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이웃들과의 인터뷰
By mywank
    2010년 11월 20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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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워킹푸어』(전홍기혜·여정민·이대희·김봉규 지음, 책보세 펴냄, 12,000원)는 벼랑 끝에 서서 ‘살고 싶다’ 외치는 우리 이웃들의 고단한 삶에 관한 인터뷰를 담은 책으로써,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기자들이 이 책을 엮었다. 아무리 일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수렁에 빠져드는 한국 사회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의 현실을 담아냈다.

심각한 임금 차별에 시달리는 ‘금융 비정규직’, 1년에 1천만 원도 되지 않는 연봉을 받으며 가족을 부양하는 ‘대학 강사’, 최저임금만 받는 ‘청소용역 노동자’, 작품을 쓰기도 전에 만신창이 신세가 되는 ‘보조 작가’, 새벽에 출근하자마자 학교 쓰레기부터 줍는 ‘체육 코치, 연 매출 2억 원을 올리고도 3억 원의 빚에 허우적거리는 ‘농민’ 등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표지

동일노동임에도 임금에서 차별이 심한 곳 중 하나가 금융 비정규직이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은 수백만 원에서 2천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금융권이 내세운 편법이 무기계약직이다. 임금 차별을 둔 채 고용 안정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평균 연봉 1천만 원도 안 되는 고단한 현실에서 대학 강사 채용은 비리를 야기하는 권력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비리를 폭로했어도 대학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배부른 대학은 배고픈 시간강사들의 밥그릇을 내동댕이칠 뿐이다.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만 받고 있는 이들이다. 화장실 청소뿐만 아니라 선로 청소 일도 하는데 가끔 감전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고된 만큼 아픈 몸에 들어갈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이들 대부분이 빚에 허덕이는 관계로, 벌어도 늘 빚의 그늘에 살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보조 작가. 불투명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들은 작품을 쓰기 전에 이미 만신창이 신세가 된다. 구상단계의 프로젝트는 엎어지기 일쑤고, 시놉시스(줄거리) 작업에 받아야 할 돈은 ‘병아리 눈물’보다도 못하다. 이마저도 절반만 받을 뿐이다.

비정규직 코치는 자신이 맡고 있는 학교 운동부가 해체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새벽마다 운동장 쓰레기를 주워야 하고, 교장 눈치도 살피며 ‘그들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 체육 코치의 처우 개선을 담은 학교체육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국회는 이를 외면했다.

‘억대 농부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언론매체 등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 역시 빚의 그늘에 늘 살고 있다. 연매출이 2억 원이지만, 빚 3억 원을 진 농민들도 있다. 규모화에 맞춰 농정이 이뤄지다 보니, 부채가 늘고 물가 파동 때마다 농민들은 논밭을 갈아엎는다.

이처럼 워킹푸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우석훈 2.1 연구소장은 “당신이 워킹푸어라면, 이 책은 작지만 강렬한 위로가 될 것이다. 당신이 워킹푸어가 아니라면, 당신의 경제적 도덕 감성이 이 책과 함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워킹푸어든 워킹푸어가 아니든, 이 책은 당신의 경제적 ‘공감 능력’을 향상시켜 줄 것”이라며 이 책을 강력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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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전홍기혜 : 개를 좋아한다. 땅바닥에 코를 박고 거리를 배회하는, 스스로를 낮출 대로 낮춘 개가 어쩌면 요즘 사회에 더 걸 맞는 기자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십여 년 전 내 멋대로 개명을 했고, 그즈음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됐다.

여정민 : 오래도록 국사 선생님이 꿈이었으나 늘어나는 비정규직이 교단까지 침범하는 우리 시대의 희생양 아닌 희생양이 되었다. 비정규직일지언정 ‘교사’라는 명찰을 내 손으로 떼어버리고 정규직이긴 한 ‘기자’를 선택한 것이 과연 옳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대희 : 태어나 보니 촌놈이었고 살다 보니 기자 질하게 됐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 기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월급으로 시디(CD)를 사 모으느라 남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이다. 여자보다 음악이 좋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거짓말이다.

김봉규 : 듬직하게 태어나 건실하게 자랐다. 인생이 꼬인 적도 없고 달리다 넘어져 본 적도 없다. 듣는 게 직업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말을 이해하는 데 언어의 장벽보다 상식의 장벽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을 찾아다니며 사는 게 재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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