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대리기사 두번 죽이지 말라"
By mywank
    2010년 12월 14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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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전국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경기도 북부에 있는 의정부 지방법원 앞에 모여들었다. 지난 6월 외곽순환도로에서 대리운전 중인 기사 이 아무개 씨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 아무개 씨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공판(17일 오전 10시)을 앞두고, 50명 안팎의 전국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인 것이다.

대리 기사들, 대낮에 법원 앞 집결 왜?

이들은  ‘고양 파주 대리기사모임’, ‘서울 영등포 대리기사모임’ 등 전국의 10여개 대리운전 기사 단체들이 지난 7일 구성한 ‘고 이OO 기사 사망사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회원들로써, 이들이 법원 앞을 찾은 이유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박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그의 친형과 인근 법원의 전직 고위판사 출신이 변호인으로 나서는 등 ‘불공정한’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생계를 위한 일도 잠시 제쳐두고 대리운전 기사들이 이곳으로 나와, 올바른 법원 판결을 촉구하게 된 데는 동료 기사인 이 씨의 죽음이 언젠가는 자신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도 있었다. 비대위 총무를 맡고 있는 대리운전 기사 박구용 씨는 이날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법원에서 박 씨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재발될 수 있다. 우리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 6월 27일, 외곽순환도로에서 고객 박 아무개 씨가 대리운전 중인 기사 이 아무개 씨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써, 당시 음주 상태였던 박 씨는 폭행을 피해 이 씨가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밖으로 나가자, 자신의 차량을 뒤로 돌진시켜 이 씨를 ‘압사’시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이다.

당시 이 씨는 복부 부위가 완전히 파열돼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박 씨는 이 씨를 그대로 방치한 채 도주한 뒤, 다음 날 파손된 자신의 차량을 점검하던 중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비대위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대리운전 기사 이 아무개 씨 사망 직후, 경기도 남양주경찰서는 고객이자 가해자인 박 아무개 씨를 구속 수사하기 위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을 이를 기각했다.

가해자 형, 인근법원 전직판사가 변호인

비대위 측에 따르면 당시 가해자 박 씨의 변호인은 울산에서 변호사업을 하고 있던 그의 친동생인 것으로 밝혔졌으며, 그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박 씨가 술에 취해 사건 당시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신원이 확실해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식의 변론을 통해 기각 결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검찰 측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박 아무개 변호사는 형제 관계인 사실이 드러나자 사임했지만, 새로 선임된 박 씨의 변호인은 지난달 30일 결심공판에서 “피고가 주취 중인 상태라 심신이 미약해 기억이 잘 안 나며, 평소에도 술이 약해 ‘필름’이 자주 끊겼다고 동료들의 증언이 있다”는 식의 변론을 하며 ‘집행유예’ 판결을 요청했다.

새로 선임된 박 씨의 변호인은 불과 6개월 전까지 현 재판부인 의정부지법 인근에 있는 서울 북부지법(서울 도봉구 소재)에서 수석 판사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변호사법상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 후 2년간 퇴임 전 소속된 법원·검찰의 형사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전관예우’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비대위 측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서면으로 구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지난 8일 법원에 이를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유가족 및 비대위 측 모두 검찰의 구형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14일 오후 <레디앙>의 취재 결과, 의정부 지방검찰청 측은 당초 이 사건의 구형 내용을 정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박 아무개 씨 측이 피해자 이 아무개 씨 측(중국에 있는 이 씨의 조선족 부인)과 합의한 점을 감안해, 형량을 다시 정하기 위해 결심공판에서 ‘구두 구형’을 하지 않고 이후 ‘서면 구형’으로 대체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남준 변호사는 “18년 동안 법조계 생활을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양측이 합의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적인 경우라고 볼 수 없다”며 “재판은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보통 가해자에 대한 검찰 측의 구형 역시 재판정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갑주 변호사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관행적으로 검찰 구형은 결심공판 당일 구두로 이뤄져왔다”며 “하지만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는 재판장이 허락할 경우에는 재판 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살인자측 승리할지 눈 뜨고 지켜볼 것"

이와 관련해, 비대위는 14일 오후 2시 30분 의정부지법 앞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유가족에게 고개 숙이지 않으면서, 살인자를 대신해 뻔뻔하게 동생 신분마저 속이고 형을 변호하겠다고 나섰던 ‘살인자’ 측이 승리할 수 있을까. 이웃 법원 수석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억만금에 산 ‘살인자’ 측이 승리할 수 있을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대위는 또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 법이 만인 앞에서 공정하고 엄정한 지 지켜보고, 법과 상식이 바로서는 사회를 위해서 투쟁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OO을 살려내는 길이자, 살아있는 또 다른 ‘20만의 이OO’인 대리 기사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길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날 △‘대리운전법’ 제정 △대리기사 안전대책 마련 △산업재해 보험 혜택 적용 등의 요구사항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비대위는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오후 2시 의정부지법에 ‘동료 기사 사망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결과 처우 개선 등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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