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 격한 논쟁의 시절을 맞다
    2011년 01월 10일 12: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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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꽃바람 산천에 불어와 새세상 열어제꼈지 / 노동자 대통령 내손으로 뽑았지 어화둥둥 노동해방 내 조국이여 / 일곱시간 노동으로 아파트까지 생계비 걱정 하나 없는 / 일하는 사람 주인된 나라 눈물로 세웠네 / 노동의 선봉에 정치도 선봉에 사랑이 넘치는 나 / 노동자 대통령 일하는 대통령 어화둥둥 노동해방 내 조국이여…” (노동가요 ‘노동자 대통령’ 중에서)  

점차 넓어지는 논의 

더 얘기를 진행하기 전에 너희들이 알기 쉽게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된 고민과 당시 조건을 말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미 민중당 때도 그랬지만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서는 좌우로부터 날선 비판들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김대중이 김종필이라는 박정희와 5.16 쿠데타를 같이 한 구시대적인 정치인과 손을 잡음으로써 노골적으로 92년과 같은 ‘비판적 지지’를 말할 수 없는 조건이긴 했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보는 사람들이었다. 보통 우파라 말한다. 

사실 김대중씨가 가지는 민주화운동의 대부로서의 무게감은 매우 큰 것이었다. 실제로 너에게는 큰아버지가 되는 영등포 산선(보통은 성문밖교회라고 한다)의 목사로 80년대 내내 노동자와 함께 치열한 투쟁을 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점거한 혐의로 구속까지 되었던 나의 셋째 형님은 “광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대신 모시고 있는 어머니에게는 권영길씨를 찍으라고 하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에 합법적인 대중정당이 가질 위험성을 지적하며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통 좌파라 말한다. 그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노동자 정당을 만드는 것에는 일정 정도 동의를 했지만 자칫 이 정당이 개량화되어 혁명적인 사상과 관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선거주의, 합법주의, 의회주의"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양쪽에서의 날선 비판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미 80년대를 얘기하며 NL-PD를 말한 적이 있었다. 너희에게는 어렵겠지만 현실 운동에서는 항상 부딪치는 지점이고, 당시에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 흐름들이 당연하게도 노동조합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97년 5월 7일에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이라는 주제로 민주노총 간부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여러 가지 문제를 말했다.

첫째,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방향이 정당을 지향하는가, 아니면 대중조직으로서 압력단체를 지향하는가? 둘째, 어떤 계기로 정치세력화를 앞당길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대선에는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당연히 정당 건설을 목표로 해야 하고, 정당건설 운동의 일환으로 97년 대선에는 독자후보를 중심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반대도 많았다. 예를 들면 당시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의 이수봉 사무차장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꼭 정당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조합 그 자체로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민주노총은 정권교체에 일차적 목표를 두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당을 포함한 국민적 후보를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고 5월 29일 열린 민주노총 7차 중앙위원회에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된다. 얼마나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지 한번쯤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논란들을 통해 이후 국민승리 21, 민주노동당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27일. 공익노련 정치실천단 수련회 모습. 전문노련은 공익노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진 속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당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져 버렸다.

민주노총 중앙위원들의 고민들

10년도 훨씬 더 지난 그 당시 노동운동의 주요 리더들은 많은 고민을 했고, 진지한 토론과 때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노동자 정치세력와를 둘러싼 다종 다양한 쟁점이 분출했다. 이제 그 때의 논쟁 현장으로 다시 한번 가본다.  

충북지역본부 배창호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보다 자신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정치방침의 구체적인 결정이 그래서 필요하다. 더 이상 방침 결정을 미루지 말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국민후보 운동이 적절하다. 우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번 대선에 정치세력화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학노련 "독자후보, 국민후보 어떤 명칭이든 민주노총이 후보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총련 윤성근, 이홍우 "국민후보 운동은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민주노총 후보로 비춰지면 이념공세가 클 것이고, 한국노총과도 그럴 것이다. 공정선거 감시단을 통해 민주노총의 내실을 다지고, 정치적 지위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 이후 정치세력화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지 후보를 내거나 하는 문제는 염려된다… 명확한 상, 중장기적 상을 목표로 두고 전술적 배치로 대통령선거, 지자체 선거, 2000년대 고민을 해야 한다. 대선을 중심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민주노총은 영원해야 하고,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조건에서 정치세력화는 시기상조이다. 민주노총의 창립이 얼마 지나지 않은 조건에서 조직적인 토대의 구축과 산별체제의 재편이 시급하다. 현재의 당면 임단투도 어려운 실정 아닌가? 재정은 감당할 수 있나? 이런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조직내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하나로 된 정치방침을 갖는 것은 어렵다. 정권교체나 정책연합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좀 더 중장기적으로 보자." 

언론노련 이형모 "대체로 독자후보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국민연대를 해서 국민후보를 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민주노총의 독자후보인 노동자후보나 민중후보는 조합원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사회개혁투쟁에서 제시된 12대 요구사항을 가지고 막판에 정책연합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우선 시급한 것은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설문조사하자." 

병원노련 김유미 "노동자후보가 아니라 국민후보로 갈 경우 전체 민주운동권과 같이 가는 것보다 우리는 오히려 뒤에서 가는 것이 더욱 명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세력화는 중장기 목표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당면과제인 산별노조건설과 미조직사업장의 조직화가 더 중요하다. 천천히 가자. 중장기적으로 바라보자." 

전문노련 고영주 "지금 시기 광범위한 개혁세력을 결집해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개혁세력들과의 개혁후보가 나온다면 지지하겠다는 정도의 중앙위 결정을 하자. 분명한 것은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을 갖고 대선을 치르거나 정치를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정치세력화와 대선 참여에 동의하나 다음과 같은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와 노동조합의 대중투쟁을 별도로 사고하는 현재의 정치위원회의 사업 추진방식의 문제, 정당건설 경로를 달리하는 세력, 민중후보운동을 고민하는 세력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성급하게 민주노총 중심으로만 사고하지 말고 모든 세력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열어야 한다. 아울러 전국연합이 김대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 여지를 미리 닫지 말자."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김명희 "최소한 투표를 통해서라도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단결을 해야 한다. 금년 임금인상 투쟁과 단협 투쟁이야말로 전국적인 총력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임단투의 전선구축이 곧 정치세력화의 과정이다.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대선을 맞아야 한다. 방침 이전에 투쟁을 통해 실천하는 가운데, 정치방침은 나중에 결정하자. 

금속연맹 심상정 "정치세력화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노조운동이 봉착하고 있는 측면은 고려한다 해도 이번 대선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발전 전망을 포함한 역량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대선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대중의 동력을 최대한 구축해야 한다. 가능한가?

후보는 조합원을 결집하기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어떤 후보여야 하는지는 판단이 안 선다. 국민후보, 범야권후보, 민중후보에 대하여 내부 논의 중이다. 아직 조직 내부의 합치된 견해가 없다. 산별노조 건설을 과제로 천명하고 있는 입장에서 일련의 역량 배분에 연맹이 얼마나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을지 어렵다." 

대전충남본부 이용길 "절차를 중요시 하되 지도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심스럽게 상정한 안건이지만 후보문제를 포함한 직설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후보 문제에 있어 종속적인 위치에 처해서는 안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조직 내의 합의를 이루는 일이다. 이 작업을 우선 빨리 시작해 달라. 여론수렴도 필요하지만 방침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현총련 이영희 "현실적 판단을 해보자. 지자체 선거에 무게가 더 가있어야 한다. 위험 부담들을 생각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실성 있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조와 정치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그동안의 정치세력화의 실패는 대중적 기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화는 다른 시도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데 이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방침 결정을 또 미루면 사업 집행을 할 수 없다. 김대중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노동자에게 무엇이 달라지는가? 정치세력화는 현실을 돌파하려는 의지의 문제이다.”라고 주장했었다. 

결국 이날 중앙위원회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좀 더 많은 토론과 의견수렴을 한 후 다음 중앙위에서 다시 심의하는 것으로 유보된다. 

전문노련 위원장이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으로 

한편 이날 중앙위원회에서는 정치위원장을 새롭게 뽑았다. 그때까지는 건설연맹 위원장을 역임했던 배석범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맡고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는 가스공사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데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 양경규 전문노련 위원장에게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직을 제안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양경규 위원장은 연맹 위원장이면서 총파업 이후 다시 재개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위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조건이었다. 민주노총을 만들기 직전 나는 업종회의에서 집행위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당시 권 위원장이 업종회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만큼 가까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권영길 위원장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눈 편이었다. 

이후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을 권유하면서 “위원장님이 결심하면 평생 뼈를 함께 묻겠다.”라고 약속도 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한 셈이다. 지난 해 1월 30일 권영길 위원장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근원아, 오늘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이다. 삼선교의 이근원, 최철호, 박용진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그 문자를 받고 만감이 교차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권영길 위원장은 노동법개악 저지 총파업투쟁을 전개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맘만 먹으면 민주노총 위원장을 한 번 더 할 수도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길보다 진보정당을 만드는 거름이 되어 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노련에 들어올 때 인사위원장이었던 양경규 위원장을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문노련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정치위원장 겸직을 강력하게 권고했고, 이를 양경규 위원장이 수락했다. 

"정치위원장을 수락하면서 제가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 과거처럼 선거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관행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거 후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행군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대중적 토대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대중적으로 결의하고 참여함으로서 대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있는 노동자의 정치부대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나섰는데도 또 실패를 반복한다면 언제 다시 노동의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양경규 "오늘-열 아홉번째(9월 7일)- 길고 긴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 여정의 시작, 지금도 가슴 싸해지는 이름 국민승리 21" 중에서) 

양경규 위원장의 생각은 거의 나와 같았다. 그리고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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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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