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의 기억과 통합의 조건
    2011년 01월 19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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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자들만이 일구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진보정치인가 봅니다.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1992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한국노동당 창준위를 결성하였는데, 창당하자마자 민중당으로 통합하는 것, 저는 싫었습니다. 하지만 통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저는 참 괴로웠습니다. 그 해 봄, 선거 한 번 치르고 통합 민중당마저 해산되었을 때, 우리는 정말 암담했습니다.

혁명적 낙관주의를 접다

저는 언젠가부터 진보정치의 봄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분당 이후 물들여진 제 마음의 색깔은 잿빛일 것입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기쁜 날이 오겠지" 노래 부르며 살던 이른바 혁명적 낙관주의를 저는 접었습니다.

이대로 진보정치의 깃발을 들다가 동토의 땅에서 얼어 죽는다 하더라도 그냥 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해방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선배들에 비하면 역사의 무대에서 조연으로라도 활약한 우리들은 너무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자족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필자

희망이라곤 쥐뿔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절망의 조건, 하지만 다른 길이라곤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 그냥 견디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 분당의 길이었습니다. ‘올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가끔 <레디앙>에 들어가 기사를 보는 것이 저의 정치적 삶의 모두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이빨이 좋지 않아 치과를 들렀는데, 치과 응접실에서 오랜만에 <한겨레> 신문을 보았습니다. 이해찬씨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이해찬과 김근태, 두 분이 제기했던 시기상조론과 비판적 지지는 운동권의 뼈아픈 분열을 낳았더랬습니다. 그렇게 운동의 대의를 배반할 수도 있구나, 차라리 그런 궤변을 만들지 않고 그냥 운동권을 떠나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젊은 날, 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했던 현실주의

하지만 지천명을 넘어선 이 나이에 분들에 대한 사감 따위는 버렸습니다. 오히려 현실 정치판 속에 들어가 나름대로 분투한 분들의 노고, 분들의 판단력에 대해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현실주의가, 우리에게는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인터뷰 기사가 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2012년의 정치 상황에 대응하는 이해찬 나름의 지략이 표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의 견해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일독할 가치가 있는 기사였습니다.

나의 머리 속에선 진보정치의 진로를 둘러싼 논쟁의 전류들이 어지럽게 교차하였습니다. 늘 우리 앞에 가야할 길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저희는 늘 후회 없는 올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했고, 비록 어리석은 선택이었을는지는 몰라도 제 한 몸 살자는 영악한 선택은 하지 않았습니다.

통합에 관한 저의 견해는 이러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분당의 길은 불가피한 길이었지 바람직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분당을 결심하였을 당시 우리가 좋아서 분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분당을 선택한 겁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면 된다고 합니다. 참 편한 말입니다. 제 속은 속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통합에 관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로 하여금 갈라서도록 강제하였던 그 문제들이 전진적으로 해소되는 조건이라면 저는 통합에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

통합의 조건

그 문제들은 북한에 관련한 태도의 문제였고, 패권주의의 문제였습니다. 북한에 관련된 태도의 문제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위 최기영 사건은 당을 폭파시킨 뇌관이었습니다. 최기영 사건은 떠나는 우리들에겐 용서할 수 없는 해당 행위였으나, 남아 있는 분들은 다르게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국가권력의 탄압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한다면 통합의 자리에선 굳이 최기영 사건을 거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단, 민중의 계급적 이해를 대표하는 공당으로서 북한 정권의 오류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전 반핵의 원칙 위에서 북의 핵무장은 엄격히 비판되어야 하고, 평화 통일의 원칙 위에서 북의 연평도 도발은 강력히 비난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원칙 위에서 북의 세습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해야 합니다.

저는 통합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위 세가지 사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공식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만일 북한 정권에 대한 독자성의 원칙이 명확히 표명되지 않는다면, 통합의 논의는 무용한 것이며, 우리는 더 오랜 고난의 행군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합리적 규칙의 수립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창립 당시 당내 민주주의의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한 것은, 한국의 정당운동사에서 민주노동당이 기여한 획기적인 업적임에 분명합니다.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합리적 규칙

당내 민주주의의 원리는 여전히 중요한 정신이며, 앞으로도 계속 견지되어야 하는 진보 정치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결합되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함께 진보정치의 이상을 뿌리내리려고 분투했던 저 8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당원이 주인인 정당,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당원들이 매매의 결정 앞에서 진실로 그 어떤 외적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율적 판단에 의해 독자적인 결정을 하였나요? 부끄럽지만 저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당내민주주의는 당원들의 줄 세우기였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겉으로는 당원들이 주인인 정당이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원들의 자율적 의지와 정반대인 어떤 힘 앞에 모두 굴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었고, 우리의 현실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조건 위에서 우리의 위대한 이상은 다시 전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다운 당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단위에서 1년 이상의 기간을 걸쳐 치열하게 논의하고, 한 번 선택한 결정은 모두가 다함께 목숨 걸고 이행하는 그런 조직은 결코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이상이자 목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은 결코 정파 연합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제 정파 연합의 현실을 준엄하게 인식했을 때, 오히려 더 탄탄한 진보정치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경선과 추첨의 병행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정책위원장을 주대환씨가 맡았을 때와 이용대씨가 맡았을 때 도대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까? 왜 우리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선출하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몸부림쳤던 것일까요? 과연 황광우가 광주시 지부장을 맡았을 때와 오병윤씨가 광주시 지부장을 맡았을 때, 무슨 큰 차이가 있었던가요?

만일 심상정씨가 대선 후보로 나갔다면, 권영길씨가 대선 후보로 나갔을 때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요? 당직, 공직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당내 경선을 했던 것이 썩 유쾌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반성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모든 당직은 경선을 하되, 협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추대하거나 아니면 추첨에 의거한 교대근무 방식으로 최종 결정하자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 대표부터 분회장까지 모든 당직의 선출에 있어서 당원들은 다수의 후보자들 중에서 2인의 당선자를 뽑는 것입니다.

그러면 2인의 당선자들이 상호 합의에 의해 네가 먼저 대표하면 나는 부대표를 맡고, 대표의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부대표가 대표를 맡는 교대근무를 하자는 것이지요. 만일 누가 먼저 대표를 할 것인가를 합의하지 못할 때 그때엔 추첨에 의해 당직자를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당내 공직자 선거 역시 현명한 룰이 요청되는 대목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수의 후보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당원들은 2인의 후보 내정자를 뽑습니다. 하지만 공직 선거 후보의 최종 결정권은 유권자에게 넘기자는 겁니다.

공직자 선거의 룰을 이렇게 바꾸게 되면, 당원들은 아무 부담없이 진보정치의 정신에 입각하여 두 분의 후보를 뽑을 수 있을 것이며, 유권자 여론조사는 두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아주 현명하게 분별해줄 것입니다. 저는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부터 기초의원 후보까지 모두 이러한 룰에 의거하여 선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려해야할 세부 사항이 많으므로 상세한 규정은 전문가들에게 위임하겠습니다.

고대 아테네 정치에서 배우다

저는 이번에 고대 아테네의 역사와 정치를 접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추첨이란 것이 얼핏보면 매우 불합리한 것 같지만, 차라리 추첨에 맡겨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할 때가 있더군요.

아테네의 민회는 2만 명으로 구성된 시민들의 총회였는데, 저희들 진보정당의 당원 총회와 아주 흡사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정치의 참여를 삶의 가장 명예로운 활동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도 중시했지만 동시에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할 줄도 알았습니다.

시민들의 치열한 참여의식과 더불어 정치 지도자들의 탁월한 판단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아테네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진보정치가 아직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위 통합의 두 조건이 관철되고, 새로운 통합정당이 추진된다면, 플라톤의 철인 정치 개념을 적극 고려하여 주길 제안하고 싶습니다. 당원 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찾아나가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 또한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의 구체적 조건을 떠난 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편향으로 흘러버릴 수 있음을 우리는 배우지 않았습니까?

당원들의 기풍이 그 어떤 건강하지 못한 힘의 영향을 받아 타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원들 모두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원로들의 존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하여 당원 총회를 당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로 놓되, 당원 총회 옆에 원로원(Senate)을 두자는 거지요.

당원 총회와 원로원

총회를 개최하기 전, 원로들은 당의 주요 사안에 대해 깊이 숙의하여 자신의 견해를 제출하기도 하고, 때론 건강하지 못한 사업 작풍에 대한 비판서를 제출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원로란, 그동안 오랫동안 민중운동에 헌신하여 왔고, 당 안팎의 사정을 통달하고 있으며, 특정 분야에 전문적 식견을 갖춘 분들을 말합니다.

이번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경구는 아테네인들의 제국주의적 오만을 향한 경고였고, 투쟁이었더군요. 우리의 진보정당운동도 자신의 오만과 타락을 질타해 줄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 이것이 저의 과도한 기대일까요?

2011년 1월 18일 무등산 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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