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왜, 사람들이 죽어나가나
    By 나난
        2011년 01월 14일 05: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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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새벽 6시경, 충남 아산시 삼성전자 사내 기숙사 13층 창문 난간에 25세의 젊은 청년이 걸터앉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이승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을 터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고통은 결국 그의 몸을 건물 밖으로 끌어당겼다. 그가 난간에 오르기 위한 시도를 3~4회 할 때 삼성 직원이 이를 보고, 기숙사 방으로 데려갔지만, 끝내 그가 다시 난간에 오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왜 밀착보호를 하지 않았나?

       
      ▲ 지난 11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김주현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진=이은영 기자)

    14일 오전, 고 김주현(25) 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천안 순천향대학교 장례식장엔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려왔다. 청년의 부모는 억울함과 서러움에 마르지 않는 눈물만 훔쳤다.

    지난 11일 새벽, 주현 씨가 몇 차례에 걸쳐 난간에 오르려 할 때 그를 “제지했던 안전관리요원들은 이후 그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어떤 사유로 밀착보호하지 않고 기숙사 방으로 인도했는지” 등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안타까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고인의 어머니 송치화 씨는 지난 10일 밤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 내용을 말하며 목이 메었다. “엄마, (일) 잘하고, 정말 안 되면 사표내고 올게”라던 아들에게 “네가 이겨내고 잘해라. 거기가 어떤 직장이냐, 세계적으로 훌륭한 기업”이라며 설득했던 그였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아산행 막차에 태워 보내는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 밤, 너무 걱정이 돼 아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목소리가 안 좋아 ‘왜 그러냐’고 했더니 ‘엄마, 기분이 X같아’라고 했어요. 그게 마지막 통화예요. 병원으로 와 안치소에 누워 있는 아들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어요. 딸아이가 동생을 확인하고는 ‘엄마, 자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했는데… 13층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얼굴이) 편안할 수가 있어요?”

    “둘도 없는” 아들이었다. 사망한 지 3일만에야 꽁꽁 언 아들을 마주한 어머니는 “다른 건 못해도, 왜 이렇게 죽었는지, 그 한을 풀어 꼭 좋은 데 갈 수 있게끔 해주겠다”며 아들과 약속했다.

    초일류기업 선택의 결과

    주현 씨는 지난 2010년 1월 4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설비엔지니어로 입사했다. 당시 LG전자와 삼성전자 모두에 합격했지만, ‘초일류기업’인 삼성을 택했다. 당시의 그 선택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그의 몸과 마음은 쇠약해져갔다. 일의 특성상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취급했지만, 아토피는 악화됐고,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도 발병했다. 형식상 3교대 근무일 뿐 사실상 12시간 근무는 기본이었으며, 생산량 스트레스와 계속된 잔업과 특근으로 부모님이 계신 집엔 1~2개월에 1번 정도 밖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주현 씨의 아버지 김명복 씨는 피부염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 회사 측에 부서 이동을 요청했고, 주현 씨는 자재관리부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의 고통이 멈추는 건은 아니었다.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주현 씨는 “새로운 부서에서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했고, “직속 상급자가 스트레스 준다. 밥도 제때 먹지 못할 정도로 일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나 못가. 회사 가기 싫어”, “엄마, 나 회사 가기 싫어”라며 애원하던 날도 있었다. 당시 주현 씨는 신경정신과 상담에서 우울증 진료를 받기로 했다. 진단서에는 주현 씨가 “모든 걸 다 놔 버리고 싶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고 싶다”고 말한 내용이 담당 의사의 필체로 남겨져 있다.

    의사는 ‘향후 5개월간 치료를 요한다’는 소견을 냈으나, 회사는 2개월의 병가만을 허락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초, 복직을 앞둔 주현 씨는 병가 1개월 연장을 요구하며 회사 측에 ‘양호하지만 3개월 추가 약물치료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했음에도 결국 지난 11일 복귀를 위해 10일 밤 기숙사로 향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주현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족들은 “주현이의 죽음은 막을 수 있던 것”이라며 입을 모은다. 기숙사 직원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11일 새벽 주현 씨가 기숙사 13층 난간에 서성이던 모습을 직원은 목격을 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느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경치 참 좋습니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라는 대화도 나눴다.

       
      ▲ 천안 순천향병원에 고 김주현 씨의 빈소가 차려졌다.(사진=이은영 기자)
       
      ▲ 고 김주현 씨는 지난해 11월 신경정신과 상담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사진=이은영 기자)

    의문 충분히 해명 안돼

    이후 그는 주현 씨가 몇 차례에 걸쳐 난간에 오르려는 모습도 봤다. 그리고 그는 얼마 뒤 안전요원 3명을 데려와 주현 씨를 6층 방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이들이 동장을 부르러 간 사이 주현 씨는 다시 13층 난간을 찾아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유족들은 “어떤 사유로 주현이를 밀착보호하지 않고, 곧 바로 기숙사 방으로 인도하였는지, 1차 자살을 시도하던 과정을 목격하고 이를 제지한 안전관리요원들은 그후 어떻게 그를 관리했는지” 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해명과 아들을 잃은 유족에 대한 사과보다는 사태 축소에만 힘을 쏟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지난 11일 삼성전자 박 아무개 인사담당 차장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재담당 과장은 장례식장 근처 모텔로 주현 씨의 아버지를 데려가 합의를 종용했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산재담당 과장은 1년 연봉 2,670만 원과 퇴직금, 위로금 등을 제시했다.

    김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사과를 원했던 것인데, 삼성 측은 장례를 빨리 끝낼 것을 종용하고, 돈으로 합의하려 했다”며 “이에 ‘생각 차이가 너무 커 이야기가 안 될 것 같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그 자리를 모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 측의 종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모텔에서 헤어지고 얼마 후 박 아무개 차장은 김 씨에게 전화해 또 다시 합의를 종용했다. 그리고 삼성 측 관계자들은 지난 12일부터 장례식장 주위를 배회하는 가하면, 24시간 차량 감시를 넘어 장례식장의 방문자를 메모하기도 했다.

    유족 "엄정 재수사" 요구

    여기에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단순자살이라는 사망경위와 함께 별다른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한다는 취지의 사건보고서를 접수했다. 주현 씨의 가족들은 “살릴 수 있었던 아이를 죽음으로 방치한 삼성이 사과가 아닌 돈으로 사태 해결을 종용하고 있다”며 경찰에 “엄정한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주현 씨의 아버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저와 똑같은 부모”라며 “자기 자식의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며 공개사과와 당시 기숙사 일체의 CCTV와 사건의 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이어 그는 “부도덕한 업무와 과실로 인한 죽음에 대해 회사가 공개적으로 사과한다면 이후에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며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체의 대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는 이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등이 개최한 ‘고 김주현 씨 사망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간 근무환경이 어떠 했길래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며 “투신을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한 것과 관련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은 타살의 의혹이 없이 때문에 자살이라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 측의 과실치사는 없는지 경찰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황상기 씨는 역시 “노동자가 병에 걸려도 내쫓고, 업무스트레스로 내쫓고, 돈 몇 푼으로 내쫓는 게 삼성”이라며 “이건희가 물건이라면 지옥에 팔아먹고 싶다”며 울분을 토했다.

    노동자들이 희귀질병으로 죽어나가고,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정신적 고통을 받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회사, 삼성전자를 아직도 세계 1류 기업으로 돈 많이 벌고, 돈 많이 주는, 그래서 가고 싶은 회사로만 한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비극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살?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춰져”
    보안요원 출신 연미정 씨 “종격동암으로 죽은 오빠도, 동료 자살에 기숙사 나와”

       
      ▲ 사진=이은영 기자

    삼성전자 내 직원 자살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 김주현 씨가 사망하기 1주일 전 같은 기숙사에서 24살의 박 아무개 씨가 우울증 등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삼성전자 기흥공장 S1(보안요원)에서 근무한 연미정(28) 씨에 따르면 그가 입사하기 2007년 이전에도 2건의 자살사건이 있었다. 박 아무개 씨처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자살사건은 더 많은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연 씨는 지난 2007년 6월 입사 당시 보안요원 선배들로부터 2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자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성전자 육상단으로 활동하던 한 직원이 ‘훈련이 힘들다’는 이유로 기숙사 커튼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는 것과, 또 다른 여 직원이 기숙사 내 벽걸이 선풍기에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선배들이 해줬어요. 그런데 벽걸이 선풍기에 목을 맨 직원의 방이 바로 제가 묵는 기숙사 바로 옆방이었어요.”

    지난 2009년 삼성전자 LCD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종격동암으로 사망한 연 씨의 오빠 연제욱 씨와 기숙사 같은 방을 썼던 엔지니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 씨의 오빠는 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던 당시 “기숙사가 무척 좋다”며 그와 어머니를 초대도 했었다.

    그러던 연 씨의 오빠가 지난 2006년 초 기숙사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야겠다”고 했다. 이유는 “같은 방을 쓰던 엔지니어가 자살을 해 괴로워 살 수가 없다”는 것. 연 씨는 오빠는 결국 공장 인근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고, 목숨을 끊은 엔지니어는 평소 몸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 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춰지고 있는 모른다”며 “사원들은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된 야근과 과도한 업무 등 노동착취에도 사표조차 마음대로 던지지 못하는 게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현실이에요. 모셔야 하는 부모님이 있고, 챙겨야 하는 아들딸이 있기 때문이죠… 결국 이들은 죽음 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다행히 연 씨가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보안요원으로 일할 당시에는 해당 공장에 자살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의 동료 자살을 지켜보고, 수습해야 했던 선배 보안요원들은 평소 연 씨에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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