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 없는 '묻지마 통합'에 좌절감
        2011년 02월 09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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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내 이른바 통합파들은 "묻지마 통합, 도로 민노당은 아니다"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그 외에 뭐가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그냥 통합 진보정당이 되면 잘 될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세상을 당장 뒤집을 비전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 비전이라는 ‘물건’을 보여줬으면 나 역시 판단을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함께 하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함께 하자’는 거 말고 뭐가 있나

    문제 제기 수준이 아니라, 노선에 대한 주장이라면, 주장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주장에 대한 증명의 부담이 있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측에서는 그것에 걸맞는 내용물을 내놓고 구성원들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독자파까지도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 일단 ‘시기’를 못박고 이때가 아니면 죽는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협박이 될 수도 있는 주장을 일삼고 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도박판에 당 전체를 놓고 베팅을 하는 모습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로 섣불리 통합을 했다가 다시 ‘분열’이라도 된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거의 끝이다. 

    새로운 정당의 창당과정이라면 최소한, 아주 최소한이라도 시대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통합의 대상이 되는 당의 당원들, 진보진영 단체의 구성원 그리고 현재는 함께 논의 테이블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시민운동, 크든 작든 주민운동 조직에게 우리가 건설해야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천명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동참의 호소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원, 조합원, 회원들에게 얘기하는 비중만큼 대중들에게 우리의 시대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세력 혹은 사람이 통합에서도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지난달 있었던 진보신당 당협 위원장 워크숍 자료집을 보니, 새로운 진보정당의 선결 조건 등으로 북한문제가 주도적으로 나온다. 아마도 이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게 뻔하다. 이 대목에서는 나의 좌절감이 극대화 된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학생운동 시절에 자주파에게 받은 상처를 달래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게다가 국민들은 그 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다).

    나를 좌절하게 하는 것

    물론 북한에 대한 자주파의 태도를 다 덮고 가자는 게 아니다. 다만 통합의 선결 조건으로 독자파와 관망파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게 겨우 북한문제와 자주파의 패권 방지 정도라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핵심의 가장자리다. 운동권 안에서야 오랜 기간 동안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했던 사안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합의 선결 조건인 양 제시하는 건 무척 허전한 일이다.

    통합파가 독자파나 관망파에게 통합의 근거, 혹은 설득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게 고작 ‘북한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70~80년대 운동권 프레임에서 한 발자욱도 탈피하지 못한 채 독자파와 논쟁하는 것이 현재 통합파의 모습이다. 그것은 그들의 말과는 달리 도로 ‘운동권만의 정당’, 도로 ‘운동권만의 더 큰 정당’, 도로 ‘운동권만의 새 진보정당’으로 가는 길이다.

    박정희가 의도한 지역주의를 오히려, 소위 ‘민주화 세력’들이 이용해 권력을 누린 것처럼,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통합파가 과거 운동권 프레임을 이용해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프레임이 당을 극적인 찬반으로 갈라놓을 수 있고, 독자파의 밑천을 바닥까지 드러내게 하기 때문이다.

    통합파는 자주파에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 전혀 다른 프레임을 제시해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독자파가 그것에 민감한 것은 아쉽게도 당연한 일이지만, 통합파가 여전히 운동권적인 프레임에 갇혀서 북한 문제를 통합의 모든 조건인 양 호도해서도 안 된다. 통합파가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걸 찾아서 용기 있게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은 ‘장엄’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사회 각 부문 운동, 특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의 성찰을 동시다발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공격적 통합사업과 철학의 부재

    시민운동에게도 할 말을 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여성부 장관을 배출한 여성운동도 성찰해야 한다. 환경파괴의 가장 큰 주범인 기업이 환경운동의 주요한 스폰서가 되고 있는, 그래서 자본에 대해 제대로 할 말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운동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말 할 것도 없다. 마치 노동운동이 안 되는 것이 진보정당이 갈라져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문제의식도 바꿔내야 한다. 노동운동이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의 주된 원인을 ‘분열된’ 진보정당에서 찾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접근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성찰은 기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은 천천히 가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사모의 정’이 무르익을 때가 적기다. 그래야만 우리의 운동이 정치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풍토와 비전, 시대정신이 과연 지금 제시되고 있는지 통합파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파는 독자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통합파는 그 명분에 사로잡혀 새로운 기운을 모으기 위한 공격적인 통합사업과 철학이 부재하다. 이래서는 독자를 지지하는 당원들과 입장을 보류하고 있는 당원들, 그리고 지지층을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동참시킬 수 없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아래로부터, 지역에서부터 일구어 가야한다. 2012년 당면한 총선, 대선이 중요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2012년 양대 선거만 놓고 통합을 해치우기식으로 가는 게 과연 진보정치에, 진보운동에 도움이 되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지역 차원의 실천적 통합 활동 필요

    당장 통합이 안 되더라도 지역별로 서로의 조직원들이 뒤섞일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역 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복수의 진보정당이 서로의 접촉면을 넓히고 공동의 사업과 비전을 공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민주노총 등과 사회 각 부문의 풀뿌리 운동들이 지역에서 비정규센터이든 ‘민중의 집’이든, 거점을 만들어서 함께 운영하고 진짜 실력을 배양하며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래로부터 대중들에게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이 되면 어떤 것들이 구현되는지를 실제로 보여주는 게 오히려 진보정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통합되면 잘 될 거라고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비정규센터 혹은 민중의 집을 통해 실제로 지역에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게 탄탄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길은 아닐까.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적어도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기운을 만들어가는 것, 그걸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첫출발 일 수 있다.

    진보의 실력은 이미 밑천이 드러난 상태이다. 우리는 바로 지금 같은 시기를 역사가 ‘진보의 반성과 성찰 시대’라고 기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성찰의 시대, 반성의 시기를 우리 스스로 가지면서 각 부문의 진보운동에 대해 연구하고 팀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시기를 거치지 않고, 강한 진보정당, 집권 가능한 진보정당이 과연 탄생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복수의 진보정당은 분열인가?

    마지막으로 진보정당이 여러 개가 있는 것이 과연 분열인가에 대해서 한번쯤 살펴봐야 한다. 더욱더 다양한 진보정당이 있고, 그 진보정당이 자신의 실력을 지역에서부터 쌓아나가는 것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일인가.

    진보신당의 가장 큰 존재 의의는 이제까지 ‘운동권’이 포함시키지 못했던 일반 대중들을 적게나마 ‘조직’으로 묶어냈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진보정당으로 서서히 묶이는 것을 통해, 사회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전략은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 유럽의 경우처럼 여러 개의 진보정당이 각자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선거연합을 하는 형태는 고려될 수 없는 사안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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