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상급식→정의론→장하준 경제론
    “신자유주의에 지쳐, 대안 정책 눈길"
        2010년 11월 21일 07:5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장하준 교수. 

    최근 서점가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템 중 하나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다. 최근 그의 신간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23가지)가 출간 불과 20여일 만에 10만권의 판매량을 돌파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50만부의 판매를 올렸던 점을 감안하면 ‘연타석 만루 홈런’을 친 셈이다.

    출판사 "예상 밖 높은 판매 기록"

    ‘23가지’는 인문학으로는 드물게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8년 만에 인문학으로 서점가를 휘어잡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인문학으로 다시 베스트셀러의 고지를 차지한 것이다. 이정도 추세라면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뛰어넘는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장 교수의 책이 서점가를 휘어잡으면서 많은 언론들도 ‘장하준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시장만능에 지친 대중의 선택”이라 평가했고 <한겨레> 역시 “신자유주의에 지친 대중의 마음을 읽었다”고 전했다. <프레시안>에서도 이 책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왜 장하준일까? 부키 출판사 박윤우 사장은 “저자의 이름이 있어 어느 정도의 판매는 예상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 판매를 달성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 미국쪽 출판기획사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글을 쓰자고 장하준 교수에게 제안을 했으나 장 교수는 그것보다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는지 쓸 수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기획”이라고 말했다.

    장하준 붐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장 쉽게 꼽는 이유는 ‘접근성’이다. 쉬운 언어로 풀어쓴 경제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것. 또한 장하준이란 이름이 가진 신뢰성도 이번 ‘23가지’ 돌풍의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신뢰를 획득하였고 한국 출판에선 이미 신뢰를 얻은 사람 책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 역시 “미국식 경제학은 컴팩트하고 수학적 해석이 많지만 유럽, 특히 케임브리지의 전통은 경제학을 글로 쉽게 풀어쓰는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 저자가 경제학은 물론 역사에 대해서도 정통한 만큼 복잡한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인 "케임브리지 전통의 글쓰기" 

    또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 것은 최근 일련의 사회적 변화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신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서가 대중화된다는 것이다. 직전 베스트 셀러였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각광을 받은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부자감세나 예산긴축 등 경제적 이슈가 대중들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중들이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신자유주의가 위기인 상황에서 대중적인 비판서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며 “이것을 장하준 교수가 책을 통해 잘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윤우 사장은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며 “부자감세로 재벌들이 돈이 생기면 그들이 이를 정말 투자하게 될지, 물가가 올라가는 것이 경기침체에 영향이 있는지 경제학이 답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자본주의가 이 정도의 약육강식적인 모습을 보인적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경제적 판단에 목말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인 교수 역시 “2008년 총선 당시 뉴타운과 특목고 등이 지배적인 이슈였는데 최근 무상급식과 정의론 등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각광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이는데 무상급식과 정의론에 대한 관심이 이제 장하준의 경제론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고 분석했다.

    우석훈 2.1연구소장은 “마이클 센델 이후로, 사회과학 등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광범위한 수요가 있다”는 것에 덧붙여 “이명박 정권이 불만이지만, 야당에서도 딱히 다음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한 정치인에 대한 지지로 몰려가기 보다는 정책 방향 등 모색에 관한 쪽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일정하게 형성된 것 같다”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우석훈 "근본적 질문에 대한 광범위한 수요"

    관심사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주류경제학, 좌파주류경제학 등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장하준 교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지 여부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 확산을 통해 대안사회의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한국적 현실과 차이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장석준 연구실장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장차를 찾는 것 보다는 신자유주의 반대 그 자체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며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 중에서 전통좌파 등과 전선이 형성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태인 교수도 “장 교수의 책이 대부분 세계경제를 중심에 넣고 쓰다 보니 중앙은행과 재벌 등에 대한 관점에서 한국적 현실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내 언론과에 인터뷰 등을 보면 한국적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이 종종 있고, 그의 비평이 WTO체제 등 큰 틀을 비판하는 만큼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장하준 현상을 바라보는 우파들의 시선도 관심사다. 공병호 공병호연구소장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정도로, 사는 것이 팍팍한 시대”라며 “아마도 이런 부분을 장하준 교수가 아주 잘 공략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 소장은 “장 교수의 글은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이 많아 독자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특히 별다른 공부 없이 그의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며 “한국의 시대정신을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끄는데 장 교수의 글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소장은 이어 “주류 경제학자들이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침묵하지 말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을 좀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