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정규직, 이번에 승부 보겠다"
    By 나난
        2010년 11월 18일 04: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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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라인을 세운지 18일 현재 4일째. 울산에서부터 시작된 파업이 아산과 전주로 이어지며 “정규직화” 투쟁이 확산되고 있다. ‘감히’ 비정규직 신분으로 완성차 공장의 라인을 세운 이들. 사회적 파장만큼이나 감수해야 하는 몫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라인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의 목소리들을 들어봤다. “해고의 불안 없이, 정정당당하게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하기조차 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법원에서 이들은 법률적으로 정규직이라는 판정까지 내려진 까닭에 이들의 요구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동료 잘려나가면, 안도감과 죄책감 동시에

    하나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동일한 일을 해도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 강도는 더 셌다. 1년에 1~2차례씩 정기적으로 해고의 칼날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번 해고자 명단에 혹시 내가 들어가지 않을까?”를 늘 고민해야 했고, 함께 일한 동료가 잘려나갈 때면 안도감과 함께 찾아오는 죄책감에 괴로워야했다.

    이 아무개(54)씨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이번 파업에 동참한 여성 조합원이다. 그는 “사람 대접 한 번 받아보고 나가는 게 소원”이라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할 때가 많았다”고 토로한다.

    92년 입사한 이 씨의 임금은 보너스와 성과금 모두 더해 연 3,200만 원 수준으로, “20년간 일해도 이 정도인데 젊은 친구들이 이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며 “젊은 친구들 살길이라도 마련해 줄 수 있을까 해서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약한 여자의 힘이지만 미래의 우리 아이들과, 젊은 친구들을 위해 파업에 동참하고 있어요.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일한 대가를 원하는 거예요. 법원에서도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왜 회사가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건가요? 젊은 친구들이 정규직이 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 지난 15일부터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3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습파업과 농성 등을 벌여 라인이 멈추고 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 17일 오전, 울산 2공장 16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업을 진행하며 공장을 점거하자, 회사 측 관리자들이 이들을 에워쌌다.(사진=사내하청지회)

    그의 말대로 평균 나이 34~35세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임금의 통상 절반 가량을 받는다. 김 아무개(38)씨는 입사 9년차가 되어서야 연봉 기준 3,000만 원을 받는다. 회사 측이 밝힌 사내하청 노동자의 연봉 4,500만 원에 크게 밑돈다.

    불안한 인생, 끝내야

    김 씨는 “현재 파업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 중 연봉 3,500만 원 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업체만 변경됐을 뿐 장기 근무한 것을 따져볼 때 임금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뿐 아니라 정기적인 고용불안에 노출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언제나 해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완성차 제조공장의 경우, 신차가 개발되고 생산될 때마다 해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기존에 생산되던 차량이 단종되면 늘 비정규직 노동자가 최우선으로 해고 대상자가 된다. 김 씨에 따르면, 2006년 아반떼 XD에서 HD로 변경되며 200~300여 명이, 올해 초에도 물량 감소로 인해 2공장에서만 7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공장을 떠났다.

    그는 “우리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늘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다”며 “1년에도 한 두 차례씩은 차량 단종이나 혼류생산 등에 따라 비정규직 해고 소문이 공장 안을 휘감고, 그때마다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지금도 비정규직 해고 소문이 돌고 있어요. 아반떼 HD 단종 후 MD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100여 명의 잉여인력이 발생했고, 이에 30여 명의 한시 인원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제는 해고의 불안 없이 일하고 싶습니다. 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도 정규직임을 인정한 만큼 우리도 그 동안 빼앗겼던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못참겠다, 싸우자"

    그렇게 시작됐다. 애초 잔업거부로 시작된 투쟁이 18일로 4일째 파업과 점거 농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오며 낙인찍힌 ‘차별 인생’에 대한 분노와 연이은 “불법 파견, 정규직 간주” 판결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15일,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동성기업의 폐업으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섭을 요구하며 출근했다. 사태해결 전까지 정상근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 측 관리자와 용역업체 직원의 폭력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쫓겨났고, 경찰은 이들을 연행했다. 이 모습을 본 상당수의 조합원이 “이제는 못 참겠다”, “싸우자”며 곧바로 공장 점거에 나섰다.

       
      ▲ "노동자는 하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 지난 15일부터 울산1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측의 대치를 준비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박 아무개(37) 조합원은 “15일 시트공장에서 용역이 쇳덩이와 공구를 던지며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며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뇌진탕 증상을 보인 조합원을 병원이 아닌, 경찰에 먼저 인계한 뒤 차후에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 비인간적 태도를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며 울분을 토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조합원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낸 모습을 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노하기 시작했고, 투쟁에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시트공장 쪽으로 집결해 농성하고, 1공장을 점거했습니다. 이전에는 회사가 때리면 그냥 맞았는데, 이제는 같이 죽자는 심정입니다. 회사가 먼저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겁니다.”

    15일 새벽, 동성기업에서 해고된 2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출근투쟁과 시트부 야간조 조합원들의 잔업거부로 시작된 싸움이 1공장 점거로 이어지며 대오는 1,100여명까지 증가했다. 현재 이들은 1․2․3공장으로 나뉘어져 기습 파업과 공장 점거를 반복하고 있으며, 아산과 전주공장에서도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투쟁에 모든 걸 쏟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라인을 세우면서까지 파업을 진행하는 것은 지난 7월과 11월에 있은 대법원과 고등법원 판결이 촉매제가 됐다. 법원은 2차례에 걸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근무기간 2년 이상 정규직 지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소송의 당사자인 최병승(울산), 김준규(아산) 씨 등 모두 5명이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급등했으며,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1,940여 명은 지난 11월 4일 근로자 지위 확인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판결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갔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이번 파업 대오에도 앞선 두 판결의 당사자들과 동일한, 구 파견법이 적용되는 지난 2005년 이전 입사자 중 근무기간 2년이 지난 비정규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아무개(42) 씨는 “지난 11월 12일 고등법원 판결 이후 현장의 분위기가 고조됐다”며 “대법원에서도 승리했기에 조합원들은 이번 투쟁에 모든 걸 쏟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법원 판결이 기대를 확산시켰다”며 “우리의 요구는 무조건 직접고용이다. ‘직접고용’이란 말이 빠진 교섭이나 요구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씨도 “집단소송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며 “조합원들은 대법원에 이어 고법에서도 ‘정규직 확인’ 판결이 나왔으니 이제 우리도 ‘정규직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높은 곳(대법원)에서 정규직 판결을 내렸는데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하느냐”며 현대차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 18일 현재 4일째 울산 1공장을 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식량.(사진=이은영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이 분노가 되고,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씨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으니 부딪혀봐야 한다”며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당당하게 부딪혀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한 이후에 후회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안에서 죽으나, 밖에서 죽으나"

    “파업을 하고, 라인을 세우지 않으면 현대차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법원에서도 판결한 내용입니다. 그동안 불법으로 사용해왔으니, 잘못을 뉘우치고 정규직으로 인정해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노동을 착취해 번 돈을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 건가요?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투쟁을 하겠습니까? 어차피 공장을 나가서 죽으나, 공장 안에서 죽으나 똑같습니다. 차라리 우리는 안에서 죽는 게 났습니다.”

    김 씨는 이번 투쟁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현대차가 판결을 실행하는 일만 남은 상황”이라며 “우리에겐 이 공장 밖에 없다. 이미 시작한 싸움,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4일간 비정규직 투쟁을 이끌고 있는 이상수 울산사내하청 지회장은 “향후 상황이 더욱 긴박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장점거와 파업이 길어질수록 회사 측의 대응 역시 강고해질 수밖에 없고,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노 갈등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그는 4일째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아산과 전주공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투쟁 속에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며 “서로를 믿고 공장을 끝까지 사수해 우리의 요구를 쟁취하자”고 말하며 그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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