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2혁명 더큰 놈이 오고있다
진보세력 탄생, 중동 전역에 후폭풍
    2011년 02월 18일 03: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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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가 축출된 이후 이집트에서는 소위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체제가 출현하였다. 이 체제의 핵심적인 역할은 현재 군부가 맡고 있는데, 이들은 무바라크가 축출된 이후 이집트 통치치제에 나타난 공백을 잠시 메우고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다양한 ‘개혁’ 일정을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 현상황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군부의 설익은 정치 개혁

군부가 제시한 다양한 ‘개혁’ 일정 가운데는 다음 선거 실시와 계엄령 해제, 정치범 석방, 구체제의 주요 인사 재산 몰수와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시위자에 대한 발포 책임자 수사 등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이집트 군부는 시위를 이끌었던 지도부들 가운데 일부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여 이들을 자신이 제시하는 ‘반쯤 설익은’ 정치 개혁 일정에 동참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반면에 현재 이집트 전역을 휩쓸고 있는 파업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감을 표시하면서 엄포성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런 군부의 입장은 현재 이집트 상층 정치 체제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이집트 군부가 놓인 미묘한 세혁균형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일찍이 이집트 역사상 볼 수 없었던 대중적인 시위의 물결이 체제의 밑바닥까지 끓어올랐다는 점인데, 과거 1952년의 나세르의 쿠데타 당시에도 이렇게 군부를 압박하는 대중적인 시위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 군부도 전무후무한 경험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이상 현 체제의 어느 부분도 지금의 분노와 시위의 확산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부 여당은 무기력해졌으며 보안경찰은 민중들에 의해 거리에서 퇴출당했다. 심지어 군인들 가운데 일부는 시위대와 합류하기도 했다.

이런 일촉즉발의 불안정한 균형 관계 때문에 이집트 군부는 일정하게 구체제 가운데 민중의 지탄을 받는 상징적인 인사를 제한적으로 단속하는 것을 통해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외양을 갖추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일정하게 확보하려는 것이다.

‘민생 시위’ 아니다

하지만, 무바라크 체제의 핵심적인 수혜 집단이자 수호 세력이라는 약점 때문에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 퇴진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전부 수용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시위대에게는 ‘자제’를 요구하면서 파업 사태에 대해서는 단속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다.

현재 이집트 국영 TV에서는 이번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시위에 대해서는 재빠르게 찬사 일색인 반면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마치 이기적이며 국가 경제 재건을 방해하는 세력인듯이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 과정을 통해 거리에서 가장 많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보안경찰과 친무바라크 깡패들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을 벌인 것은 다름 아닌 이들 노동자들이었다.

현재 국내 언론들도 이들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껏해야 이들의 시위를 ‘민생 시위’라며 의미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접근은 이번 이집트 혁명과 이집트 노동자들간의 관계에 대한 무지일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곡해의 소지도 있다. 

첫 번째, 이번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것은 지난 18일간 이어져 온, 연속적이면서 거대한 대중시위였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실상 2월 초부터 무바라크가 퇴진한 2월 11일 사이의 팽팽한 대립 관계를 시위대측에 유리하게 돌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이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사실 이번 이집트 혁명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이집트 내에서 가열되기 사작한 좀 더 긴 과정의 클라이맥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기점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수도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거대한 산업 단지인 마할라(El-Mahalla el-Kubra)를 들 수 있다. 이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은 이곳을 이집트의 시디 부지드(Sidi Bouzid)라고 부르는데, 시디 부지드란 지난해 튀니지에서 한 청년 노점상이 정부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한 곳이다.

이번에 무바라크를 몰락시킨 중요한 씨앗이 바로 이곳에서 발생한 파업과 이를 지지하는 풀뿌리 운동에서 뿌려졌기 때문에 이렇게들 부르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이곳에서는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둘러싸고 일련의 파업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그동안 파업은커녕, 정부로부터 독립한 노조조차도 존재하기 힘들었던 이집트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영기업과 직물 공장에서 일하는 약 2만4천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여 6일 동안 공장을 점거한 결과로 이들은 임금 인상과 약간의 보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비슷한 행동이 다음 해인 2007년에도 잇따랐고, 지난 2008년 4월 6일에도 또다시 파업이 발생하였다. 파업이 발생하고나서 수시간만에 파업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파업 참여자들은 무바라크의 포스터를 끌어내리고 이를 짓밟았는데, 급기야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는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무바라크가 통치한 지난 30여년 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이집트 정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파업으로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또다시 보너스와 임금 인상 등의 양보를 획득했고, 이 파업을 지지하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청년운동인 ‘4월 6일 운동’이 탄생했다.

청년운동 ‘4월 6일 운동’ 주목해야

이들은 이후 2년간의 각종 파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이번의 반무바라크 시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 2008년 4월 6일의 파업이 무바라크 체제의 약점이 첫번째로 드러난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파업의 성공으로 인해 이집트는 그 이전의 이집트와 똑같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지난 2월 9일,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이틀 전 마할라 노동자들은 전국적인 총파업에 참가했고, 이러한 파업 발생이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에 결정적인 우위를 안기면서 무바라크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과정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탓에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가능하다. 지난 1987년 민주화 시위로 군부 독재정권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이전에도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자 파업(구로 동맹 파업, 86년 5.3 인천 시위 등)과 이를 이끌려는 사람들의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이들의 노력과 이어진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없었더라면, 1987년의 민주화 시위도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08년 4월 6일, 이집트 마할라 파업 당시 분노한 노동자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진을 끌어내려 짓밟고 있다.

노동자 파업의 파급력 두려워 한 군부

두 번째, 현재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체제’의 정체 상태를 깨트리고 군부가 정치 개혁 약속을 뒤집지 못하게 할 쐐기 역할을 하는 것도 노동부문의 사회적 진출이다. 이미 군부가 무바라크의 퇴진을 강제시킨 것도 대중 시위에 뒤이은 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이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을 두려워해서였다.

따라서, 이집트 군부에게 가장 결정적인 압력이었던 ‘정치적 스팀'(파업과 이에 결합한 대중 시위)이 증발한다면, 이집트 군부는 숨 쉴 여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집트 군부는 기존의 약속들을 하나 둘씩 회수하거나 시위대 쪽에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하도록 강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군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현재 일정 부분 그렇게 되고 있는데- 확산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러한 파업이 가져다 줄 사회 통치체제 전체의 해체 상황 때문에라도 군부가 제시할 양보의 폭과 구체성은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파업이 지속되자 이집트 군부는 애초의 모호함에서 반 발짝쯤 앞으로 나와 정치범 석방 일정과 계엄령 해제 시점까지 공포하겠다고 밝혔다. 

세번째, 무바라크가 퇴진했다고 해서 무바라크가 추진했던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된 것은 아니다. 엄연한 현실은 이집트 혁명 뒤에도 수많은 ‘미니’ 무바라크들이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적 수준에서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 도시, 마을의 ‘미니’ 무바라크들을 그냥 용인할 것이라고 보는 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수퍼’ 무바라크도 몰아낸 이집트 노동자과 농민, 시민들이 ‘미니’ 무바라크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수퍼’ 무바라크와 ‘미니’ 무바라크

어찌보면, 자기가 사는 공간에서 가장 밀접하게 자신을 억압하던 당사자들은 바로 이들 ‘미니’ 무바라크들인데, 지금 이집트 카이로을 벗어나 이집트의 지방 도시와 농촌으로 파업과 농민 투쟁이 확산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 때문이다.

이집트가 ‘무바라크 없는 무바라크 체제’로 유지되기를 원치 않고, 무바라크 체제를 근본에서 일소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일본 총독부의 총독이 일본으로 도망갔다 해도 여전히 내가 사는 마을의 경찰서장이 바로 그 총독이 임명한 친일 서장이라면 도대체 식민지 체제가 청산되었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과 분노가 바로 해방 뒤에 한반도 남단을 휩쓸었던 저항의 주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과정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2011년 2월 11일 이전에 벌어진 다양한 공간과 시간대의 투쟁들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기점으로 다시금 타흐리르 광장에서 전국으로 분기, 지방적 수준으로 한층 더 심화되는 사회혁명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이집트 혁명에 동참하는 사회세력들의 저변을 새로이 넓히는 과정으로, 현재의 군부를 정치투쟁의 전면에서 밀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 변화의 정도는 이런 종류의 순환적인 힘에 의해 원기를 회복한 저항운동의 규모와 강도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심화될 경우 전국적인 수준의 더 심도 깊은 저항에 군대가 출동하여 진압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여의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그러한 과정에서 안그래도 동요하고 있는 군대의 사병들 사이에서의 분열이 더욱 더 가중될 가능성이 많다.

   
  ▲지난 2월 10일, 카이로에서 이집트 박물관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 노동자투쟁 의미의 보편성

네 번째, 이번의 이집트 노동자들의 파업은 단순히 ‘이기적’이거나 무바라크를 몰아낸 대중 시위에 비해 주변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파업은 또다른 의미에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띄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마할라 산업단지는 한 때 이집트의 경제적 민족주의의 상징이었다. 그 이유는 마할라가 지난 1930년대에 이집트인이 최초로 온전히 소유권을 획득한 기업이 세워진 곳인데다가, 1960년대에는 중동에서 가장 거대한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바라크가 집권한 이후, 다수의 국영기업이 민영화되었는데 여기에는 마할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정에 시달려야했고, 보조금들도 가차없이 삭감되었다. 식료품에 대한 정부 보조금만 해도 무바라크 통치 기간 무려 반 이상이 삭감될 정도였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4년 이후 기업가들로 구성된 소위 ‘개혁 내각’이 국제통화기금이 제시한 개혁 노선을 밀어붙이면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들 사이에 부패가 만연했고,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은 날이 가면 갈수록 곤궁해졌다.

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마할라 노동자들의 평균 기본 봉급이 한 달에 약 100달러였는데, 그나마 이것도 일련의 파업으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올라서 그런 것이다. 어떤 곳은 한 달에 50달러까지 받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관리도 긴장 속에 주목

이런 이집트 민중의 고통의 정도가 어찌나 심각했던지 지난 2008년에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위키 리크스 공개)을 쓴 한 미국 관리도 극도의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이 같은 경제적 곤궁 때문에 현재 이집트 각지에서는 파업이 발생했고, 이러한 파업은 무바라크가 퇴진한 이후에는 더욱 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더구나 현 이집트 군부는 이런 이집트 노동자들의 필요에 전혀 부응을 하고 있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이고 있다)

예컨데, 이집트에서 유명한 타우피크 알 누르(Tawfiq al-Nour) 백화점 체인의 경우, 전국에서 약 5천 명의 관련 노동자들이 카이로로 집결하여 백화점측에 노동시간 단축과 각종 혜택을 요구하며 싸웠다. 그 결과로 이들은 노동시간을 기존의 16시간(!)에서 12시간으로 줄이고 상당한 수준의 임금인상이라는 양보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많은 파업들이 국영기업이나 공기업들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공장이 민영화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민영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임시직으로 전락하거나 언제든지 해고될 처지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최근의 이집트 파업은 그동안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으로 피폐한 생활로 내몰렸던 전세계(선진국 포함)의 수많은 민중들의 처지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이집트 혁명, 그리고 이것과 겹쳐서 진행되는 파업은 단지 후진국에서 독재를 물리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중해 건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진국 정부의 긴축 조치에 저항하는 노동 부문의 투쟁과 동일한 지평선에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집트 파업은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후진국’의 ‘민생’ 시위 정도로 제한하는 것은 곤란하다. 

파업과 이집트 혁명 분리해선 안돼

다섯 번째, 노동자들의 파업이 단순히 경제적 성격에만 제한된 것도 아닌데, 여기에는 이집트 구체제를 일소할 정치적 성격도 아울러 공유하고 있다. 이집트 노동자들은 현재 자주적인 노동조합(마할라도 마찬가지)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집트 노조가 국가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그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은 자연스레 정치적 성격을 띄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파업들이 경제적인 요구와 함께 정치적인 요구까지 같이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다수의 회사 경영진들이 실제로 무바라크 체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들 대다수는 여전히 경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 파업은 이번 이집트 혁명과 불가분의 관련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적 부분과 경제적 부분이 섞여 있어 그 둘을 분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만약 이집트 파업을 이번 이집트 혁명과 인위적으로 분리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구체제를 일소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단절시킬 위험을 낳는다.

어찌보면, 이집트 파업과 이집트 혁명과의 관계는 성경의 솔로몬 대왕의 심판 이야기처럼,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던 갓난 아기와 같은 존재다. 

종교를 넘어서 민중을 통합시킨 파업

   
  ▲플래카드를 들고 활동중인 ‘4월 6일 운동’ 활동가들.

여섯 번째, 많은 사람들은 중동 지역의 정치적 후진성을 탓하곤 했는데, 정작 그것을 근본에서 바꿀 중요한 가능성이 이번 파업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물론, 이번 반무바라크 투쟁 과정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이 보여준 연대나, 무슬림 형제단의 주도력 제한, 바레인 시위에서 보여준 수니파와 다수 시아파 사이의 연대 같은 사례들은 출발로서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더욱 더 공고한 지반 위에 서려면 종파나 신념에 관계없이 이들 이집트 민중들이 공통으로 놓여있는 사회적 지반 위에 서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들의 공통적인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단결하게 하는 파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정치세력도 등장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마할라 파업은 이미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파업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탄생했는데, 이들은 주되게 좌파들과 진보 성향의 변호사들, 인터넷 활동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노조 활동가들과 연계를 가지고 공장과 공장간의 연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러한 세력의 탄생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동의 정치 지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최근에 드러난 위키 리크스의 외교 전문 내용을 보면, 마할라 파업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 미 대사관측은 이 세력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다.

"마할라에서 새로운 조직적인 반대 세력들이 표면에 부상했는데, 이들은 현재 이집트에 존재하는 세력에게 붙여지는 정치적 딱지를 거부하고, 명백히 무슬림 형제단과도 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집트 정부가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집트판 PT당의 가능성

종교적 영향력이 강하며 그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삼은 정치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집트에서(더구나 아랍 세계에 퍼진 무슬림 형제단의 본고장) 세속적이면서도 노동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것은 이집트의 정치 풍토를 근본에서 바꾸는 ‘객토’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최근의 일련의 파업 과정에서 이러한 세력들이 결합하여 일정한 지지세를 형성하게 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이집트판 PT당’이 탄생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이런 정치적인 결실은 이집트를 넘어 중동 전역에 엄청난 정치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 혁명이 작은 호수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 만들어낸 잔물결이라면, 노동자들의 파업과 이에 결합한 대중시위인 이집트 ‘제2차 혁명’은 그보다 더 큰 돌을 호수에 던져 더 큰 물결을 만들어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집트 혁명의 영향으로 각종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중동 지역 각국에도 한층 더 심화된 자극을 줌과 동시에 그 과정 역시 압축적으로 진행토록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 물결은 현재의 중동 지역의 시위가 단순히 아랍 민족주의의 부활에만 그치지 않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특히, 국제 체제의 패권이 변하는 상황에서 이집트, 더 나아가 중동 지역의 진보적 세력의 안착화는 중동 지역을 두고 패권을 다투는 패권세력들 턱밑에서 이들의 전횡을 견제할 중요한 가시 역할과 국제적 연대의 안테나 역할을 할 것이다

이집트 파업으로 이집트, 더 나아가 중동 지역은 그런 방향으로 이제 막 기지개를 시작했으며,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중동 지역, 더 나아가 전세계적인 파급력의 차원에서 ‘1차 이집트 혁명’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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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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