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엔 눈물, 입엔 웃음 "웃는 게 아냐"
    50대 아줌마 노동자들의 한겨울 투쟁
    By 나난
        2010년 12월 31일 1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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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57일 기념 축하 케이크 사왔어. 초 붙이고 축하하자.”

       
      ▲ 이정랑 씨는 지난 30일, 57일간의 천막농성을 축하하는 케이크의 불을 켰다.(사진=이은영 기자)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들이 천막농성을 벌인 지 지난 12월 30일로 57일을 맞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서울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앞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여성 노동자는 농성 57일 축하 케이크를 받았다.

    잠시 훈훈해진 농성장

    연말연시 쓸쓸히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박주동 공공노조 서울지역 부본부장이 사온 케이크다.

    초에 불을 붙이던 이정랑(51) 씨의 눈시울은 붉어졌으나, 입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보내던 지난 크리스마스, 동료의 집안사정으로 인해 혼자 천막농성장을 밤새 지키며 느꼈던 ‘서글픔’이, “2011년을 길거리에서 맞아야 한다는 착잡함”이 케이크 하나에 눈 녹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부본부장이 “초는 57살에 맞춰 꽂으라”며 너스레를 떨자 이 씨는 “노숙하는 거 축하하는 건 또 처음보네, 뭐 축하할 일이라고”말하며 연신 “하하하” 웃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간의 맘고생이 북받쳐 올랐는지 그는 “촛불 보니 눈물 나려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5년간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본부 발매원으로 일해 온 이 씨. 하지만 그는 2010년을 해고자 신분으로 시작해야 했다. 지난해 이 씨가 속한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지부가 파업을 벌이던 중 공단이 대체인력을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대체인력과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단 측은 이를 이유로 이 씨의 인사등급을 D로 책정했다. D등급 3번이면 해고다. 결국 그는 지난해 12월 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난 1995년 입사 후 지난 2006년 연차 발생 전까지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히 일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된 것이다.

    우수 사원, 노조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고

    “39살에 공단에 들어와 열심히 일만 했어요. 우수 발매원에 선정돼 지난 2003년에는 3박 4일로 일본 경륜장 견학도 다녀오고, 일 잘한다고 10만 원, 20만 원씩 포상금조로 돈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열악한 근로조건을 건의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자 살생부에 올라 결국 해고가 됐습니다.”

    이 씨와 그의 동료들은 보통의 노동자가 그렇듯 하루 8시간씩 일을 했다. 경륜․경정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표를 팔았다. 하지만 보통의 노동자가 하루 8시간 근무에 1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점심시간은 말 그대로 ‘꿈’이었다.

    경륜의 경우 선수가 경기를 뛰는 5분 동안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어야하고, 수지를 맞춰야 하며,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소화불량과 만성 위장병은 너무나 흔한 병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륜에서 돈을 잃은 손님들의 화풀이도 이들의 몫이었다.

    “하루 종일 발매로 어깨, 손목,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었어요. 밥 먹을 시간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틈도 없었죠. 그런데 심리적으로 더 힘든 것은 돈을 잃은 손님들의 화풀이었어요. 돈을 잃기라도 하면 발매원들에게 욕을 하고, 생전 태어나 처음 듣는 욕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불평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저 “일할 수 있고,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 15년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발매원으로 일해 온 이 씨는 지난해 12월 말 노조 파업기간 대체인력과 분쟁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인사등급 D등급을 받아 해고됐다.(사진=이은영 기자)
       
      ▲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지부 8명의 해고자는 이 천막에서 2011년을 맞게 됐다.(사진=이은영 기자)

    15년 일한 직장

    하지만 공단 측은 더욱 강하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압박해 왔다. 지난 2006년 발매원들을 시급제로 돌리려고 한 것이다. 이에 기존 한국노총 소속 일반노조의 일부 조합원이 반발하며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538명의 노동자가 총회를 통해 일반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지부를 설립했다.(관련 기사 : 공단-한국노총의 비정규노조 죽이기 )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노조 간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발매원들에 대한 해고가 진행된 것이다. 대부분의 이유는 “인사등급이 낮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일반노조와 공단 측은 지난 2008년 12월 “평가에서 연속으로 D등급을 받은 경우 계약해지 대상으로 한다”는 해고기준에 합의한 바 있다. 때문에 이 씨 역시 이 합의서에 따라 D등급 3회로 해고된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10살, 13살이었던 자녀들은 장성해 24살, 27살의 청년이 됐다. “여기 다니며 자식들 다 키웠다”는 그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기고 즐거웠다”고 한다. 일의 특성상 주말에 쉴 수도 없어 가족대소사 역시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그. 해고자의 신분이 되고 나서야 친척도 만나고 친정도 다녀올 수 있게 됐다.

    “15년을 일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나니 억울했어요. 그래서 천막농성까지 오게 됐죠. 하지만 서글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해고가 되니 가족들을 챙길 수 있게 됐습니다. 또 하나, 친정에 가거나 회사 수련회 외 외박 한번 하지 못했던 제가 천막농성을 시작하며 일주일에 2~3일 외박이란 걸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길거리 천막농성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과 분리됐다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이들의 농성은 공단의 감시감독과 용역업체 직원과의 마찰로 인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 현재 공단 경비실의 CCTV 중 2대는 천막농성장을 향해있다.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모두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매주 목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낯선 차라도 등장하게 되면 공단 측은 번호판까지 확인한다.

    때문에 현장의 조합원들은 농성장 한 번 방문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 씨는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농성장에 와보고 싶어도 감시가 심해 오지를 못한다”며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인사등급 B등급 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장 조합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들뻘 되는 직원들에게 험한 소리 듣기도

       
      ▲ 8명의 여성해고자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앞 천막농성장.(사진=이은영 기자)

    여기에 농성장을 감시하는 용역업체 직원과의 마찰 역시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농성장 옆 올림픽공원 내 화장실을 갈 때에도 용역업체 직원들의 감시의 눈초리는 매서워진다. 이 씨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감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수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스트레스만 쌓인다”고 말했다.

    더구나 아들뻘 되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욕을 듣기라도 하면 공단으로부터 받아온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가슴에 새겨진다. 이 씨는 “기껏해야 20대 어린 아이들이 엄마 벌되는 사람들한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상처가 된다”며 “아무래도 여성들만 있다 보니 용역들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8명의 여성노동자가 천막농성을 접을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비록 자신들은 “못 배운 탓에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오며 온갖 차별을 받아왔지만, 내 자식들은 그런 차별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씨는 “자식 세대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더 심해지겠느냐”며 한숨만 쉬었다.

    또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건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해고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포기하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며 “현장으로 돌아가,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비조합원으로 분리된 발매원들이 하나 돼 열심히 일하며 노조활동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노조 결성 이후부터 올해까지 3차례의 해고가 진행됐지만, 단지 그 해고사유가 능력평가에 따른 D등급만은 아니에요. 노조활동을 하면 결국 어떻게 되는 건지, 다른 발매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끝까지 싸워 원직복직되어야 ‘우리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움직임도 일 수 있고, 노동조합 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단에는 700여 명의 비정규직 발매원이 있으며, 이 중 160여 명이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지부로 조직돼 있다. 공단 측은 기존 한국노총 소속 일반노조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일급 1,000원’을 인상한 상태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지부 조합원에 대해서는 임단협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임금인상을 하지 않고 있다.

    공단 측과 지부는 현재까지 24차례의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임금인상, 노조인정, 해고자복직 등과 관련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8명의 지부 해고자들은 서울 송파구 공단 앞 거리에서 30일 현재 57일째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씨는 “이 추운 날씨에 천막농성까지 진행하는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새해에는 노조를 인정받고 원직복직될 수 있다면 끝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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