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세계 차원 보편적 저항에 합류
    이스라엘 향한 확산 가능성 주목해야
        2011년 02월 12일 08:12 오후

    Print Friendly

    이집트의 ‘파라오’ 무바라크가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가 축출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독재자 축출을 위해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로 나선 이집트 시민들과 가슴을 졸인 채 사태 전개를 지켜보았던 전세계의 수많은 ‘지구촌’ 시민들의 연대의 힘이다.

    시민이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선박 

    군부 집권이나 과도 정부, 혹은 더 다양한 정부 형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지난 보름여 넘는 시간 동안 거리의 전투를 통해 엄청나게 변화한 수많은 이집트인들이 여전히 사태를 결정짓는 주요 배역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향후 구성될 이집트 정부는 각성된 이집트 시민이라는 거대한 밀물이 갑자기 밀어닥친 항구 위에 떠있는 선박의 신세라는 제약을 받을 것이다.

    어찌보면, 지난 1979년의 이란 혁명과 그 파급력이 이 지역에서 독재 체제를 유지하던 중동 국가들과 미국에겐, 알토에서 테너까지 음역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저주의 소리였다고 한다면, 이번에 성공한 이집트 혁명의 여파는 국제체제가 놓인 변화된 환경에 힘입어 그 음역을 확대하여 메조 소프라노에서 바리톤의 음역대까지 이르는 다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또한, 중동지역도 과거의 퇴행적인 정치풍토와 구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의 보편적인 저항운동에 합류했음을 나타낸다.

    『세계는 평평하다』를 쓴 토마스 프리드만의 말을 돌려 사용하자면, 지구적 차원의 저항운동이라는 지각판에서 그토록 오래도록 침강 부분을 이루던 중동 지역이 마침내 융기하여 지각판 전체가 평평해질 중요한 전기를 확보한 셈이다.

    세계사의 중요한 이정표

    이 점에서 이번 이집트 혁명은 1979년 이란혁명과 지난 89년부터 시작된 동유럽 붕괴, 그리고 2001년의 9.11 테러에 이어 세계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면서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쯤해서 이집트 혁명이 가져올 또다른 중요한 측면에서의 변화와 그것이 가져올 전망에 대해서 몇가지 더 짚어보자. 

       
      ▲무바라크 하야 소식에 기쁨을 참지 못하고 깃발을 휘두르며 환호하는 이집트 카이로 해방광장의 시민들.

    이제는 언론들이나 전문가들도 무바라크 퇴진 이후 사태 전개의 하나로 기타 다른 중동지역의 국가들로의 확산을 가장 먼저 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확산 전망 가운데는 중요한 나라 하나가 빠져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집트 혁명으로 인해 점증하는 이스라엘 내의 위기감 때문에 향후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동맹은 더욱 강화되며, 심지어는 이집트 혁명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군비 증강과 함께 전쟁을 하도록 부추길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느낄 불안은 사실인데, 지난 1월 28일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지는 “이집트가 없다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친구 하나 없는 국가로 남게 될 것이다.”라며 극도의 불안감을 보인 바 있다.

    분석 대상 밖에 있는 아스라엘 주목해야

    사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덕택에 지난 30년간 이스라엘은 국가 수립 이후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인 중동 아랍 국가들과의 잦은 전쟁 상황에서 빠져나와-남부 전선에서의 평화를 이용하여- 팔레스타인이나 이란, 시리아, 레바논 등 소위 북동 지방에 대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군비라는 면에서도 이집트 무바라크 덕을 봤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79년 이집트와의 평화협정 이전의 이스라엘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컸지만, 이집트와의 평화협정 이후에는 그 규모가 GDP의 7%(2008년)까지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이집트 덕택에 이스라엘은 군사비에 대한 부담을 대폭 줄이면서 국내적 안정을 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집트의 무바라크 퇴진으로 인한 안보적 불안감이 이스라엘의 대폭적인 방위 예산 증강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가정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연한 한계도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난 30여년 동안보다 더 확대된 전선에서 아랍 국가들을 상대해야한다는 점도 부담이지만, 그러한 대폭적인 군비 증강조차도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다.(이것은 이스라엘이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다는 이점도 피해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현재의 경제위기가 이스라엘 노동 대중에게 고통을 가하여 사회적 불만을 낳고 있다. 예컨데, 지난 2월 1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생필품 가격 및 유가 상승 등 폭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긴급 물가 안정책을 발표했다.

    물가 폭등에 따른 서민층의 피해가 늘어나자 이를 줄이기 위해 최저 임금 인상(125 달러 인상)은 물론 지난 해 30%까지 상승한 수도세 인하와 대중교통비 10% 인하, 지난 1월부터 오른 가솔린 가격 동결 등의 포괄적 물가 안정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집트 노동자 투쟁과 이스라엘 정부의 물가정책

    이스라엘 정부가 이집트 혁명의 다급한 와중에도 서둘러 이런 조치를 발표한 데는, 정부가 최저 임금 인상과 물가 인하 등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2주 내에 총파업을 하겠다고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위해 예산 한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가 안정책에 필요한 예산인 약 3억 달러 정도의 재원 마련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정부 부처 예산을 2% 감축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감세 방안을 1년 뒤로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국방비 비중을 이집트와의 평화협정 이전 수준으로 대폭 올린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이런 조치를 서둘러 발표한 시기는 이집트 혁명에서 노동 부문이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들을 제시하며 대규모로 시위에 동참하던 때와 맞물려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보기에 이스라엘 노동조합들의 성격이 많은 부분 퇴행적이라 해도 이들이 자신의 경제적 곤란과 동일한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이집트 노동자들의 진출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이집트 혁명이 다른 아랍 국가들뿐 아니라 중동에서 핵심적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파급 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요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주민 대다수인 노동 부문의 요구 역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스라엘 상층부의 분열 주목할 필요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군사정책은 어떻게 될까? 이 역시 제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최근의 이스라엘 최상층부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서방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이집트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중동 지역 사태 변화에 대해 위기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치, 군사 엘리트들내에서 심각한 분열을 겪었다.

    한 이스라엘 분석가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 국가가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고까지 평가할 정도였는데, 표면적인 발단은 평상시 같았으면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을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의 교체 문제였다. 현 군 참모총장은 임기가 다 되어 곧 퇴임할 가비 아슈케나지 중장인데,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은 그의 후임으로 요아브 갈란트 소장을 지명했다.

    그러나 갈란트 소장은 그가 저지른 불법적인 토지 획득과 관련해 제기된 소송 등 이런저런 추문으로 인해 낙마하고 말았다. 지난 몇 년간 공들인 갈란트 소장이 낙마한 사건은 안그래도 대중적인 인기가 점점 떨어져 위기의식을 느끼던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에게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도 참모총장은 물론 총리까지 역임했다)

    여기에 아슈케나지 중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 정보 장교가 허위로 만든 문서가 유출되면서 둘 사이가 더 험악해졌다. 이 허위 문서는 바락 국방장관이 자신이 지명한 갈란트 소장을 군 참모총장에 임명하기 위해 아슈케나지 중장이 내심 밀던 다른 후보자를 공격할 방법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갈란트 소장의 낙마 뒤에는 아슈케나지 중장의 모략이 있다고 여긴 바락 국방장관은 그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바락 국방장관은 허위 문건 작성 유출에 아슈케나지 참모총장이 관련되 있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를 강제로 쫓아내려했다.

    이스라엘 군부 분열의 배경과 의미

    이에 대해 아슈케나지 중장의 지지자들과 바락 국방장관의 다른 정적들이 합세하여 낙마한 갈란트 소장을 어떻게든 참모총장에 다시 임명하려는 바락 국방장관의 시도를 저지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바락 국방장관이 차선으로 과거에 자신이 임명했던 부참모총장 야이르 나베흐 중장을 야슈케나지 참모총장을 대신할 참모총장 대행으로 만들려던 것마저 좌절시켰다.

    약 1년 반 전에도 이 두 사람은 부참모총장 임명을 둘러싸고도 이견을 드러냈는데, 당시 아슈케나지 중장은 이스라엘 북부 사령관인 가디 아이젠코트 중장을 원했고, 바락 국방장관은 역시 갈란트 소장을 밀었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 발생한 이들 사건들은 단순히 당사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경쟁과 원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깊은 배경은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놓이게 된 정치적,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둘러싼 것이었다. 우선, 지역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이란에 대한 대처 문제다. 

       
      ▲이집트 혁명으로 인해 자국 내의 분열이 더 가속화될 운명을 앞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묘한 트리오. 왼쪽부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압바스 팔레스타인 정부 수반.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 군사 엘리트 내에서는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 여부를 둘러싸고 분열이 존재한다.

    아슈케나지 중장과 전직 모사드 국장인 메이르 다간 같은 사람들은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군사 공격이 불러올 역효과를 염려하여 반대하는 측에 있다면, 베냐민 네타나후 총리와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은 이란 공격에 자신들의 모든 정치적 운명을 걸고 있다.

    작년 봄, 이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어 아슈케나지 중장은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기타 중요한 인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과의 관계에 되돌릴 수 없는 긴장을 조성했다.

    사실 앞서 바락 국방장관이 참모총장으로 밀다가 낙마한 갈란트 소장은 바로 이런 바락 국방장관과 같이 이란에 대해 공격적인 입장을 내보인 사람이었다.

    결국 갈란트 소장을 낙마시키고 바락 국방장관의 입지가 약화된 것은 이스라엘 정치-군사 엘리트 내부에서 이란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공격을 주장하던 진영에게는 심각한 후퇴였다. 

    오바마 행정부와 이스라엘 강경 군부의 갈등

    미국 역시 아슈케나지 중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며 바락 국방장관을 주변화시켜왔다. 미 합참의장인 마이크 멀렌 제독은 아슈케나지 중장과는 개인적인 친구인데다가 그의 고별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이스라엘까지 날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런 그의 행보를 두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전례없는 행동’이라고까지 평할 정도였다.

    반면에 버락 국방장관은 국방장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사에 불참하고 미국을 방문했지만, 도리어 미국은 그를 상당히 냉담하게 맞이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지 1월 21일자에 따르면, 멀렌 미 합참의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베니 간츠 중장을 만나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고 한다.

    간츠 중장은 미국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군부와 깊은 관계를 형성해온 사람인데, 역시 확고하게 바락 국방장관 쪽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바락 국방장관은 미 군부가 자신을 제치고 다른 이스라엘 군 간부들과 접촉하는 것을 불쾌해 한 나머지, 몇 달 전에는 이런 이스라엘 군 간부들과 미군 간부들 사이의 접촉을 억압하려고도 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이스라엘 바락 국방장관과 같은 진영에 속한 사람들간의 점증하는 위기는 팔레스타인 문제도 한 몫을 했다. 현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현 이스라엘 정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다.

    초기에는 바락 국방장관이 전적으로 미국과 대화하는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 미 행정부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애초에 이스라엘 정부가 약속한 양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며 바락 국방장관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락 국방장관은 지난 달에도 연립 정부에 참여할 것을 고집하며 자신이 속한 노동당을 분열시키는 무리수를 범하기도 했는데, 당시에 노동당에서는 진전없는 평화협상과 날로 심해지는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바락 국방장관을 끌어내리려고도 했다.

    미국-이스라엘 차이와 갈등 증대 가능성

    결국 단기적으로는 주변 지역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차이와 갈등이 점점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이스라엘 정치-군부 엘리트 내부의 분열상 확대와 이전투구, 스캔들이 가져온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현재 이스라엘 군의 사기는 엄청나게 저하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현재 이스라엘 군의 사기가 지난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가 헤즈볼라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속절없이 후퇴한 뒤와 유사하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이집트 혁명마저 발생하여 그 대처 방법을 둘러싸고 기존의 이스라엘 상층부 집단 내의 분열과 갈등, 희생양 삼기가 더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집트 혁명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쟁들을 이스라엘내에서 점화시킬 가능성이다.

    이것은 이집트와의 평화협정 결렬로 초래될 군사적 긴장의 책임은 이스라엘 측에 먼저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과 진정한 ‘평화협정’을 맺지 않고는 주변국들과의 진정한 관계 개선이 힘들다는 자각을 동반한다.

    반대로 기존의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은 진정한 평화협정이기는커녕, 이스라엘을 항상적인 군사적 불안정에 빠트리는 공격적인 외교, 군사정책을 동반했다)

    어쨌든 이런 분열상(중동 지역의 기타 권위주의적 국가들도)은 급기야 의도치 않은 정치적 효과를 낳는데, 그것은 상황 통제와 관련된 체제의 무능력과 마비다. 이미 이런 상황은 무바라크가 최종적으로 하야하기 전에 이집트 정부, 여당, 군 내부와 서로간에 보여준 동요와 갈등, 오락가락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효과는 중동 전역에서 이집트의 사례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좋은 무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