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타리 오타쿠, 우국청년, 할아버지
    2010년 11월 29일 07: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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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포성이 나고,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16명이 크고 작게 다쳤다. 포를 쏜 건 북한 4군단이었다고 한다.

처음 이야기가 나올 때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던데, 몇 시간 지나서 벙커에서 회의가 끝나고는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말이 바뀌었다.

밀리타리 오타쿠와 우국 청년들

다음 날에 국방부 장관은 처음 나왔던 ‘확전 방지’의 입장을 밝혔고, 조금 지나서 해임 당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는 ‘격문’이 실렸다. 당장 응징해야만 한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사설이 돋보였다. TV에서는 ‘우리 국군’의 노후한 장비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느려터진 대응을 유발하는 ‘정전교전규칙’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국회에서는 13분 만에 대응하는 바람에 ‘공세’를 빼앗기고 더 많은 손실을 입었다고, 국방부 장관한테 국회의원이 따지고, 또 다른 어떤 국회의원은 그 때 왜 F-15K의 최첨단 공대지 무기인 SLAM-ER과 J-DAM을 가지고 폭격하지 않았냐고 질타한다.

무시무시한 발언들은 굳이 매번 평양의 주석궁으로 탱크를 밀고가자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의 홈페이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밀리터리 오타쿠’들은 신이 나서 MIG-29와 F-16, F-15K의 전력을 분석하고, 전면전이 일어났을 경우의 시나리오를 블로그에 써놓고 논쟁에 불이 붙었다.

디씨 인사이드 등과 같은 ‘갤러리’에서 은둔하고 있던 ‘우국 청년’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1열~3열을 주로 차지하는 60~70대 할아버지들의 ‘비분강개’가 정권이 바뀌고 오랜만에 들리기 시작했다. “빨갱이들은 이래서 믿을 수 없어. 이명박이는 뭐하는 거여! 당장 핵폭탄을 떨어뜨려야지!”

옆에서는 이명박이 군대 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꼴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한다. (이명박의 ‘군 면제’에 대한 비판은 이제 좌/우파를 가리지 않아도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 다시 ‘보수주의’의 시대가 온 것 같다. 모두다 애국자가 되기 시작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이명박 욕하다

26일의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44.8%가 “확전되더라도 강력한 군사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정말 한바탕 할 때가 되었다고 다들 느끼는 것일까?

요 며칠, 엄마 아빠와 TV를 보고 있었다. 40년 동안 ‘선상님’, 그리고 노무현만 지지했던 ‘예비역 병장’ 아빠는 TV를 보다가 이야기한다. “확전반대”라고 국가통수권자가 되어서 ‘치욕적인 발언’을 해놓고 ‘부하’인 국방부 장관을 경질했다고 분개하기 시작한다.

아빠는 ‘이북놈들’을 혼내주지 못하고 망신살이 뻗쳤다고 정부를 욕한다. 괜히 ‘한미동맹’ 강화만 이야기했다가 중국놈들이랑 이북놈들이 편을 먹어서 이 지경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꽤 경험적이고도 합리적인 분석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이전의 10년 정부 동안 민간인이 죽은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시나리오들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북한이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어느 선까지 강경책을 쓸 수 있을까, 중국은 어느 정도에서 개입할 것이며, 미국이 할 일이 이번 판에서 얼마나 있을까 등에 대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엄마는 몇 명 죽었는지 나오는 기사에서 눈시울이 벌게진다. ‘젊은 애들’이 얼마나 아깝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죽은 60대 노동자 두 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엄마는 계속 눈시울을 적신다. 다 깨져버린 집을 보면서 망연자실 하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면서 엄마는 또한 혀를 끌끌 찬다.

나의 계산과 엄마의 눈길

엄마의 눈에 보이는 연평도 상황에는 포탄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눈에는 깨어진 장독대와 창문과, 횟집에 있는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이 아깝고 안타까운 것으로 보였다. 대피소에 들어갔던 아이들이 얼마나 놀랐을까가 중요했다.

사실 위의 여론조사에서 ‘44.8%’가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요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보여주는 게 없다. 조사 대상자의 33.5%는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하되 확전은 막아야 한다”, 16.2%는 “군사적 대응은 자제하고 외교적 경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군사적 대응’ 보다는 좀 더 ‘평화로운 선택’을 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조금만 사태가 악화되어도 당장 뛰어들어가야 하는 20대들은 ‘평화로운 선택’을 훨씬 강하게 지지했다. 물론 사회적 권력이 없는 그들에게 선택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윗세대가 시키면 총알받이는 20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미디어들과 많은 ‘애국자’들은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장 테크트리를 잘 짜고 컨트롤을 잘하고, 물량관리를 잘 해서 전쟁을 이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동시에 모두는 당장 Alt+F4 버튼을 누르면 이 게임 바깥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는 자기 자신과 구체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없다. 지금 ‘안보’와 ‘외교’와 ‘국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세상은 굉장히 사소해 보이는 것 같다. 강경한 응징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부시가 상상했던 것처럼 ‘외과수술’처럼 북한의 주요 군사 기지만 도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스트크래프트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시도 본토 안에서 그런 전쟁을 구상해본 적이 없다. 해외니까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매파는 북한의 지리적 위치를 모르는 것만 같다. 당장 자신과 주위의 일상의 모든 것들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 ‘국격’을 위해서라거나 남한 정부의 ‘자존심’을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정신과 클리닉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연평도에 있는 집들이 창문이 깨어졌을 때, 살림살이가 다 부서졌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죽었을 때, 그것들의 값어치가 한 번도 ‘정치’의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미디어가 살림살이와 망연자실해 하는 아줌마들을 엮어서 계속 비추는 것처럼, 정부도 ‘안보’의 일을 해결할 때에는 그러한 ‘사소한 일’ 따위는 ‘남북관계’나 ‘6자 회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대민 지원’의 영역이라고 따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장관 이상희가 만든 국방부의 모토는 ‘Fight Tonight!’(오늘 싸우자!)였다. 이 구호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외교부는(통일부는), 국방부는(군대는), 정부는 ‘남자-50~60대-인텔리 남자/육군사관학교 나온 군인’들의 성역이고, 모든 중요한 사안들은 과단성 있게 일을 결단하는 집단(일을 벌려놓는 집단)의 생각에 의해 결정되고, 거기에서 ‘짜잘한 일들’(벌려놓은 일의 수습 혹은 설거지)은 밑에서 알아서 해결해야한다는 가부장적인 관념.

‘안보’라는 거대한 ‘국가의 일’과 평범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이어놓던 선이 끊어져버린 순간, ‘협상’이나 ‘대화’ 같은 ‘가오’가 빠지는 말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 엎드릴 줄 모르는 남자들의 배짱어린 포부를 지켜주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그 남자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지키고’있다고 말하고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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