최대 재벌그룹의 총수이긴 하지만 논리적인 능력은 별로인 것 같다. 일단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경제학 공부를 오래해 봤지만 들어보지 못했다." 는 말로 ‘초과이익 공유제’를 비난했다. 그러나 학문의 즐거움이란 원래 못 들어본 것을 새로 배우면서 얻는 기쁨이다.

옛날 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얘기만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면 어찌 생각과 학문의 발전이 있겠는가? 예를 들어 1905년에 아인쉬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이건희씨 같은 사람이 "내가 물리학공부를 어릴 적부터 해봤지만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면 그게 무슨 비판의 논거가 되겠냐는 얘기다.

이건희 씨는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처럼 "마누라와 자식새끼만 빼고 모두 바꾸겠다"는 각오로 학문에 대한 개방적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건희 씨가 초과이윤에 대한 내면의 깊은 욕망을 끊고, 못 듣던 말을 새로 들을 때마다 지적 충동을 느끼는 초과학습의 세계로 나오길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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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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